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달리는 경주마 피 몇방울로 감별

      2012.03.04 17:12   수정 : 2012.03.04 17:12기사원문

 '명마의 정액 한 방울이 다이아몬드 1캐럿과 맞먹는다.'

 캐나다 부호 에드워드 테일러가 생산한 전설의 명마 '노던댄서'로 인해 생겨난 이 말(言)은 경마가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을 기대하는 혈통 스포츠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미국 켄터키더비에서 우승하고 1964년 캐나다 '올해의 스포츠선수'로 뽑혔던 노던댄서는 이듬해부터는 씨수말(종마)로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노던댄서는 자마(子馬)들의 뛰어난 성적 덕분에 1987년 교배료가 100만달러(약 11억원)를 호가하기도 했다.

 한국마사회(KRA·회장 장태평)와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생물정보학 김희발 교수)은 자체개발한 경주마 능력관련 유전자(DNA)칩을 이용해 한 차례의 혈액 검사만으로 경주마의 경주력뿐만 아니라 후대 능력까지 예측할 수 있는 말 유전체 분석 기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4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한국마사회가 2008년부터 진행해온 '한국 경주마 개량을 위한 유전자 연구'의 일환으로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한국마사회 씨수말 14두 포함 경주마 960마리를 대상으로 DNA를 분석, 5만개의 유전정보(SNP) 중 경주능력 유전자 192개를 도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말의 피 몇 방울만 있으면 유전체 분석 기술을 사용해 이 말이 단거리에 강한지, 중장거리에 강한지를 알 수 있다. 심지어 자마들이 한국경마에서 어떤 성적을 거둘 것인지 등을 예측할 수 있다.

 경주마의 질주 본능은 순발력.근력.폐활량 등 육체적인 능력과 승부 근성.사람과의 친화력 등 정신적인 부분이 합쳐져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질주 본능의 30% 이상은 유전적으로 전달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아무리 후천적 훈련으로 능력을 개발한다 해도, 아무 말이나 뛰어난 경주마가 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때문에 경주마의 혈통은 해당 경주마의 몸값을 좌우하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경주마 경매에서 40억원에 수입된 씨수말 '메니피'의 1세짜리 자마가 역대 최고가인 1억1000만원에 낙찰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경매시장에서 유명한 능력마의 자손들은 프리미엄이 붙어 훨씬 비싼 값에 팔리기 때문이다.

 한국마사회는 유전체 분석 기술을 바탕으로 "K-Nicks"라고 명명한 경주마 최적교배프로그램을 말혈통정보 홈페이지(http://studbook.kra.co.kr)를 통해 지난 2일부터 일반에 공개했다. 이번 프로그램의 핵심은 경주마 DNA 정보의 해독을 통해 경주마의 개체별 경기력 및 특성을 파악하고 환경요인을 최대한 제거한 유전능력(육종가)을 경주마 교배에 활용한다는 것.

 한국마사회는 서울대학교와 산학협동으로 연 2회 유전능력평가를 실시해 마필별로 유전능력을 수치로 평가할 수 있는데, 이 점수를 '육종가'라고 한다. 씨암말들도 육종가에 따라 순위를 매길 수 있다.

 말 생산자는 이번 유전체 분석 기술을 이용해 유리한 교배선택을 할 수 있다. 일단 육종가를 통해 우수한 능력마들을 고르고 마사회 말혈통정보 홈페이지에 있는 '최적교배프로그램'을 이용해 자신의 씨암말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씨수말을 고르면 된다.

 한국마사회 연구담당 이진우 차장은 "기존 씨수말을 통한 경주마 혈통개량은 최소 7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유전체 분석 기술을 통한 혈통개량은 검사 당대 확인으로 끝나기 때문에 개량에 필요한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국산마 혈통개량이 한층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마계는 이번 연구를 통해 종마 분야가 말 산업 발전에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주마로 사용되는 서러브레드(Thoroughbred)는 세계 공통의 등록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국내에서 생산한 말도 외국 경마에 나갈 수 있다. 따라서 유전체 분석 기술을 이용해 뛰어난 경주마를 생산하면 국내산 말을 수출할 수 있고 해외 경마를 제패하며 가치를 한껏 높일 수도 있다.
특히 앞으로 중국 경마시장을 겨냥해 경주마 생산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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