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용 대구사이버대 총장 “장애인 특수교육 요람.. 사회공헌 교육기관 명성 ”
2013.04.05 11:19
수정 : 2013.04.05 11:19기사원문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오지 못했어요.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친구들이 낯설어했기 때문입니다."
대구사이버대 이근용 총장(사진)은 할아버지 때부터 3대에 걸쳐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교육 명문가에서 자라고 자신도 특수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특수교육사업을 진행하던 아버지가 가족들의 거처를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학교 기숙사로 정하면서 생겼던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이렇게 회고했다. 이 총장은 어린 시절 학교 기숙사를 집처럼 사용했다. 이 총장의 할아버지, 아버지의 교육철학 때문이었다. 이 총장의 할아버지는 대구 맹아학교를 설립한 고 이영식 목사이고 아버지는 한국의 특수교육을 처음 체계화한 고 이태영 대구대 초대 총장이다.
■어린 시절 장애인들과 가족처럼 지내
이 총장은 "고등학교 때까지 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 장애인들과 함께했다.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서 수화로 대화하는 사람들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남들이 장애인들과 같이 안 사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친구들이 학교에서 장애인들이 많은 우리 집에 대해서 수군대는 이야기가 부끄럽기도 했다"며 아직 어렸던 시절의 아픔을 털어놨다. 이 총장은 "수화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자들과 가족처럼 함께 생활했고 이들이 저를 업어 키우면서 언어 발달도 조금 늦었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대구대 학교법인 영광학원 이사를 겸해 대구사이버대 총장을 맡으면서도 가풍을 잊지 않았다. 대구사이버대 총장이 된 이후에도 그는 최근까지 대구대 경산 캠퍼스 기숙사에서 생활해왔다. 대구대는 특수교육 분야의 사회공헌 교육기관으로 명성이 높다. 현재 대구대는 장애인의 재활을 돕는 6개 분야 물리치료, 언어치료, 재활심리, 작업치료, 직업치료학과 재활공학과를 모두 갖췄다. 이를 하나로 묶어서 재활과학대학이라는 하나의 단과대학을 갖춘 국내 유일의 대학이다.
대구대가 특수교육 분야에 특화된 것은 학교 설립자 및 초대 총장의 헌신 덕분이었다. 이 총장의 할아버지인 이영식 목사는 1946년 소외층에 대한 사랑과 기독교 정신을 기저로 탄생시킨 대구맹아학원이 모체가 돼 1956년에 사설강습소 형태로 한국이공학원을 설립했다. 이후 1958년에 재단 법인 대구맹아학원이 설립한 한국사회사업학교에 통합됐다. 이 한국사회사업학교가 1961년 대구대의 전신인 한국사회사업대학으로 승격되고 이영식 목사의 아들인 이태영 박사가 초대 학장으로 취임했다.
이 총장은 "할아버지인 이 목사가 독립운동을 하다 서울구치소에 청각 장애인과 함께 수감된 적이 있다. 그들과 소통해야 하는 수감생활을 하다 해방된 후 할아버지가 남이 안하는 것을 하자고 해서 시작된 것이 대구맹아학교"라고 설명했다. 이후 여러 특수학교가 설립됐지만 체계가 잡힌 선진화된 교육은 아니었다.
이 총장은 "장애인을 가르치는 교사 육성이 필요했다. 당시만 해도 특수교육학과도 없었다"면서 "이런 와중에 해외에 계시던 아버지가 귀국해서 한국사회사업대학을 만들었다. 국내 최초 특수교육학과와 사회사업학과(현 사회복지학과)를 만들어서 교사를 배출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장 자신의 인생도 바뀌었다. 그는 "처음에는 건축학을 좋아했는 데 주변에서 특수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에서 대학원 때 학습장애아 교육을 공부하게 됐다"고 웃음 지었다.
■3대째 특수교육… 명문가 명맥 이어
이 총장은 학업을 마친 뒤 귀국해 대구대 직업 재활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그는 대구대가 국내 최초로 설립한 발달장애(지적장애) 학생들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인 K페이스의 초대 원장에 올랐다. 할아버지인 이 목사는 특수교육학교를 설립했고 부친은 특수교육학과를 만들었다. 그리고 3대째에는 특수교육의 마지막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발달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기관 운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 총장은 "발달장애 학생들은 갈 데가 없다. 이들 학생들은 이미 전문대 등에서 교육을 하다가 실패한 경우가 많다"면서 "전문대에 들어가서 그냥 앉아만 있다가 오고 졸업 이후 사회진출이 안되고 집에만 있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까웠다"고 설명했다. K페이스는 미국 내셔널 루이스 대학의 페이스(PACE) 프로그램을 도입해 3년 동안 금전 관리.생활 기술 등 직업 탐색 교육과 인턴십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K페이스에서 3년간 수학하면 그 뒤에 취업을 유도한다. 최근에는 K페이스 졸업생 중에서 일반인과 똑같이 취업에 성공한 사례가 나오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총장은 대구사이버대의 수장을 맡은 이후에도 장애인 특수교육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쏟고 있다. 그는 "대구대와 대구사이버대 간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교육 분야를 개척해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fncast 채진근 박동신
■약력 △55세 △대구 △대구대 직업재활학과 교수 △한국직업재활협회 이사 △한국정서행동장애아교육학회 이사 △Rehabilitation International-Korea 전문위원 △대구대 K-페이스(PACE)센터 초대 소장 겸 대구사이버대 총장(현)
대구사이버대 이근용 총장(사진)은 할아버지 때부터 3대에 걸쳐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교육 명문가에서 자라고 자신도 특수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특수교육사업을 진행하던 아버지가 가족들의 거처를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학교 기숙사로 정하면서 생겼던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이렇게 회고했다. 이 총장은 어린 시절 학교 기숙사를 집처럼 사용했다. 이 총장의 할아버지, 아버지의 교육철학 때문이었다. 이 총장의 할아버지는 대구 맹아학교를 설립한 고 이영식 목사이고 아버지는 한국의 특수교육을 처음 체계화한 고 이태영 대구대 초대 총장이다.
