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별금과 팔마비(八馬碑)
2011.07.15 10:12
수정 : 2011.07.15 10:12기사원문
"염치있는 선비에게는 공경심이 생겨 더욱 자책할 것이요,탐관오리도 두려운 마음이 들어 잘못된 폐습을 고칠 것이다.이 비석을 세운 뜻은 관리들에게 본보기로 삼도록 하기 위함이다"
전남 순천시 영동에 있는 팔마비(八馬碑) 비문 내용으로 공직자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준다. 팔마비는 고려 충렬왕때 이 지역 목민관을 지낸 승평부사 최석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송덕비다.
당시 이 지역에는 이임하는 부사에게 말 일곱마리를 전별금으로 주는 관례가 있었다. 최석이 이임할때 백성들은 관례대로 말 일곱마리를 선물했다.
조선시대 들어 팔마비와 같은 송덕비 또는 선정비를 세우는게 유행처럼 번졌다.탐관오리마저 청렴하고 선정을 베풀었다며 양민들에게 억지로 선정비를 세우게 하는 일도 벌어졌다.
정부제2종합청사가 있는 경기도 과천에서 전해내려 오는 일화는 관료사회의 뿌리 깊은 부조리를 해학적으로 대변한다. 양민들의 고혈을 짜내기를 일삼았던 과천현감이 이임에 앞서 자신의 송덕비를 세우게 했다. 이임하는 날 드디어 송덕비를 제막해 보니 비문 내용이 걸작이다.
"금일송차도(今日送此盜):오늘 이 도둑을 보내노라"
난감한 처지에 몰린 현감은 비문에 이렇게 덧붙였다.
"명일래타도(明日來他盜);내일은 또 다른 도둑이 오고,
차도래부진(此盜來不盡):이 도둑은 계속해서 올 것이다"
관료사회에 뿌리 내린 폐단의 정곡을 찌른 비문이다.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실이 이임하는 국토해양부 국장급 간부가 전별금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사실을 12일 적발했다.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으로 근무했던 이 고위공직자는 직원과 관련업체로부터 410만원 상당의 행운의 열쇠 2개와 현금 100만원,그리고 250만원 상당의 진주반지 1개를 받았다고 한다.
이 금품들은 모두 이삿짐 보따리에서 나왔다.'현대판 도둑'과 다름없는 몰염치한 행위다.권도엽 국토부 장관이 자정운동에 앞장서고 사정당국이 아무리 감찰활동을 강화하고 나서도 공직사회에서는 버젓이 전별금이 오고 가는 것이다.
관례로 자리 잡은 공직사회의 폐단은 인식의 대전환이 없는 한 뿌리 뽑기가 힘들다.관청의 정문마다 팔마비를 세워 공직사회가 교훈으로 삼기를 권하고 싶다. 이렇게 해서라도 공직사회의 부조리를 뿌리 뽑지 않으면 우리사회는 건강해 질 수 없다.
/ink548@fnnews.com 김남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