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뛰는’ 범죄수법 ‘기는’ 사법당국

      2011.08.29 17:16   수정 : 2014.11.05 12:07기사원문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경각심은 높아지고 있는 데 비해 범행 수법 및 대응은 다양화·첨단화하고 규모도 날로 커지고 있다. 배임·횡령과 가격담합 및 불완전 판매,정부관료와 기업간 이권 비리 등은 익히 알려진 전통적인 수법이다.

최근에는 화이트칼라 범죄가 고도의 경제지식을 활용한 각종 신종수법으로 이어지고 있어 사법 당국을 당혹케 하고 있다. 더불어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를 고액의 수임료로 선임해 탄탄한 방어막을 쌓아 대담한 범행을 하고도 가벼운 처벌로 빠져나간다. 이들 범죄 행위에 대한 느슨한 처벌 규정도 화이트칼라 범죄를 양산하는 데 한 몫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뛰는' 수법에 '기는' 단속

최근 화이트칼라 범죄의 특징은 부동산투자신탁(REITS),주식워런트증권(ELW) 등 현물시장이 아닌 파생상품이나 금융상품 분야 등 신시장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새 시장에서 화이트칼라 범죄가 저질러지고 있지만 사법 당국에서 피해규모와 범죄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이에 상당수 많은 범죄가 음지에 묻혀 유야무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고 기소로 이어지는 사건도 이미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뒤여서 결국 선의의 투자자들은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 써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이권이 큰 신종 범죄의 경우 화이트칼라 범죄 당사자 외에 정부의 관리권자 또는 인·허가 담당자들까지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세하는 것이 특징이다. 감독기관의 감시체계가 불투명한 데다 사실상 '갑'으로 불리는 규제·인허가 담당자가 소수에 불과해 로비스트들의 집중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대안으로 급부상한 자기관리리츠는 업자와 인·허가 담당자인 해당 부처 공무원이 결탁한 대표적인 민·관 공동 화이트칼라 범죄로 기록됐다. 자기관리 리츠는 지분 투자를 하면서 지분은 증권시장에 등록까지 돼 있어 '부동산 및 주식 투자'가 결합한 신종 투자상품으로 인기를 끌어왔다.

국내 1호로 자기관리리츠로 영업인가를 받아 유가증권시장에까지 상장된 다산리츠는 자본금 요건을 갖추기 위해 조직폭력배 출신 인사를 끌어들여 주식대금 55억원을 가장 납입한 것이 적발돼 담당자가 지난 22일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국내 최초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골든나래리츠는 인·허가담당 기관인 국토부 공무원과 내통하는 등 계획적으로 주가조작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경우다. 이는 자기관리리츠에 대한 최저자본금이 100억원에서 70억원으로 줄어드는 등 규제가 완화된데다 담당 공무원도 3명 밖에 안돼 사실상 감시체계가 허술한 점을 악용한 것이다.

파생상품 시장에서도 ELW 시장이 확대되면서 전직 증권사 직원 등이 스캘퍼(초단타 매매자)로 변신해 거액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스캘퍼 18명(5개 조직)이 법정에 서게 됐다.

검찰 관계자는 "1996년 파생상품시장은 첫날 거래금액이 1500억여원이던 것이 지금은 하루 64조원으로 급성장했지만 일반 투자자들이 모르는 부정한 수법을 쓰거나 제도적 허점을 악용해 불공정 행위를 벌여 왔다"고 전했다.

■견고한 '화이트칼라 범죄 방어'

화이트칼라 범죄 조직 및 당사자의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한 변호체계도 현실적인 법 처벌 수위를 피해가는 수단이다.

실제로 범죄자를 색출·처벌하던 고위급 전관 판·검사는 수십억∼수백억원대의 자금을 횡령한 화이트칼라범죄자들에게 필요한 '방패막이' 역할을 해왔다는 게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경력 15∼20년차 이상 검사장급 이상 출신 변호사들은 기소단계에서 후배검사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몸값'(수임료)이 가장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월 대검 중앙수사부의 부산저축은행 수사가 시작되자 은행측은 법무법인 '바른'을 통해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인규 전 대검중수부장 등 3명에게 사건을 맡기고, 박연호 부산저축은행 회장이 입건되지 않을 경우 성공보수 3억3000만원, 불구속기소때는 2억2000만원을 성공보수로 주도록 계약을 체결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가벼운 사건의 경우 전관 변호사가 공식적으로 사건을 수임하거나 담당하지 않은 채 후배 검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하는 '전화변론'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짧은 소멸시효 범죄방치

주가조작 등 증권시장에서 벌어지는 범죄의 경우 소멸시효가 짧아 오히려 범죄를 방치하는 꼴이라는 지적도 있다. 검찰에 늦게 적발되거나 피해자가 이를 뒤늦게 인지하는 경우 처벌하거나 손해배상을 받아내기 어려워 법의 사각지대가 화이트칼라 범죄를 결과적으로 보호하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국내에서 자본시장통합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경우 '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처벌할 수 없다.
피해자가 손해배상소송을 내는 경우에도 '(부정)행위를 안 날로부터 1년'안에 소송을 제기해야 가능해 사실상 피해회복도 쉽지 않다.

우리나라 자통법에 해당하는 미국의 사베인옥슬리법은 처벌 소멸시효를 '위법행위가 이뤄진 날로부터 5년',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는 '위법행위 구성요소인 사실을 발견할 때로부터 2년' 등으로 다소 높게 정해 놓고 있다.


금융소비자연맹 조남희 사무총장은 "최근 자통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됐는데도 처벌·손해배상 소멸 시효기간은 종전대로 뒀다"면서 "범죄자에 대한 처벌과 소비자들에 대한 피해회복에 대해서는 제도적 장치가 미흡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조창원 팀장 김성환 강두순 강재웅 이병철 이유범 최순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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