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미국 UC버클리대학교 화학과 교수 “신약개발 차별화된 후보물질 발굴이 관건”

      2012.06.26 17:39   수정 : 2012.06.26 17:39기사원문

김성호 미국 UC버클리대학교 화학과 교수(사진)는 한국인 중 노벨상에 가장 근접해 있는 과학자로 평가받는다. 1970년 세포 내에서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을 운반하는 생체물질(tRNA)의 3차원 구조를 처음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1988년에는 암을 일으키는 주요 단백질 가운데 하나인 'Ras의 3차원 구조'를 밝혀내면서 항암제 연구 개발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1일 파이낸셜뉴스 주최로 열린 '제4회 서울국제신약포럼'에서 만난 김 박사에게 글로벌 제약사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물어봤다. 그는 "글로벌 신약을 만들려면 새롭고 차별화된 후보물질을 찾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한국에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충분한 인재가 있기 때문에 경험을 가진 좋은 리더를 만난다면 폭발적인 성과를 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재 주력하고 있는 연구분야는.

▲흑색종을 연구하고 있다. 인간의 모든 암에는 유전자 변이가 있지만 그중 흑색종은 60%가 변이를 일으킨다. 같은 항암제를 투여하는데 어떤 환자는 암이 완전히 없어지기도 하고 어떤 환자들에게는 효과가 전혀 없거나 저항이 생겨 암이 전이될 수 있는 또다른 경로가 활성화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 차이를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기본적인 것부터 조사를 하다보니 저항성이 생기는데도 굉장히 많은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과거에는 한 가지 경로를 중심으로 항암제를 연구했지만 이제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경로 발생 가능성이 있는지 체크하고 차단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치료 전에 환자의 흑색종을 타깃으로 잡고 유전자 특성을 먼저 측정한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그 변이를 일으키는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에 맞는 치료제를 투여할 수 있다. 이게 바로 개인 맞춤형 치료제의 기본 원리다.

―식품의약품안전청 바이오신약 특별자문단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한국에서는 바이오신약이 새로운 분야이고 시작 단계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성에 대한 검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너무 많은 규제를 하게 되면 국제 경쟁력을 키우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이 분야에서 안전성과 규제의 균형이 아주 중요한 이유다. 바이오신약 특별 자문단은 그 균형을 잘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국 시장에 나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신약개발에서 실패위험을 줄이려면.

▲실험 후보군 수가 얼마나 많은가가 관건이다.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러 후보군을 마련해 이를 대상으로 다양한 실험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하나가 실패하면 바로 다음 실험군으로 넘어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처음부터 잠재력, 효율성의 극대화를 노릴 것이 아니라 첫 단계에서 잠재력, 효율성을 디자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작은 단위의 후보군 내에서 실험을 진행하고 그 안에서 잠재력, 효율성이 큰 개체를 찾아내는 과정을 거쳐 결과물을 다 모으면 무작위로 실험을 진행하더라도 결국 타깃으로 삼을 만한 대상들이 모이게 마련이다. 약이 노리는 타깃을 찾아야 하고 최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국내 제약사들을 경험하면서 느낀 문제점은.

▲국내 여러 회사에 고문으로 있으면서 항상 느꼈던 문제점은 기업의 각 부서가 유기적인 연결이 없다는 것이다. 부서별로 제각각 돌아간다. 모든 부서가 예산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공동 목표를 갖고 진행하는 연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부처가 얼마나 더 많은 예산을 받을 수 있는가에만 집중하고 있다. 신약개발은 그런 경쟁으로는 이루기 어렵다.

―정부의 역할은.

▲기업이 스스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정부의 최우선 역할이다. 정부의 지원이 너무 과하면 기업의 의존도가 높아지고 장기적으로 오히려 퇴보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예산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인프라 구축과 같이 기업에 꼭 필요하지만 4~5년 안에 투자자금을 회수할 수 없는 사업에 지원해 기업의 진화를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기업의 독립적인 성장의지를 해쳐서는 안된다.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좋은 제품이다. 글로벌 제약사로 덩치를 키우기 위해 인위적인 기업 간의 컨소시엄이나 합병을 얘기하는 그런 건 소용이 없다. 한국은 작지만 사람 수가 많은 나라다. 그 특성상 새로운, 차별화된 후보물질을 찾아낸다면 투자자금과 인력은 알아서 모이게 돼 있다. 한국에 인재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들을 이끌 수 있는 리더가 부족하다.
신약개발은 어렵고 불확실성이 높은 분야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축적한 리더가 필요하다. 한국은 아직 신약 연구개발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리더가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조금 더 신약개발 역량이 쌓이고 경험이 축적된다면 폭발적인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seilee@fnnews.com 이세경 기자

■김성호 미국 UC버클리대학교 화학과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 화학과 △미국 피치버그대 물리학과 박사 △듀크대 생화학과 교수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화학과 교수 △미국 에너지부 로렌스상 △버클리국립연구소 구조생물학센터 소장 △미국과학아카데미 회원 선출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생체과학연구센터 고문센터장 △클로드페퍼상 △타카마추공주 암연구상 △제4회 호암상 △크리스탈지노믹스 창립멤버 △미국 플렉시콘(Plexxikon, Inc.) 창립멤버 △식품의약품안전청 첨단 바이오신약 특별자문단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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