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 도입 15년.. 제도적 한계 여전
"사외이사를 용돈벌이로 생각하거나 회의 때 자리만 채우는 경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영진 의견에 무조건 찬성하고, 경영진과 무난한 관계를 쌓아서 연임하는 방식의 연결고리는 끊어져야 한다."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된 지 15년이 됐지만 제도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한결같다. 독립성과 책임성이 결여된 현 사외이사 제도로는 경영진에 대한 감시 및 견제 역할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지난해 주요 상장사 사외이사들의 활동 내용에 따르면 사외이사들의 98% 이상이 주요 안건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혔다.
거수기 논란의 대표적인 사례다.실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야기했던 리먼브러더스 파산의 주요 원인이 부실한 사외이사 활동임을 감안할 때 사외이사들의 거수기 논란은 더 이상 묵과할 사안이 아니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독립성 부족→책임의식 결여
사외이사 선임은 주주총회를 거치게 되지만 앞서 경영진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문성보다 회사 내 인맥을 통한 사외이사 추천이 이뤄진다. 이로 인해 객관적 시각을 갖춘 사외이사의 기존 역할은 무색해진다.
자산 2조원 이상인 상장사의 경우 사외이사 추천기구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지만 추천 과정에서 경영진과 지배주주의 입김은 여전하다.
정재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조정실장은 "사외이사제도는 구제금융 사건 이후 억지로 도입된 제도"라며 "그러다 보니 어차피 하는 거 내 말 잘 들어줄 사람을 뽑자는 생각이 많다. 관료 출신들에 대한 영입 성향도 강해 본래 취지대로 운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부족한 독립성을 채우기 위해 사외이사들의 직업윤리나 직업의식을 고양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대다수 사외이사들이 본연의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외이사직을 용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인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사외이사들이 이사회 결정에 책임지는 문화가 생겨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현재 법률상에는 사외이사들의 경우 회사 내부정보를 잘 알지 못하고 상근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내이사보다 법에서도 책임이 한정돼 있다.
특히 사외이사들에겐 경영 결과에 대한 책임도 물을 수 없다. 따라서 이들에게도 이사회 결정에 대한 책임을 따지는 문화가 요구되고 있다.
■제도적 보완 필요성 높아
강제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보완을 촉구하는 목소리 또한 높다.
우선 사외이사 선임에서부터 독립적인 절차가 요구된다. 사외이사 후보 추천위에 경영진과 지배주주가 참여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운용하는 사외이사인력뱅크의 활성화도 시급하다. 정작 상장사들은 인력뱅크보다는 원활한 이사회 진행을 위해 인맥을 통해 영입하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전문성을 가진 인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설명이다.
특히 사외이사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사법부의 역할론도 제시됐다.
정재규 실장은 "대기업 총수에 대한 처벌까지 강화되는 상황에서 사외이사 책임을 법원이 명확히 물을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사외이사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깨닫게 되면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소액주주들을 대표하는 사외이사 선임안 또한 시급한 문제로 꼽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공약으로 소액주주들이 독립적으로 사외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이 같은 방향에 맞춰 향후 법 개정을 통해 주주들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사외이사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윤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배주주와 관련된 사외이사 선임이 다수라 소액주주들의 영향력도 낮아지는데 소액 및 일반주주들의 의사를 대표할 수 있는 사외이사 확보방안이 필요하다"며 "전자투표제도 의무화와 함께 소액주주들의 주총 참여율을 높이고 선임단계에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도록 소액주주 사외이사 선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