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제조업 가동 늦어지면 국내기업 부품 부족 ‘쓰나미’

      2011.03.21 17:01   수정 : 2014.11.07 00:20기사원문

한국 산업계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일본 대지진 후폭풍 여파로 ‘한·일 공급망(Supply chain) 붕괴’ 위기감에 휩싸였다.

자칫 산업구조상 일본 제조업의 생산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한국도 연관 품목의 수출 차질을 빚는 ‘동반 피해’를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은 세계 10대 교역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핵심 부품·소재·장비의 국산화율이 저조해 대일 의존도가 높은 게 근본적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마디로 일본의 대지진 여파는 한국에 ‘경제 쓰나미’를 일으킬 수 있는 불가분의 무역구조인 것.

이처럼 일본과 ‘순망치한(脣亡齒寒)식 공생관계’를 형성한 한국은 이번 대지진 사태를 계기로 부품·소재·장비의 저조한 국산화율 해소를 비롯해 대일무역 의존도 하향, 수입선 다변화 등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경제연구원 제현정 수석연구원은 “부품·소재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은 이번 일본 대지진 사태가 장기화되면 막대한 손실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당장 일본 기업을 대체할 공급선을 찾기가 어렵고, 찾더라도 품질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어 이래저래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그간 한국의 일본에 대한 수입의존도는 조금씩 낮아졌지만 핵심 부품·소재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게 문제”라면서 “근본적인 대책은 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국산화율을 높이면서 일본에 대한 수입의존도를 낮추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저조한 국산화율은 시한폭탄

한국의 주요 부품·소재·장비의 국산화율은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부품·소재를 1∼2개월가량 공급받지 못하면 일순간 마비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먼저, 수출효자품목인 디스플레이의 경우 40% 안팎의 저조한 부품·소재 국산화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와 디스플레이뱅크 등에 따르면 한국기업들은 액정표시장치(LCD),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주요 부품·소재분야에서 불과 12∼43% 수준의 국산화율을 기록했다.

심지어 10개 이상의 핵심 디스플레이 부품소재의 경우 국산화율이 0%에 가까워 전량을 일본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그중 LCD 부품소재 국산화율은 전체 29%가량이다. LCD 셀재료는 ‘스페이서’가 17%로 미미한 국산화율을 기록하고 있다. 셀재료 중 ‘액정’과 ‘배향막재료’는 아예 국산화율이 ‘0%’다.

LCD 편광판재료의 국산화율도 마찬가지다. 그중 ‘보호필름’은 고작 국산화율이 25%에 그쳤다. LCD 백라이트유닛(BLU) 재료도 ‘프리즘재료’가 37%, ‘도광판재료’가 31%에 불과했다. LCD 부품의 국산화율은 ‘유리기판’ 69%, ‘편광판’ 65%, ‘구동칩’(IC) 56% 등이다. PDP 부품의 국산화율은 ‘광학필터’가 76%였다.

PDP 셀재료의 국산화율은 ‘전극재료’ 48%, ‘형광체’ 45%, ‘격벽재’ 45%, ‘유전체’ 70%, ‘색보정필름’ 10% 등이었다.

OLED재료의 국산화율은 ‘발광재료’(19%), ‘정공주입재료’(19%), ‘전공수송재료’(23%), ‘전자수송재료’(36%) 등 한참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자동차 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 일부 연료분사장치는 해외에서 수입하거나 로열티 지불 형태로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다. 자동차용 레이저센서를 비롯한 전자장치 신기술의 자체기술 수준도 낮아 대부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 등 차세대 자동차도 핵심부품의 국산화율이 저조하다.

정밀기계 분야의 국산화율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 기계제품의 경쟁력은 핵심기술 부족과 설계기술 미비로 일본에 비해 크게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게다가 엔진과 트랜스미션에 쓰이는 주요 부품들이 국산화되지 못해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변압기와 차단기 등 주요 전력기기의 기초 소재도 국산화율이 낮다는 분석이다.

한국의 2차전지 핵심소재와 원천기술은 일본의 기술수준에 비해 30∼50%에 머물러 있는 형편이다.

산업연구원이 2010년 11월 30일 발간한 ‘우리나라 리튬 2차전지 산업의 발전전략 평가와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차전지의 음극소재는 거의 99%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2차전지 소재의 실질 국산화율은 20% 미만에 불과하다.

■일본의 덫에 걸린 한국산업

이런 한국의 저조한 부품·소재·장비 국산화율은 일본의 ‘공급망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덫’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이 부품·소재·장비분야에서 대일본 수입규모와 적자폭을 좀처럼 줄이지 못하는 이유다. 애써 완제품을 팔아 벌어들인 돈의 상당부분을 일본산 부품·소재·장비 구매비로 사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식경제부와 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주력산업의 대 일본 수입비중은 43%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의 대 일본 철강교역은 전체 5000만t 중 27.7%인 1385만t 규모였다. 그중 냉연용소재인 열연강판과 조선용 후판은 일본산 수입비중이 50% 이상이라는 것. 일본 지진피해지역의 철강업체 제조능력이 일본 전체의 23%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석유화학의 경우 지난해 대 일본 수입은 46억달러였다. 석유화학분야 수입에서 일본의 비중은 전체의 34.9%가량이다.

일반기계의 대 일본 수입규모도 지난해 기준 92억달러였다. 이는 전체 기계부문 수입의 32.3%에 달한다. 대 일본 주요 수입제품은 밸브, 수치제어기(CNC) 등이다.

자동차부품도 일본으로부터 변속기, 커먼레일, 운전대, 운전박스 등을 수입하고 있다. 또한 일본산 엔진과 트랜스미션 등 주요 부품들이 국내 전체 수입량의 30∼40%를 차지하고 있다.


이외에 전자부품도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전자부품의 대일 수입은 18억8000만달러가량이다.
이는 전체 수입액의 20%가량이다.

/hwyang@fnnews.com양형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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