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식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원장

      2010.08.12 22:23   수정 : 2010.08.12 22:23기사원문
■“돈 잘 버는 경영자보다 사회책임 다하는 인재 키울 것”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MBA)이 아니면 도저히 배울 수 없는 커리큘럼을 갖춘 비즈니스 스쿨을 만들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돈만 많이 버는 인재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책임감 있는 리더를 기르는 것이 서울대 MBA의 최종 목표입니다."

경영대 학장을 겸하고 있는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안태식 원장(54)은 "우리 사회를 책임질 수 있는 리더 양성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돈만 많이 버는 인재를 기르는 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국가나 겨레에 책임있는 비즈니스맨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며 사회책임을 다하는 인재가 되어야 합니다"고 단호히 말했다.


특히 안 원장은 그동안 MBA가 탐욕을 키우는데 앞장서 왔다고 비판했다. MBA가 연봉상승에 큰 비중을 둔 나머지 사람의 가치와 경영의 가치를 무시하고 돈으로만 평가하는 바람에 탐욕이 가득한 전문인을 양성해왔다는 비판이다. 따라서 서울대 MBA에 입학한 사람은 돈을 많이 버는 전문가가 아니라 덕이 재능을 감싸는(德勝才) 그러한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경영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흔히 사회적 책임감을 다하거나 남에게 베푸는 것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 배치된다고들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현들이 이야기했듯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남에게 베푸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길입니다. 사회에 영향력 있는 최고경영자를 보면 전문지식은 물론이고 사람의 가치를 알고 경영의 가치를 알며 결국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안 원장은 인터뷰 내내 마케팅이나 회계·재무 등 경영학의 세세한 내용을 언급하기보다는 '가치 문제'에 대해 누차 강조했다. 심지어 사마천의 '사기'를 인용하며 어떤 곳에서 1년을 살려면 곡물을 심어야 하고, 10년을 살려면 나무를 심어야 하며, 100년을 살려면 덕을 쌓고 선행을 베풀어 멀리 있는 사람을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웃에게 베푸는 행위를 기업으로 말하자면 사회적 책무를 다하라는 얘기로, 인(仁)은 이(利)를 장기적으로 극대화하는 수단이라는 주장이다.

그의 이 같은 시각은 리더 양성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경영자의 카리스마 리더십은 리더의 개인적인 특질일뿐 리더십이 될 수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리더십의 조건을 알기 위해 '사회와 봉사'라는 과목을 수강했다고 전하는 안 원장은 "'리더십은 조직을 바람직하게 만들려고 하는 마음가짐이나 태도'라는 정의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직원들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MBA의 본래 목적인 제대로 된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필요한 건 경영기술이 아닙니다. '협업과 배려' '윤리' '통섭'입니다. 그래서 경영학부는 '잘난' 서울대생들에게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는 팀워크를 기르기 위해 특전사에서 협동심을 배우게 했으며, MBA학생들에게는 30시간의 사회봉사를 해야 졸업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습니다."

서울대 MBA학생들의 사회봉사 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하나는 몸으로 할 수 있는 헤비타트, 농촌일손돕기, 복지시설 봉사 활동이고 나머지 하나는 지식나눔 활동이다. 특히 지식나눔 활동 가운데 주목할 부분은 MBA의 지식을 토대로 '행복한 나눔'이 론칭한 공정무역 커피 치아파스를 위해 국내 커피사업환경에 대한 컨설팅을 해준 부분이다.

안 원장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봉사를 강조했는데 EMBA(Executive MBA)는 모토를 '희생과 봉사'로 정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봉사활동과 사회기여를 하고 있어 큰 보람을 느낍니다. 사실 그들이 사회에 봉사하고 자신을 희생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어찌보면 패러독스인데 이걸 이해하면 훌륭한 리더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안 원장을 필두로 한 서울대 MBA도 끊임없이 지식나눔의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에는 미니 MBA를 신설, 실직자 경영능력 향상을 위한 무료 프로그램을 운영했는가 하면 서울대 직원들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경영능력향상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 학생들의 기본 자질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뛰어납니다. 백지와 같은 그들에게 그림을 그릴 교수들의 자질을 높여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근 부교수는 6년 안에, 조교수는 4년 안에 승진을 연장할 수 있다는 규정을 2년으로 통일해 연구역량이 없는 사람은 사실상 학교를 나가도록 했습니다. 이는 서울대 역사상 처음있는 일로 교수들의 철밥통을 깨는 자기개혁이었습니다."

