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 화백 “모든 사람이 가진 아름다움 칭찬하세요”
2012.01.02 22:09
수정 : 2012.01.02 22:09기사원문
―요즘도 그림을 많이 그리나요.
▲붓질은 좀 힘에 부쳐서 요즘은 드로잉만 하고 있어요. 얼마 전부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들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데 사실 그것도 여의치가 않네요. 힘이 달리기도 하지만 회원들 중 누구는 그려주고 누구는 안 그려주면 섭섭해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대상을 정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술원 회원 중 미술 분과에 속한 분들만 그려볼까 합니다.(웃음)
―예술원 회원 드로잉전 외에 올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나요.
▲지난해 5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오픈아트페어(SOAF)에서 여덟살짜리 처조카 채은이와 함께 가족 전(展)을 열었는데 올해는 화랑에서 전시회를 같이 한 번 해볼까 합니다. 우리 조카님이 그림에 아주 재주가 많아요. 그리고 나이가 나이인 만큼 내 그림을 잘 정리해 후대에 남기는 일을 해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에요. 내 작업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하모니즘'을 국내뿐 아니라 세계 미술계에도 널리 알리고 전파하는 일을 더 늦기 전에 해야 해요. 그리고 자금 부족 등으로 운영난을 겪고 있는 김흥수미술관도 재건해야 하고….
―올해 한국 나이로 아흔 넷인데 선생님만의 건강법이 있나요.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해야 건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서는 절대 건강할 수 없어요. 미움과 거짓은 화가 되고 그것은 결국 건강을 해치는 독이 되고 맙니다. 나의 건강법이라는 게 사실 별게 없어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과 정직'이라고 해야 할까. 거짓을 행하지 않고, 남을 미워하지 않고,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면 건강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하하하.
―요즘 미술계가 어려운데요.
▲문화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했는데 사실 미술을 포함한 예술 분야에 대해 우리 사회가 너무 홀대하고 있는 것 같아요. 미술관들도 외국 작가만 선호하고 컬렉터들도 외국 작품 위주로 구매를 하고. 이러다가는 한국미술의 미래, 혹은 한국문화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게 될지도 몰라요. 사실 미국의 미술이라는 게 뭐 별게 있었습니까. 20세기 초반만 해도 만화 같은 그림이나 그리던 미국 미술은 시시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국가가, 그리고 기업이 발 벗고 나서 지원해주니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거예요. 요즘 중국 미술이 뜬다고 하는데 그것도 모두 자국 작가를 우대하는 풍토 때문입니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 같은 곳에서 중국 작품이 거액에 팔리는 것은 중국인 컬렉터들 때문입니다. 우리 컬렉터들이나 기업들도 외국 작품에 한눈을 팔 것이 아니라 한국미술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노화백은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과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이병철 회장 같은 분이 몇 명만 더 있었어도 한국미술이 지금보다는 몇 배 더 발전했을 것"이라는 게 노화백의 주장이었다.
김 화백이 이병철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4·19 혁명이 일어난 그해 말 프랑스 파리에서였다. 두 명의 아들과 함께 프랑스를 방문한 이 회장이 당시 파리에서 유학 중이던 김 화백을 찾아왔다. 파리 지리에 어두웠던 이 회장 일행을 안내했던 인연은 국내로 다시 돌아온 후에도 계속됐다. 이 회장은 김 화백의 작품을 자주 사줬다. 김 화백은 "그것은 김흥수 개인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한국미술에 대한 투자"라고 말했다. "이병철 회장은 내 작품뿐 아니라 많은 한국 작가의 작품을 사들였고 한국 고미술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컬렉션은 결국 한국문화의 유산이 되고 있지 않은가"라고 노화백은 힘주어 말했다.
―'우리시대의 웃어른'으로서 우리 사회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내가 얼마 전부터 펼치고 있는 운동이 있습니다. 미술계 후배들을 만날 때도 꼭 이 말을 합니다. 서로 칭찬하자는 거예요.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지만 우리의 눈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할 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로댕이 한 말입니다. 칭찬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좋은 점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이 말은 화단에도 유효하고 이 사회에도, 정치에도 유효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보지 못할 뿐입니다. 서로 칭찬하다 보면 가정이 화목해지고 사회가 밝아지고 자신의 마음도 따뜻해진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끝으로 새해 덕담 한마디를 부탁했더니 노화백은 인터뷰 내내 줄곧 옆에 앉아있던 부인에게 종이와 연필을 가져오라고 했다. 복돌이와 놀며 말참견을 하던 채은이가 빠른 걸음으로 종이와 연필을 가져오자 노화백은 새하얀 백지 위에 '사랑을 온 세상에'라는 일곱 글자를 꾹꾹 눌러 썼다. 그리곤 그 아래 큼지막한 하트 두 개를 겹쳐 그리더니 그 안에 또 '사랑'이라고 써넣었다. 서로 칭찬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다보면 온 세상이 밝고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노화백의 단순하지만 명쾌한 낙관(樂觀)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김흥수 화백은
1919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한 김흥수 화백은 올해 한국나이로 아흔 넷이다. 일본 도쿄미술학교(현 국립도쿄미술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1936년 조선미술대전(鮮展)과 1949년 대한민국미술대전(國展)에서 입상하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서울대 미대 강사로 재직하던 1954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3년만인 1957년 프랑스 미술전의 하나인 파리 살롱 도톤느 회원으로 피선돼 활동했다. 1961년 귀국해 국내에서 작품 활동을 벌이다 1967년 미국 무어미술대학 초빙교수로 다시 도미(渡美), 10여년간 미국에서 활동하며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다.
미국 펜실베니아 미대 초빙교수 시절인 1977년 구상과 추상을 한 화면에 담는 하모니즘을 선언, '하모니즘의 창시자'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김 화백은 "구상과 추상이 한 화면 안에 있는 하모니즘은 음(陰)과 양(陽)의 조화를 추구하는 동양철학에서 출발한다"며 "구상으로 현실을 담고 추상으로 정신을 담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유럽 평단으로부터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얻은 하모니즘 덕분에 김 화백은 한국화가로는 최초로 프랑스 파리 뤽상부르미술관(1990년)과 러시아 모스크바 푸시킨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미르타주박물관(이상 1993년) 등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1998년부터는 예술의전당과 함께 '김흥수 화백의 꿈나무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영재미술교실을 창설,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도 했다. 또 2006년에는 제주 현대미술관에 800호짜리 대작 등 20여점의 작품을 기증, '김흥수 화백 영구 상설관'을 설치하기도 했다. 국내외에서 수많은 전시회를 가진 김 화백이 가장 최근에 연 개인전은 지난 2010년 9월 fnart SPACE가 개관 기념전으로 마련한 '김흥수 화백 초대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