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부른 사부곡 ‘로제’
일본 다카라즈카 팬에게 올해 가장 큰 뉴스를 꼽으라면 십중팔구 설조(雪組) 남자역 톱스타인 미즈 나츠키(38)의 퇴단일 것이다. 미즈 나츠키는 지난 9월13일 뮤지컬 ‘로제’를 끝으로 다카라즈카를 퇴단했다.
한국에서도 공연 애호가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다카라즈카는 미혼 여성들만 출연하는 일본 공연 또는 극단을 가리킨다. 다카라즈카의 작품은 대체로 2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에서는 뮤지컬(연극)을 공연하고 2부에서는 쇼를 무대에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다카라즈카 극단은 꽃, 달, 눈, 별, 하늘 등 5개의 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조마다 남녀 역의 톱스타를 정점에 놓고 수직적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각 조의 대표이기도 하는 남자 톱스타는 엄청난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이번에 퇴단한 미즈 나츠키는 1993년 입단한 이후 3년만에 주연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15년 넘게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다카라즈카 배우들 가운데 드물게 5개 조를 전부 거쳤으며 안정감 있는 연기로 식지 않는 인기를 구가했다. 그가 지난 1월 14일 퇴단 기자회견을 가졌을 때 공연 잡지는 물론 일간지에도 그의 소식이 비중있게 실렸을 정도다. 참고로 다카라즈카 배우들이 퇴단할 때는 1년 전에 예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퇴단 이후 다카라즈카는 아니지만 연극이나 TV, 영화 등에서 배우를 할 경우 다카라즈카 입단시 받은 예명을 그대로 쓴다.
그런데, 로제 공연을 끝으로 다카라즈카를 그만둔 것은 미즈 나츠키만이 아니다. 그의 상대역, 즉 여자 톱스타인 아이하라 미카(24) 역시 퇴단했다. 한 조의 남녀 톱스타가 동시에 그만두는 것은 드물기 때문에 이번 로제 공연은 두 사람의 ‘사요나라’ 공연을 보려는 팬들로 일찌감치 티켓이 동나버렸다. 그래서 매회 50여장이 채 안되는 현장 판매 티켓을 구하려는 관객들과 극장에 들어가는 배우들에게 직접 인사하려는 팬클럽 회원들로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2527석) 앞은 공연 내내 붐볐다.
사실 미즈 나츠키의 퇴단이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것에 비해 아이하라 미카의 퇴단은 의외였다. 왜냐하면 아이하라 미카는 나이도 어린데다 지난해 여자역 톱스타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즈 나츠키 이후 아이하라 미카가 새로운 남자 톱스타와 호흡을 맞출 것으로 누구나 예상했었다. 하지만 아이하라 미카는 미즈 나츠키가 퇴단 기자회견을 한지 열흘 뒤인 1월 23일 퇴단을 발표했다.
다카라즈카에서 전도유망했던 아이하라 미카가 갑자기 퇴단을 결정한 것은 왜일까. 아이하라 미카는 그 이유를 확실히 밝히지 않았지만 공연계 관계자들은 폐암에 걸린 아버지와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아이하라 미카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극작가 겸 연출가 쓰카 고헤이(한국명 김봉웅)의 딸이다. 쓰카 고헤이는 재일교포 연극인으로 일본 현대 연극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74년 25세에 ‘아타미 살인사건’으로 제18회 기시다 희곡상을 받으며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일본 연극계를 ‘쓰카 이전’과 ‘쓰카 이후’로 구분하게 만들 만큼 1970~80년대 ‘쓰카 붐’을 일으켰다.
‘아타미 살인사건’을 비롯해 ‘전쟁에서 죽지못한 아버지를 위해’ ‘스트리퍼 이야기’ ‘언제나 마음엔 태양이’ 등 그는 희극을 주로 썼는데,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역설적인 화술로 풀어냄으로써 통쾌한 해방감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1982년 소설 ‘가마다 행진곡’으로 일본 최고의 대중문학상인 나오키를 거머쥔 그는 한동안 연극을 접고 소설과 수필 집필에 몰두하기도 했다. 특히 1990년엔 한국을 처음 방문한 뒤 에세이 ‘딸에게 들려주는 조국’을 썼는데, 이 책은 한국 아버지와 일본 어머니를 둔 자신의 딸에게 재일교포인 자신의 삶을 들려주는 내용이다. 이후 연극계에 다시 돌아온 뒤 그는 직접 작품을 쓰거나 연출하는 대신 배우를 육성하는 일에 매달렸다.
