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현정'의 한 해 되길/김승중 생활과학부 부장

      2012.01.26 17:51   수정 : 2012.01.26 17:51기사원문

#. 한국을 대표하는 지식인 그룹 중 하나인 대학교수들은 매년 한국 사회의 세태를 사자성어로 정리해 발표한다. 임진년(壬辰年) 첫 달에 이들 사자성어를 반추해 보니 참 씁쓸했다.

 지난 2009년 한국 사회를 특징 짓는 사자성어는 '방기곡경(旁岐曲逕)'이었다. 이는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일을 추진한다는 것을 비유할 때 많이 쓰인다. 2009년은 세종시 수정, 4대강 논란, 미디어법 등 굵직한 정책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타협과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반목과 대립만 생생하게 보여준 한 해였다.


 2010년은 '장두노미(藏頭露尾)'로 정리된다. '감춰진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중국 원나라의 문인 장가구가 지은 '점강진.번귀거래사'라는 문학 작품에 나온다. 당시엔 4대강 논란, 천안함 침몰, 민간인 불법사찰, 영포 논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예산안 날치기 처리 등 많은 사건이 있었다.

 2011년에는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의 '엄이도종(掩耳盜鐘)'이 선정됐다. 중국 진(秦)나라 때의 사론서(史論書)'여씨춘추'에 나오는 이 사자성어는 나쁜 일을 하고도 남의 비난을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음을 의미한다. 이는 한.미 FTA 비준동의안 날치기 통과, 대통령 측근 비리 등 '소통 부족과 독단적인 정책 강행'을 비판한 것이다.

 이들 사자성어엔 분열·갈등·대립 등 모두 마음에 담기 싫은 단어들이 모여 있었다. 부정적이고 암울한 이 같은 단어들은 매년 순번을 돌아가면서 우리 가슴을 헤집어 논 후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 대학교수들은 한 해만 정리한 것이 아니다. 국민의 염원을 사자성어로 함축해 제시했다. 2010년엔 '강구연월(康衢煙月)'을 내놨다. '번화한 거리에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치는 모습'이라는 뜻을 지닌 강구연월은 태평성대의 풍경을 묘사할 때 쓰인다. 분열과 갈등이 해소되고 강구연월의 시대가 열리길 기대하는 국민의 마음을 읽은 것이다.

 교수들은 2011년 희망의 사자성어로 '민귀군경(民貴君輕)'을 뽑았다. 민귀군경은 맹자가 '백성이 존귀하고 사직은 그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 성어이다. 나라의 근본인 국민을 존중하는 정치,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갈망했던 강구연월과 민귀군경은 끝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총선(4월 11일)과 대선(12월 19일)이 함께 치러지는 2012년, 대학교수들은 '그릇된 것을 깨뜨려 없애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의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다. 불교에서 나온 파사현정은 '어긋나는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엔 올해 치러지는 총선으로 사악한 무리를 몰아내고 옳고 바른 것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

 #. 흑룡의 해인 2012년엔 파사현정만큼은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자. 아니, 할 수 있다. 파사현정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주체는 정치권이 아닌 국민이기 때문이다. 올해 양대 선거는 '김정은 시대'라는 북한 변수, 유럽발 글로벌 경제 위기, 사회 양극화 등 결코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실시된다. 그래서 이번 양대 선거는 권력교체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시점에 우리는 그간 올바른 선택을 했는지 되짚어보자. 시대정신에 어두운 자, 국민과의 소통에 미숙한 자, 위기관리 능력에 문제가 있는 자를 뽑은 후 후회한 적이 다반사였다.

 파사현정을 올곧게 실천하기 위해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기성 정치권, 대화와 타협을 모른 채 폭력과 독단에 몰두한 자들은 물갈이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 역정이 투명하고, 도덕적이고, 위기관리능력이 있고, 국민과 소통하며 사회 양극화 해소와 서민경제 회복에 사력을 다하는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올바른 심판 없이는 역사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파사현정의 가르침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

sejkim@fnnews.com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