쥐족과 돌고래족/강철규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2010.05.31 18:04   수정 : 2010.05.31 18:04기사원문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장편 '신'에서 생명의 위대한 힘 3가지를 DNA로 묘사하고 있다. D(Division)는 분열과 파괴의 힘으로 남과 맞서서 싸우는 힘을 나타내고 N(neutralite)은 중용의 힘으로 남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것을 그리고 A(association)는 융화와 사랑의 힘으로 남과 함께 살아가는 힘을 나타낸다. 인류 역사는 이 세 가지 힘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도 했다.

지구상에 나타난 고대 족속으로서 D력, 즉 분열과 파괴의 힘을 과시하는 족속을 '쥐족'으로 명명하고 폭력을 사용해서 무리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는 기술을 가진 부족이라 했다. 이 부족의 우두머리들은 전쟁을 통해 포로, 특히 여성을 획득하고 적이 가지고 있던 기술을 습득하는 이점뿐만 아니라 내부결속을 가져오는 등 3중의 효과를 노린다.

A력을 상징하는 '돌고래족'은 협력과 사랑을 미덕으로 삼고 학문과 종교 그리고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 족속이다.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폭군들에 맞서 싸우지만 불행히도 이들은 쥐족에 밀려 유랑의 길을 떠난다.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오래 전에 한반도까지 이주해 정착한 이유도 평화를 사랑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주변국의 침략을 받거나 그들의 싸움에 휘말려 전쟁을 치르곤 하였지만 쥐족처럼 스스로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우리의 유전자 속에 그러한 정신이 흐르고 있다.

지금 우리는 남북분단과 대결의 환경 속에서 반세기 이상 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쥐족과 돌고래족의 속성인 D력과 A력이 교차해 나타나는 가운데 때로는 화해, 때로는 긴장과 반목을 반복하는 연속 게임 속에 빠져 있다. 1968년 1월 김신조 일당을 침투시켜 청와대를 공격한 일은 분명 D력이 나타난 것이다. 1972년 남북간에 7·4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북측인사들이 남한을 방문하는 등 상호 화해와 협력의 장을 연 것은 A력이 발휘된 것이다. 그러나 곧바로 통일을 빙자해 대통령의 종신집권을 허용하는 유신체제로 급변하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무너지고 7·4공동성명도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 이것은 국내정치가 남북 문제를 악용한 케이스다.

1987년 11월 말 북쪽 공작원들에 의한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이 일어난다. 그후 7개월 만에 동서해빙 무드를 타고 남북교역의 모태가 된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 이른바 88년 7·7선언이 발표되고 90년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과 남북협력기금법이 각각 제정돼 남북간 교류협력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러나 96년 북측의 잠수함 침투사건이 일어나 교류가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다만 몇 개월 후 북측의 사과 성명으로 다시 교류가 시작됐다. 1998년부터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고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으로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다. 2007년 다시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방문으로 남북 간에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자는 등 공동선언이 발표된다. 그러나 2008년에 금강산 관광객 한 사람이 저격당하고 이번엔 천안함 사건이 다시 일어난다. 드디어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5월 24일 남북 간의 교류를 전면 중단한다고 선언한다. 22년 동안의 남북 간 교류와 평화적 노력이 무산되는 순간이다.

이같이 지난 반세기 동안 쥐족과 돌고래족의 특성인 D력과 A력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남북간의 관계에서 긴장과 화해가 번갈아 나타나 국민이 웃고 울며 비난도 하면서 여행도 하는 불안정한 과정이 연속돼 나타났다.

이 과정의 이면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국내 정치가 이러한 환경을 교묘히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 나쁘게 말하면 정치적으로 남북문제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의 속성이 그러하기 때문에 어느 나라나 정치력에 따라 그런 환경이 만들어질 개연성은 높다.

베르나르는 '신'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인간의 역사는 영역과 위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우두머리가 공포감을 주면 줄수록 자기들이 더욱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을 가진 자나 정치적 야망이 있는 자들은 언제나 내부 문제가 어려울수록 외부 위협을 말하고 지지를 호소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난히 융화과 평화를 사랑한 민족이 어떡하다 이렇게 파괴와 분열의 힘인 D력을 구사하게 되었는지 안타깝다. 남북을 막론하고 후진적 D력의 쥐족이 되지 말고 고차원의 A력을 되찾는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우리는 융화와 사랑의 힘을 살려 고요한 평화의 나라를 건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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