그런데, 지난 2월 도쿄 신바시엔부죠에서는 그가 오랜만에 직접 연출을 맡은 연극 ‘비룡전’이 공연돼 화제를 모았다. 일본에서 학생운동이 정점에 올랐던 1973년 초연된 이 작품은 시위 현장에서 꽃핀 기동대 대장과 학생운동 리더의 사랑을 통해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사상적 충돌을 다루고 있다.
구로키 메이사 같은 청춘스타가 출연하기도 했지만 연극 팬들이 극장을 찾은 것은 대부분 이 작품이 그가 연출하는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1월 초 그가 폐암에 걸린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강이 좋지 못했던 그는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전화로 연출 지시를 했다고 한다.
결국 공연이 막을 내린 뒤 4개월 뒤인 7월 10일 그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 향년 62세. 그는 유언장에서 딸에게 “일본과 한국 사이 대마도 해협 어딘가에 뼈를 뿌려달라”고 전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일본 언론은 일제히 애도를 표했다. 재일동포에 공격적인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조차 이날 "쓰카 고헤이가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아사히신문이 유서깊은 1면 칼럼 덴세이진고(天聲人語)에서 다뤘을 정도다.
그런데, 쓰카 고헤이가 유서를 남겼던,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은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아이하라 미카는 당시 간사이 지역 다카라즈카 시에서 로제를 공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카라즈카의 모든 작품은 본사 및 학교가 있는 다카라즈카 시의 전용극장에서 공연한 뒤 도쿄 전용극장에서 공연된다. 로제 역시 6월 25일부터 1달 예정으로 다카라즈카 시 전용극장 무대에 올려지고 있었다.
아이하라 미카는 7월 10일 낮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지만 도쿄에 돌아가지 않았다. 공연을 쉴 경우 다른 배우가 그 역할을 대신 할 수도 있지만 자신을 보러온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는 위해 남은 것이다. 아마도 평생 무대를 사랑한 아버지였기 때문에 그런 자신을 더욱 자랑스러워 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이하라 미카는 그 주의 공연이 모두 끝난 뒤 휴일에 맞춰 집에 갔다왔다고 한다.
한편 ‘로제’는 미즈 나츠키와 아이하라 미카가 마지막 작품으로 택했을까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가족을 모두 잃은 소년 로제가 복수를 펼친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종전 20년 후 국제경찰기구 인터폴의 형사가 된 로제는 2차대전이 끝난후 숨어버린 전범들을 찾는다. 이때 그는 무기밀매에 대한 정보를 얻는 한편 나치 전범을 쫓는 기구인 비젠탈의 조사원인 레어 코엔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레어를 통해 전범들을 도와주는 조직이 무기 밀매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침내 그는 레어와 함께 자신의 가족을 죽였던 전범 슈미트를 찾아내는데, 의사였던 슈미트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의료 봉사를 펼치고 있었다. 슈미트를 죽이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지만 로제는 변해버린 슈미트의 모습에 망설인다. 그리고 레어는 로제에게 개인적인 복수는 무의미하다며 슈미트를 법의 심판에 맡기도록 설득한다.
‘로제’는 미즈 나츠키의 대표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라고는 하지만 마지막 작품으로 하기에는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다. 게다가 여주인공의 역할이 너무 적어서 아이하라 미카는 주연이라기보다는 조연처럼 보였다.
그래도 재미없었던 1부 뮤지컬에 비해 2부의 쇼에서 미즈 나츠키와 아이하라 미카는 춤실력을 맘껏 선보였다. 다카라즈카의 작품은 대체로 2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에서는 뮤지컬을 공연하고 2부에서는 쇼를 무대에 올린다. ‘록 온’이라는 제목의 쇼에서 두 사람은 빠른 록 음악에 맞춰 현란한 몸짓으로 관객의 시선을 붙잡았다. 특히 아이하라 미카의 경우 어릴 때부터 발레를 배우고 다카라즈카 학교에서도 춤 실력을 인정받았을 만큼 발군이었다.
한편 아이하라 미카는 아버지 쓰카 고헤이가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병구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다카라즈카를 퇴단한 상태가 돼버렸다. 아직까지 활동 소식이 없는 것을 봐서는 아버지의 유품과 유작을 정리하는데 몰두하는 듯하다.
하지만 다카라즈카를 퇴단한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다른 배우들처럼 그 역시 언젠가는 무대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한다./lovelytea@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