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국수 "장고 끝에 악수..주저함 없는 거침없는 샷 중요"

      2012.03.18 18:13   수정 : 2012.03.18 18:13기사원문

아버지가 동네 어른과 바둑을 두고 있는데 옆에서 훈수를 두는 네 살짜리 꼬마가 있었다. 바둑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는데 "여기 둬라, 저기 둬라"며 참견하는 아들의 모습에 놀란 사람은 누구보다도 꼬마의 아버지였다. 아들의 재능을 발견한 아버지는 곧장 아들을 목포에 있는 기원에 보내 본격적인 바둑 수업을 받게 했다. 아이가 바둑을 두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고 대견스러운 어른들은 과자나 사탕으로 어르고 달래 아이에게 바둑을 가르쳤다. 그리고 재주를 발견한 어른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이를 서울로 보내라고 했고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온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를 했다.


'국수(國手)' 조훈현(59)은 바로 이렇게 해서 탄생되었다. 9살 때인 1962년에 세계 최연소 프로 기사에 입단한 조훈현의 등장으로 우리나라 바둑은 변방에서 세계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1980~1982년 한국 바둑 전관왕, 한국 최초 9단, 1995년 1000승 달성, 1996년 한국기네스협회 선정 최다연승 및 최다타이틀 획득, 은관문화훈장 등 조훈현의 바둑 인생은 최초에서 최고를 넘나드는 화려함 그 자체다.

필자가 조 국수를 만나는 호사를 누린 것은 2010년 11월 14일 경기도 여주 해슬리 나인브릿지에서다. 당시로 골프 입문 5년째라는 그가 라운드를 위해 필자가 대표이사로 몸담고 있던 골프장을 방문하면서 만남은 성사되었다. 우리는 그날 바둑, 골프, 그리고 인생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필자로서는 잊지 못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바둑은 조훈현의 '인생'이지만, 50대 중반에 만난 골프는 그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와 같은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서로에 대한 친밀감은 더욱 두터워졌다.

성공한 사람에게는 그를 현재로 이끈 스승이 있게 마련이다. 조훈현에게 있어 영원한 스승은 열살 때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떠나 문하생으로 들어갔던 세고에 겐사쿠다. 인간 됨됨이를 강조한 세고에 선생은 '스승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가는 길을 터주는 역할자에 불과하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한국에 들어와 제자로 받아들인 이창호에게도 세고에의 가르침을 전수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현대인들에게 바둑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인간성 회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바둑인들을 곧잘 '신선'에 비유하는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제비'라는 닉네임이 늘상 붙어 다닌다. 젊은 시절 등산을 즐겼던 그가 산길에서 워낙 빠르게 움직이는 걸 보고 한 선배가 그렇게 부른 것이 계기가 됐다. 바둑도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대국을 더 빨리 끝내고 싶어 예전보다 공격적인 별명이 싸움의 신이라는 의미의 '전신'이 되었다. 그는 "골프도 매년 똑같은 샷이 나오지 않듯 바둑도 비슷하다"며 "나이가 들어가면서 10시간씩 앉아 있기가 너무 버거워져 '빨리 끝내고 싶다'는 일념으로 내 바둑도 전투적, 공격적으로 변하게 됐다"고 말한다.

조훈현은 보기 드물게 아내의 내조 덕분에 골프에 입문하게 됐다. 타이틀을 전부 내놓으면서 시간이 많이 나자 아내가 골프 입문을 권유했던 것. 조훈현은 "타이틀을 하나씩 내놓을 때마다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부 다 내려놓으니까 '이제 더 이상의 내리막은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홀가분해졌다"며 "이제 내 인생은 오르막만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거지요. 마음을 비웠더니 오히려 모든 게 잘 되더라고요. 물론 그때 만난 골프도 마음을 비운 채 배웠죠"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베스트 스코어가 83타라는 조 국수는 바둑에서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마무리, 즉 어프로치가 골프에서도 보완해야 할 부분이라며 웃었다. 그렇다면 그가 느끼는 골프의 매력은 뭘까. 바둑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조 국수는 말한다. 프로 기사와 마찬가지로 골퍼도 스스로의 능력을 믿고 자신의 기량을 100% 발휘한다면 상대가 누구든 전혀 두렵지 않을 것이라며 '주저 없는 거침없는 샷'을 주문한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는 바둑의 속설이 골프에도 그대로 통용된다는 것이다.

조훈현은 요즘 때아닌 투사로 활동 중이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가 바둑을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바둑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서 전 종목을 석권한 효자 종목이었다.
오늘도 유창혁 9단, 조혜연 9단 등 후배 기사들과 함께 거리로 나선 조훈현 국수는 "전 국민의 정신 수양을 위한 필수 조건인 바둑의 보급을 위해서라도 아시안게임 정식종목 제외가 철회될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는 각오를 밝혔다. 결과를 좌우하는 결정적 훈수는 될 수 없겠지만 친구로서 그에게 마음속 응원을 보낸다.


■김운용은 나인브릿지 대표이사를 지내고 호서대학교에서 명예체육학박사를 받은 뒤 현재 제주 한라대학교 석좌교수와 세계 100대코스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golf@fnnews.com 정대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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