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진 감독,상무 시절 야구를 너무 잘한 탓
2013.02.13 17:13
수정 : 2013.02.13 17:13기사원문
김시진 롯데 감독(55)의 오른팔은 기형이다. 남들처럼 쭉 펴지지 않는다. 15도가량 구부러져 있다. 현역 시절 슬라이더를 많이 던진 탓이다. 김시진 감독은 1983년부터 5시즌 동안 무려 1104이닝을 던졌다. 한 시즌 평균 220과 1/3이닝을 소화한 셈이다.
LA 다저스에 진출한 류현진(26)이 최근 5년간 856과 1/3이닝을 던진 것과 비교하면 김 감독의 오른 팔이 얼마나 혹사를 당했는지 짐작이 간다. 입단 5년 동안 김 감독이 올린 승수는 무려 100승. 한 시즌 평균 20승이다. 류현진은 최근 5년간 63승을 기록했다.
5년 동안 1000이닝을 넘게 던지면서 김 감독의 팔은 조금씩 굽어졌다. 종래엔 펼 수 없을 만큼 굳어져 버렸다. 슬라이더나 포크볼을 주무기로 삼는 투수는 팔꿈치 인대를 상하기 쉽다. 반면 커브를 많이 던지는 투수는 어깨 근육에 무리가 따른다.
김시진 감독은 1982년 육군 병장 계급장을 단 채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 제대를 얼마 앞두고 갓 장정으로 입대한 신병들과 함께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 사연이 기막히다. 육군 야구부(상무)의 에이스였던 김시진의 삼성 입단은 당시 큰 뉴스였다. 제대를 앞둔 김시진의 동향이 언론의 관심을 끈 것은 당연한 일. 한데 양측의 접촉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김시진은 곤란한 처지에 놓여졌다.
육군본부의 높으신 분이 이 사실을 불쾌하게 여겼고, 곧바로 김시진에 대한 신상털기에 나섰다. 조사 결과 김시진의 훈련소 미필 사실이 드러났다. 야구를 너무 잘했기 때문에 빚어진 참극(?)이었다.
김시진은 상무의 즉시 전력이어서 누구나 가는 훈련소 과정을 생략했다. 본인의 희망이 아니라 윗분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제대를 앞둔 김시진은 더 이상 상무의 전력에 보탬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떨어진 명령이 '논산 훈련소 입소'. 명분은 그럴 듯했지만 사실상 괘씸죄였다. 대한민국 육군 역사상 전무후무한 말년 병장 훈련소 입소 사건의 전말이다.
김시진 감독은 선수와 지도자로 모두 성공을 거두고 있다. 명투수로 이름을 날렸고 투수코치로도 인정을 받았다. 감독으로서 성적 역시 양호하다. 현대, 넥센 등 하위팀을 맡아 중위권으로 도약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 지난해엔 약체 넥센을 6위로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올 시즌 전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롯데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롯데는 5년 연속 가을 야구를 맛본 팀이다. 우승이 아니면 불만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타선의 주축인 1번 김주찬(기아)과 4번 홍성흔(두산)이 팀을 떠났다.
얼마 전엔 선발투수 이용훈과 용병 리치몬드가 부상으로 전지 훈련지를 이탈해 김 감독의 애를 태웠다. 리치몬드는 아예 미국에서 검사를 받겠다며 귀국해 버렸다.
김시진 감독의 지금까지 야구인생을 굳이 일등이라 고집하진 않겠다. 하지만 2등도 아니다. 우승을 못했다는 이유로 2등이라 우긴다면 일등보다 빛나는 2등이라 되받아 주고 싶다.
메이저리그에선 비싼 돈 들여 당연히 우승하는 것보다 싼 돈으로 하위 팀을 중위권 혹은 그 이상으로 이끈 감독에게 더 후한 점수를 준다. 저비용 고효율에 누가 토를 달겠나. 하위팀을 맡아 보여준 김시진 롯데 감독의 매직이 계사년에 재현될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야구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