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 화백―최은영 회장의 인연

      2010.10.07 05:35   수정 : 2010.10.07 01:08기사원문
지난 5일 오후 4시 서울 삼청동 fn아트 갤러리. 검은색 렉서스 차량에서 내린 세련된 모습의 중년 여성이 성큼성큼 계단을 뛰어올랐다.

그 여성이 갤러리에 도착하기 전, 그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바깥 나들이를 나선 아흔둘의 노 화가는 상기된 표정으로 연신 “오시는 거 맞죠”라며 기자에게 물었다. 그의 손엔 17년전 두 가족이 함께 모여 단란한 한때를 찍은 사진 한장이 들려 있었다. 사진 속엔 푸른색으로 드로잉한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여성의 초상화가 함께 찍혀 세월을 짐작케 해줬다.

가죽 재킷으로 세련되게 마무리한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갤러리에 들어서자 한국 미술계의 거목 김흥수 화백은 어린아이처럼 밝은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기억을 더듬기 시작한 노 화가는 삽시간에 17년 전부터 시작된 인연을 하나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청와대 옆집’(김흥수 화백의 표현, fn아트 갤러리)에서 노 화백과 기업총수는 미술을 통해 지내온 세월만큼 깊은 삶의 이야기들을 내려놓았다.

김 화백은 하모니즘이란 독창적 화풍을 세계 화단에 제시한 한국 미술계의 거목이다.
이날 전시된 작품들은 김화백의 추상미술 세계가 만개했던 1970년대 미공개작들이다. 김 화백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전시장을 돌며 최 회장에게 한 작품, 한 작품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창살 아래 자유롭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을 담은 1962년작 ‘염원’입니다. 저 작품은 모자이크를 이용한 작품이고….”

김 화백은 최은영 회장의 부군인 고 조수호 회장을 미술계 발전을 위해 많은 관심을 쏟았던 인물로 기억했다. 조 회장은 김 화백이 지난 1993년 러시아에서 전시회를 열 때 든든한 후원자가 돼줬다. 지금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고 조수호 회장의 사무실엔 김 화백이 선물한 그림이 걸려 있다.

김 화백이 “조수호 회장께선 미술관을 세우고 싶어하셨다”고 말하자 “그 덕에 제가 이렇게 바쁩니다”라고 최 회장이 미소 띤 얼굴로 응수했다.

직접 미술관련 재단(양현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최 회장은 미술에 관심이 많은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최 회장은 국내 최초 국제미술상인 양현미술상을 제정해 국내외 역량 있는 작가들을 발굴해 지원하고 있다. 또 최근엔 기업경영과 미술을 접목해 한층 세련되고 안정된 경영을 선보이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8월 한진해운의 유럽 내 전략거점인 스페인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한·스페인 수교 60주년 기념,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소장품전’을 후원하기도 했다.

김 화백은 “지금도 TV 뉴스를 보다가도 배가 나오면 (한진해운의 배가 아닐까 해서) 유심히 보게 된다”고 말해, 노 작가의 마음 한켠엔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였던 고 조수호 회장과 한진해운에 대한 마음이 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 화백은 최근 미술에 관심을 두고 있는 최 회장의 둘째딸 조유홍씨에게 전해달라며 ‘온 세상에 사랑을’이란 글귀와 함께 친필 서명을 담았다.

최 회장은 김 화백을 8일 열리는 양현미술상 시상식에 초대했다. 최 회장은 김 화백의 건강을 염려하면서도 “나이는 잊고 사세요. 앞으로도 왕성히 활동하셔야죠”라며 다음을 기약했다.
“조 기자, 이거 기사로 안쓸거죠? 쓰지 맙시다.” 최 회장이 경쾌하게 차에 올라탔다.


/ehcho@fnnews.com조은효기자

■사진설명=지난 5일 서울 삼청동 김흥수 화백 초대전이 열리고 있는 fn아트 갤러리에서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맨 왼쪽)과 김흥수 화백, 김 화백의 부인 장수현씨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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