경영대에서 이 같은 전공별 승진규정을 손질하자 다른 학과 교수들이 거세게 반대했다는 후문이다. 안 원장은 교수의 연구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대학의 미래가 없다며 대국민 홍보를 통해서라도 설득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교수들의 철밥통을 깨는 일과 함께 우수 교원을 최근 9명 늘린 데 이어 앞으로 10명 더 뽑겠다고 밝혔다. 신임 교원은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시카고대 등을 졸업하고 유타대, 홍콩과기대, 카이스트 등에서 MBA 강의를 한 실력파인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 MBA 교수진의 면면을 살펴보면 결코 해외의 어느 대학과 견주어도 실력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교수진을 놓고 국제화가 안 됐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학생들은 원재료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게 없고 이제 남은 일이 있다면 서울대 MBA 학생들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리더로 키우는 일입니다."

이러다 보니 서울대 MBA 과정은 파생상품을 어떻게 만드는지, 회계를 어떻게 처리할지 등에 관한 전문지식 교육은 부차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사회와 자신과의 관계설정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돕고, 도전정신을 길러주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안 원장은 "도전정신을 길러줘야 훌륭한 기업가가 나옵니다. 그런데 도전정신은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에서 나옵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갈 때는 용기가 필요한데 인간이 왜 중요한지, 삶의 열정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가르치면 통찰력이 생겨납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 MBA는 경영전문인을 양성하는데는 성공했지만 리더를 양성하는데는 실패했다고 한다. 따라서 서울대 MBA는 세계적인 경영전문대학원인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이나 와튼스쿨을 모방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겠다는 게 안 원장의 구상이다.

"미국 최대의 자동차 회사인 GM은 망했습니다. 그럼에도 국내 MBA는 GM을 성공 모델로 강의하는 미국식 MBA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식 MBA의 장점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우리 실정에 맞는 독창적이고 유니크한 한국식 MBA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서울대 MBA의 역할 모델이 있다면 올해 초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지의 경영전문대학원 평가에서 세계 6위로 올라선 스페인의 대표적 비즈니스스쿨인 IE(Instituto de Empresa)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국제화 되어 있는데다가 다양성이 큰 장점으로 꼽히는 비즈니스스쿨이다. 그는 "세계 경영전문대학원 평가 자체가 문제가 있긴 하지만 서울대 MBA는 앞으로 10년 내 세계 20위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교수 수준은 이미 세계 20위 수준을 넘어섰고, 학생의 질도 우수하기 때문에 행정적 규제가 완화되고 다양성을 살려나간다면 목표 달성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전망했다.

서울대 MBA와 중국의 베이징대 및 일본의 히토츠바시대와 3웨이(Way)를 구축, 서구식 MBA와는 차별화되는 원-아시아 MBA를 만들자고 제안한 안 원장. 세 학교가 모여 원-아시아 MBA를 만들 경우 한국은 한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성공한 비즈니스기업을 토대로 아시아의 실정에 맞는 '알토란' 같은 원-아시아 MBA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안 원장의 자신감이었다.

■안태식 경영전문대학원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텍사스대에서 회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텍사스대, 애리조나주립대, 아주대 등을 거쳐 1997년 서울대에 부임한 안 원장은 지난해부터 서울대 경영대학장과 경영전문대학원 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한국경영사례연구원 원장, 한국관리회계학회 회장, 아시아태평양관리회계학회 집행이사, LG디스플레이·현대제철·현대엘리베이터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최근 공기업 평가의 문제점을 담은 논문이 저널 '어카운팅 리뷰'의 대표 논문으로 실려 주목을 받았다.


/noja@fnnews.com노정용기자

■사진설명=안태식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장은 "서울대 MBA는 돈을 잘 버는 인재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책임감 있는 리더를 기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사진=김범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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