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자본주의는 지금 진화중 (3) 여의도를 점령하라고?

      2012.02.06 17:29   수정 : 2012.02.06 17:29기사원문

"동감합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는 힘들지만 마음으로 적극적인 지지를 보냅니다."

"시위가 있었나요? 왜 시위를 하는 건가요? 무엇을 위해 하는 거죠?"

체감온도가 영하 22도까지 떨어졌던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 있는 텐트 두 개에 대한 엇갈린 반응이다.'여의도를 점령하라'가 쓰인 푯말 몇 개와 함께 세워진 텐트는 몇 겹의 비닐로 싸여 있어 주변 빌딩과 어울리지 않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텐트 안으로 들어가자 하얀 이불과 가방, 캄캄한 밤을 밝힐 수 있는 랜턴, 몇 병의 자양강장제와 꿀물병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여의도를 점령하기 위해 나선 시위대 2명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지난해 자본주의의 수도라 할 수 있는 미국 뉴욕을 비롯해 주요 도시에서 벌어졌던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한국의 정치경제 중심지인 여의도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찻잔 속의 태풍 or 태풍의 눈?

 지난해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와 달리 '여의도를 점령하라' 시위는 조촐했다.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시민의 지지를 받으며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던 반면 '여의도를 점령하라'는 무관심 속에 진행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

 이 시위는 제2차 전세계공동행동의 날인 지난해 12월 10일 시작됐다. 서강대총학생회와 대학생사람연대가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집중집회에도 150∼200명이 모일 정도로 규모는 크지 않다.

 그러나 목적은 '월가를 점령하라'와 비슷하다. 자본주의는 과연 모두를 위한 시스템인가 하는 질문에서부터 론스타의 먹튀 사건, 한국거래소 안에서 거래되는 파생금융 상품들이 특히 3경원이 넘을 정도로 엄청난 거래 규모를 자랑하면서도 단 한푼의 거래세도 내지 않는다는 현실에 대한 문제점에서 시작됐다. 또 1%로 상징되는 특정 계층이 자본주의의 부를 독점한다며 이 같은 체제의 병폐를 해소하기 위해선 이를 사회적으로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등 1%만을 위한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실제 현대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전 세계 부의 39%를 상위계층 0.5%가 차지하고 있고 대다수인 67.6%는 부의 3.3%만 소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2000년대 중반 0.306에서 0.315로 악화됐다. 지니계수는 0과 1 사이의 값을 가지는데 0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낮다는 뜻이다.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와 달리 '여의도를 점령하라' 시위는 현재까지는 미약한 상태다. 그러나 '여의도를 점령하라' 집회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부정적인 시각도 많지만 '88만원 세대'로 대변되는 20대는 물론 자본주의 시장의 핵심인 여의도에서도 마음으로 동조를 보내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연세대 류상영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자본주의의 중심인 월가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99% 계층의 데모는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여의도 한 증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은 "필요하다. 세상은 점차 기회조차 공평하게 주지 않고 있어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여의도를 점령하라'의 한 실무책임자는 "(시민이) 많이 지지를 해주고 있다. 트위터로 배고프다고 이야기를 하면 감자탕을 가져다 주시는 분도 있고, 삼계탕을 가져다 주는 분도 있었다. 후원금을 보면 지출수입을 따졌을 때 항상 300만원이 유지되는 것만 봐도 지지를 해주시는 분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결책은 아직, 그러나 다양한 방안 시도

 월가에서 시작된 자본주의 병폐에 대한 지적이 대서양을 건너 유럽,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까지 건너올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지만 문제는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코경영연구소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지난 2008년 이후 '깨어 있는 자본주의' '따뜻한 자본주의' '창조적 자본주의' 등 자본주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고 프랑스는 국민총행복지수(GNH.Gross National Happiness)를 GDP와 함께 양대 국정지표로 채택했다. 또 일본은 쓰나미 사태 이후 공급체인 재건 과정에서 산업생태계 차원의 협력의 중요성을 재인식했고 장기 불황과 실업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공생(共生) 자본주의에서 찾자는 논의를 확산시키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조지프 나이 교수는 "지금은 '공산주의'라는 대안 이데올로기가 있던 냉전시대도 아니며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자본주의'와 대적하던 1930년대도 아니다"라면서 "아직은 분명한 대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성신여대 강석훈 경제학과 교수도 "현재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는 공감대의 형성 단계라기보다는 백가쟁명식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법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정부 주도 또는 일반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다양한 시도는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시도가 '월가'를 비롯한 대형 금융기관들로부터 서민이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설립된 금융기관이다.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과 인도네시아 뱅크라키야트인도네시아(BRI) 등이다.

 지난 1976년 무함마드 유누스 교수에 의해 추진됐고 1983년 독립은행으로 전환된 그라민은행은 빈민층 구제를 목적으로 한 소액금융 대출기관이고 BRI는 대출 상환율을 높이기 위해 담보를 요구하는 것이 특징인 소액금융기관이다.

 이 같은 서민은행은 국내에서는 '미소금융'으로 발전됐다. 미소금융은 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하기 힘든 금융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창업·운영자금 등의 자활자금을 무담보·무보증으로 지원하는 소액대출사업으로 지난 2009년 정부 주도로 시작됐다.
사업 시작 이후 지난해 12월 31일까지 총 5만9072건, 4906억원이 지원됐다. 복지사업자 지원(3만4773건, 1558억원)까지 포함하면 9만여명이 미소금융 혜택을 본 것이다.


 미소금융 한 관계자는 "사실 거창하게 자본주의의 병폐를 해결하는 기관이라는 말을 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서민이 지원을 통해 도움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기자 손영진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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