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 38호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이사장
▲ 한복려 이사장은 조선왕조 궁중 음식 연구가로 1947년 궁중 음식 연구가인 황혜성의 장녀로 태어나 서울시립대학교 원예과와 고려대학교 식품공학과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궁중 음식의 체계화에 힘썼던 어머니의 뒤를 이어 궁중 음식의 재현 및 현대화에 공헌한 것이 인정돼 문화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의 메뉴 개발과 지원에 참여했으며 드라마 대장금의 요리 자문을 맡기도 했다. 200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 음식 기능 보유자로 지정됐다. '다시 보고 배우는 산가요록'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사진=박범준기자 |
"어머니는 음식을 통해 사람의 사는 방식을 얘기하셨어요. 음식은 결국 사람을 먹이고 공양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마음이 밑으로 내려와 자손이 받들게 되죠. 공양과 배려라고 할 수 있죠. 사람 사이의 정을 나누게 하는 것이 음식이니까요. 음식은 사람 사이의 정을 이어주는 끈,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거죠."
외국인 관광객이 늘 북적거리는 창경궁의 북쪽, 서울 원서동에는 한국 전통 음식의 대종가인 ㈔궁중음식연구원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궁중 음식의 명맥은 이 아담하면서도 기품이 넘치는 한옥에서 한복려 이사장(중요무형문화재 38호)의 손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조선왕조 마지막 수라간 상궁이었던 한희순 상궁으로부터 궁중 음식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어머니 황혜성 여사가 마지막 날까지 기거했던 곳으로 1971년에 설립됐다.
"30여년 넘게 끊임없는 도전과 고난 앞에서 궁중 음식의 정체성과 전통을 지켜 오신 어머님을 모셨어요. 그리고 이제는 제가 그 뜻을 이어받고 있죠. 하지만 이제라도 보다 많은 분야의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함께해서 이 전통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발전시키기 위한 자료관 설립이 절실합니다. 음식은 실습과 손맛이 중요하지만 제자들과 함께 논문작업도 많이 할 겁니다."
한 이사장은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 한식 붐을 조성한 드라마 '대장금'을 통해 한국 궁중 음식의 높은 품격과 다양성을 선보였다. 그는 요즘 더욱더 바빠졌다. 한국 식문화의 정수인 궁중 음식을 보급하고 전수할 수 있는 박물관 설립과 전통 음식의 학문적 연구를 발전시킬 학제적 연구까지 할 일이 산더미이기 때문이다.
▲ 대장금 촬영 당시 탤런트 이영애씨에게 탕평채 요리하는 방법을 지도하고 있는 한복려 이사장. |
다음은 한복려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중요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가 되기 위한 과정은.
▲조선 궁중 음식 요리법을 전수해서 졸업한 사람은 이수자이고 현재 교육을 받는 사람은 전수자라고 한다. 전수자에서 이수자가 되고 보유자가 되는 거다. 기능 이수자 중에 전수조교라고 대를 이을 사람을 정해놓고 그 사람이 기능 보유자가 돌아가시면 심의를 거쳐 보유자가 되는 거다. 현재 궁중 음식 분야는 10명 이상인데 모두 황혜성 선생님 때 사람들이다.
―기능 보유자는 한 종목에 보통 몇 명인가.
▲종목에 따라 차이가 있다. 궁중 음식은 어머님인 2대까지는 한 사람이었는데 두명이 된 건 궁중 음식 범위가 넓어 음식-병과로 나눴기 때문이다.
―중요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로 지정된 지 3년 됐는데.
▲기능 보유자였던 어머님 밑에서 도와드리기만 하다가 내가 주도해서 제자를 키워야 하는 점이 큰 차이다. 일하는 것에서의 차이는 없다. 우리나라 음식을 대표하면서 모든 사람이 저를 찾아오게 된다는 점에서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기능 보유자에 대한 정부 지원은 충분한가.
▲지정 종목이 100개 이상으로 광범위하므로 정부에서도 넉넉한 지원을 못 해준다. 독립해서 궁중 음식만큼 하는 곳 많지 않다. 예능도 있지만 기능에서 보면 수요가 안 된다. 어려우면 생계 보조하겠지만 기능 전수할 때 도움을 받는 정도다. 먼 미래와 국가대계를 위해 기능 보유자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궁중 음식은 몇 가지나 되나.
▲현재 전수하는 것만 300여종이다. 떡 등 병과류까지 합치면 500여개이고 어려움은 있지만 옛날 기록에서 발굴하는 것까지 합치면 1000개 이상 될 듯싶다. 우리 음식은 원래 가짓수가 많다.
―어머니이자 스승인 황혜성 여사의 가르침을 정의한다면.
▲어머니의 모습보다 더 인자한 한국의 어머니상은 보지 못했다. 품위 있는 모습이 얼굴에서 나타나는데 어머니의 모습을 닮고 싶다. 말씀 많지 않고 몸으로 보여주시는 분이다. 과격하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 안 하시고 자식 뒷바라지만 헌신적으로 하신 어머니는 아니지만 스스로 본받게 행동하셨다. 음식을 통해 사람의 사는 방식을 애기하셨다. 음식은 결국 사람을 먹이고 공양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마음이 밑으로 내려와 자손이 받들게 된다. 공양과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사람 사이의 정을 나누게 하는 것이 음식이다. 집안에 사람이 들끓었던 건 사는 이야기가, 음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궁중 음식이 대중화에 성공하려면.
