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아이들의 웃음이 부럽다/최진숙 스포츠문화팀 차장
덴마크 코펜하겐 시내를 걸으며 가장 눈에 들어온 건 아이들의 환한 웃음이었다.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원색 옷에 알록달록 모자를 쓴 이 아이들은 방금 막 안데르센 동화에서 튀어나온 듯했다. 아버지가 끄는 '자전거 수레' 속 아이들은 장난기가 넘쳤다. 우리나라에선 '자전거 수레'라고 하면 고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 들판에서 손녀를 태우고 다녔던 빨간 수레를 떠올릴 것이다. 덴마크의 수레는 이보다 훨씬 압축형이다.
대체로 자전거 한쪽 바퀴 위에 수레가 얹혀 있는 스타일이다. 시내 곳곳을 이 '자전거 수레'는 종횡무진 다닌다. 하루 통근자 중 37%가 자전거를 이용하는 도시이니 오죽하겠나. 자전거 전용도로는 거미줄처럼 잘 짜여 있다. 광장마다 주차 중인 자전거는 산을 이룬다. 여성들은 자전거와 어울리는 패션을 고민한다.덴마크의 또 다른 아이콘은 흰색 바람개비였다. 시내만 벗어나면 여기저기서 거대한 '윈드 터번(풍력발전기)'이 날개짓을 했다. 이 터번은 지나가는 바람의 97%를 빨아들인다. 현재 덴마크 전역에 설치된 터번은 5000여대. 덴마크는 전력의 20%를 풍력으로 조달하고 있었다. 덴마크 정부는 이 풍력 에너지 비중을 2020년까지 4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여기에다 2050년엔 화석연료를 아예 쓰지 않을 작정이다. 야심찬 이 계획 뒤엔 세계 1위 풍력설비 제조회사 베스타스가 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별볼일 없던 농기구 제조사에 불과했지만,1979년 세계 첫 터번을 만들어내면서 지금은 전세계 풍력발전기의 23%를 조달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올해 넘보는 매출액이 10조원이다. 가난한 구두수선공 아들 안데르센이 유년시절을 보낸 오덴세에서 차로 1시간 남짓 거리의 란데르스에 베스타스 본사가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페테르 벤젤 크루세 부사장의 명함엔 '바람, 그것은 우리에게 세계 자체입니다'라는 글귀가 박혀 있었다. 그는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 2015년쯤이면 풍력 발전에 필요한 비용이 화석연료와 비슷해질 것"이라고 했다. 덴마크의 꿈 같은 에너지 미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었다.
변화의 물결은 옆나라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EU)이 '2011년 유럽환경수도'로 선정한 '운하의 도시' 함부르크. 여기서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20년까지 40%로 늘리는 게 목표다. 함부르크 주정부 예니퍼 베시 환경개발부 부팀장은 "함부르크는 인구수(180만명)만큼 나무가 있는 도시"라며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990년 대비 40%, 2050년까지 80%를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함부르크의 '하펜시티 프로젝트'는 매력적이다. 2001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오염된 엘베강 인근 부지를 재개발, 2030년까지 완벽한 환경 지구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골자다. 실제 이곳을 가보니 다양한 신재생에너지가 실험되고 있었다. 건물들에 수소연료를 이용한 중앙난방식 시스템, 태양열, 지열 등을 적극 활용했다. 입주를 앞둔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신사옥은 지하 100m에서 끌어올린 지열을 사용하고 빗물도 재활용하는 시설을 갖췄다.
이달 초 1주일 남짓 환경 저널리즘 연수차 들른 코펜하겐과 함부르크는 이렇게 에너지 패러다임의 대변혁기를 맞고 있었다. 이제 고개를 우리쪽으로 돌려보자. 우리나라의 환경 시계는 지금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까.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2009년 현재 1.6%다.
이중 풍력은 0.06%. 물론 덴마크의 세찬 바람과 한반도의 평온한 바람이 같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을 지켜주기 위해 미래를 준비하는 유럽 선진국의 발빠른 행보를 그저 구경만 할 순 없지 않을까./jins@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