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너 잃은 현대그룹.. 대북사업도 ‘중대 기로’

      2011.12.20 17:36   수정 : 2011.12.20 17:36기사원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의 8년여 인연이 끝났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때부터 시작된 김정일과의 애증 관계는 그의 사망으로 사실상 청산됐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와의 관계구축, 불확실한 한반도 정세로 김정일 사망 후 현대의 대북사업은 적지 않은 시련과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정은 회장은 20일 재계에서 처음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에 조의를 표했다. 그는 "금강산관광과 개성공업지구 협력사업을 열어 민족화해와 협력을 위해 노력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타계에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의 예의를 갖출 것"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날 오후 정부가 현 회장에 대해 방북 조문을 허용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조만간 현 회장의 방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정은 회장과 김정일 위원장이 만난 건 총 네번이다. 2005년부터 2년에 한 번꼴이었다.

정면돌파 방식을 선호하는 현 회장은 대북사업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을 통해 풀어갔다. 그는 2009년 CNN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에 대해 "매우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와 직접 대화가 이뤄지면 좋은 결과가 많이 도출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평했다. 직선적인 김정일과의 직접 대화는 실타래처럼 꼬인 문제를 풀어줄 확실한 카드였다는 것을 현 회장은 잘 알고 있었다.

"(김 위원장이) 원하는 것 다 말하라 했다."

2009년 8월 17일 오후 2시23분. 경기 파주의 도라산 남북출입국사무소 입경장, 빨간 재킷을 입은 현정은 회장이 환한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반신반의했던 김정일과의 네번째 면담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북에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 석방과 함께 북측과 현대와의 5개 합의사항(금강산과 개성관광 재개, 백두산 관광 시작, 이산가족 상봉 등)이란 선물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이것이 김정일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현 회장이 김정일을 처음 만난 건 지난 2005년 7월이었다.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의 퇴출을 염두에 둔 본격 홀로서기를 위한 행보였다. 이 자리에서 김정일은 "고 정몽헌 회장에겐 금강산을, 현정은 회장에겐 백두산을 주겠다"며 현 회장에게 백두산과 개성 시범 관광을 선사했다.

생전 김정일은 정몽헌 회장의 타계와 관련, 현 회장과 맏딸인 정지이 전무에 대해 안타까움을 지녔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 회장은 당시 방북 직후 "김 위원장은 정주영 회장과 정몽헌 회장 이야기를 많이 하며 마음이 쓰리다고 했다"고 말했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대통령 특별수행으로 방북, 면담의 기회를 얻었던 현 회장은 그달 말 재차 방북했다. 당시 김정일은 현 회장에게 백두산 관광 시찰을 위한 특별기를 내주고 영빈관을 숙소로 제공했다. 이를 두고 조건식 전 현대아산 사장은 "북측의 현 회장에 대한 신뢰랄까, 애착이 대단히 강하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7월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은 현대로선 최대 시련이었다. 사업 중단으로 직원 수 70%를 구조조정하고 약 5000억원의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이 같은 상황은 '김정일 면담 카드'로도 풀 수 없었다.

1998년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으로 시작된 현대의 대북사업은 고 정몽헌 회장에 이어 며느리 현 회장에게 도전과 시련의 과제다.

남북경협과 통일이란 역사적 사명감에서 시작한 대북사업은 냉철한 계산과 결단이 필요한 기업 경영과는 괴리가 있었다. 그만큼 현대가 치러야 할 대가는 컸다.
오랜 사업 파트너였던 김정일 사망으로 현대의 대북사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사업 중단 고착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현대의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ehcho@fnnews.com조은효기자

■사진설명=지난 2005년 7월 16일 강원도 원산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왼쪽)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첫 면담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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