▲항상 자신감은 있는데 여러 사정 때문에 벽에 부딪힌다. 임대료, 인건비 등 비용의 문제가 크다. 벌이가 안 되면 질도 떨어지고 일 할 사람도 없어진다. 한식은 가깝고 편안하게 늘 먹는 거니까 귀하다는 생각을 안 한다. 그러나 원가나 사람 드는 품은 더 많이 들게 된다. 표준화, 단순화를 통해 원가절감하는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한식을 고급 음식이라고 인정한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게 여기는 풍조가 아쉽다.
―한 이사장 때 전수자는 몇 명이었나.
▲병과 분야 기능 보유자 정길자 선생과 두명이었다. 동생인 한복선 원장이 하면서 늘었다. 전수생은 따로 뽑는 게 아니고 수업준비하고 이러다 보면 견습생으로 와서 나중에 진로를 궁중쪽으로 잡으면 조교생활 5∼6년, 10년 지나야 전수생으로 붙여준다.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 아니다. 일반생은 수업료 내고 배우고 여기서 전수생은 국가에 보고하는 사람이다. 현재 7∼8명 대기하고 있지만 진로 문제 때문에 10여년 지나면 대학 강사로 많이 빠져나간다.
―드라마 대장금 요리 장면 촬영은 어떻게.
▲6개월 동안 급하게 촬영하다 보니 시나리오도 급하게 나오고 다 보니 음식 정하고 틀리고 수정한 과정이 수도 없이 많았다. 연구원 3∼4명이 1주일에 사흘 정도 촬영했다. 지금 봐도 대장금 정도의 음식이 TV에 나오는 건 보지 못했다. 한식을 세계화하는 시발점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대장금 촬영 당시 에피소드는.
▲드라마 화면은 눈가림이 많다. 재료가 없으면 재료를 바꿔치기 해서라도 결과만 잘 나오면 되니까. 예를 들어 대본은 만두 경연대회를 하는데 밀가루가 당시 귀한 재료였으니까 밀가루를 나타내기 위해 밀가루가 아닌 다른 재료로 피를 만들어도 만두가 될 수 있다는 것 보여주고 싶었다. 어떤 만두를 만들까 고민하다가 백성들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걸로 바꾸기 위해 박으로 결정했지만 박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루 남겨놓고도 박을 구하지 못해 할 수 없이 수박의 중간 파란 껍질로 넘어간 적도 있다. 여기서 나온 음식 가운데 여름철 얼린 홍시, 맥적(너비아니) 등 상품화된 것 많다. 음식 스토리텔링의 좋은 예다.
―한식 세계화의 성과는 어떻게 보나.
▲정부가 2007년부터 식당인증, 셰프교육 등 많은 것을 했다. 그러나 한정된 예산으로 단기에 성과를 내려고 서두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음식문화는 단기에 성과가 나는 것이 아니므로 길게 봐야 한다. 브랜드를 만들어 차분히 짚어보며 가능성 있는 걸 찾아야 한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 나으니 한식 세계화에 촉진제가 될 것이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늘어놓은 것들을 정리할 시기다. 다음 세대엔 어떻게 될지 더 모르니 제 시대에 어머니가 하신 것을 정리하고 그것을 한곳에서 보여주는 자료관 같은 걸 만들면 좋겠다. 정리하는 일밖에는 없다. 조바심난다고 할까. 북적북적하다 주말에 혼자 있으면 깜박거리고 단어 생각 안 나고 이러면 내가 이러다 몇 살까지 강의할까 싶기도 하다. 정년 65년 정한 게 맞는 말 같다.
/mskang@fnnews.com강문순기자
■한복려 이사장의 어머니이자 스승인 고 황혜성 여사는 제1대 기능보유자였던 고 한희순 상궁에게 30년간 궁중음식 조리법을 전수받은 조선왕조 마지막 주방상궁의 제자다.
장녀인 복려씨와 차녀 복선씨 그리고 삼녀 복진씨와 장남 용규씨까지 4남매는 궁중요리 및 식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영역에서 어머니의 뜻을 잇고 있다.
장녀인 복려씨가 한국 식문화와 전통을 지켜나가는 큰일을 맡았다면, 둘째인 복선씨(한복선식문화연구원 원장)는 대중매체를 통해 궁중음식은 물론 건강한 식사법을 널리 알리는 일을 맡은 것이다. 또한 셋째인 복진씨는 전주대학교 교수로 음식 문화를 학문적으로 가르친다. 한편 '음식은 먹어봐야 제 맛을 아는 것'이기 때문에 아들 용규씨는 '지화자' '궁연'이라는 전통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음식 맛이 모두 다르듯 어머니의 한 손에서 자랐지만 우리 형제는 다들 성격이 달랐어요. 하지만 '황혜성의 식문화'라는 큰 틀 안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살고 있을 뿐인 거죠. 어머니가 시작하신 일을 우리가 지금 완성해가고 있어요."
후 원: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 한국관광공사 한국방문의해위원회(지면에 로고 넣어주삼)
인터뷰 동영상 tv.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