■어린 시절 장애인들과 가족처럼 지내
이 총장은 "고등학교 때까지 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 장애인들과 함께했다.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서 수화로 대화하는 사람들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남들이 장애인들과 같이 안 사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친구들이 학교에서 장애인들이 많은 우리 집에 대해서 수군대는 이야기가 부끄럽기도 했다"며 아직 어렸던 시절의 아픔을 털어놨다. 이 총장은 "수화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자들과 가족처럼 함께 생활했고 이들이 저를 업어 키우면서 언어 발달도 조금 늦었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대구대 학교법인 영광학원 이사를 겸해 대구사이버대 총장을 맡으면서도 가풍을 잊지 않았다. 대구사이버대 총장이 된 이후에도 그는 최근까지 대구대 경산 캠퍼스 기숙사에서 생활해왔다. 대구대는 특수교육 분야의 사회공헌 교육기관으로 명성이 높다. 현재 대구대는 장애인의 재활을 돕는 6개 분야 물리치료, 언어치료, 재활심리, 작업치료, 직업치료학과 재활공학과를 모두 갖췄다. 이를 하나로 묶어서 재활과학대학이라는 하나의 단과대학을 갖춘 국내 유일의 대학이다.
대구대가 특수교육 분야에 특화된 것은 학교 설립자 및 초대 총장의 헌신 덕분이었다. 이 총장의 할아버지인 이영식 목사는 1946년 소외층에 대한 사랑과 기독교 정신을 기저로 탄생시킨 대구맹아학원이 모체가 돼 1956년에 사설강습소 형태로 한국이공학원을 설립했다. 이후 1958년에 재단 법인 대구맹아학원이 설립한 한국사회사업학교에 통합됐다. 이 한국사회사업학교가 1961년 대구대의 전신인 한국사회사업대학으로 승격되고 이영식 목사의 아들인 이태영 박사가 초대 학장으로 취임했다.
이 총장은 "할아버지인 이 목사가 독립운동을 하다 서울구치소에 청각 장애인과 함께 수감된 적이 있다. 그들과 소통해야 하는 수감생활을 하다 해방된 후 할아버지가 남이 안하는 것을 하자고 해서 시작된 것이 대구맹아학교"라고 설명했다. 이후 여러 특수학교가 설립됐지만 체계가 잡힌 선진화된 교육은 아니었다.
이 총장은 "장애인을 가르치는 교사 육성이 필요했다. 당시만 해도 특수교육학과도 없었다"면서 "이런 와중에 해외에 계시던 아버지가 귀국해서 한국사회사업대학을 만들었다. 국내 최초 특수교육학과와 사회사업학과(현 사회복지학과)를 만들어서 교사를 배출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장 자신의 인생도 바뀌었다. 그는 "처음에는 건축학을 좋아했는 데 주변에서 특수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에서 대학원 때 학습장애아 교육을 공부하게 됐다"고 웃음 지었다.
■3대째 특수교육… 명문가 명맥 이어
이 총장은 학업을 마친 뒤 귀국해 대구대 직업 재활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그는 대구대가 국내 최초로 설립한 발달장애(지적장애) 학생들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인 K페이스의 초대 원장에 올랐다. 할아버지인 이 목사는 특수교육학교를 설립했고 부친은 특수교육학과를 만들었다. 그리고 3대째에는 특수교육의 마지막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발달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기관 운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 총장은 "발달장애 학생들은 갈 데가 없다. 이들 학생들은 이미 전문대 등에서 교육을 하다가 실패한 경우가 많다"면서 "전문대에 들어가서 그냥 앉아만 있다가 오고 졸업 이후 사회진출이 안되고 집에만 있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까웠다"고 설명했다. K페이스는 미국 내셔널 루이스 대학의 페이스(PACE) 프로그램을 도입해 3년 동안 금전 관리.생활 기술 등 직업 탐색 교육과 인턴십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K페이스에서 3년간 수학하면 그 뒤에 취업을 유도한다. 최근에는 K페이스 졸업생 중에서 일반인과 똑같이 취업에 성공한 사례가 나오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총장은 대구사이버대의 수장을 맡은 이후에도 장애인 특수교육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쏟고 있다. 그는 "대구대와 대구사이버대 간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교육 분야를 개척해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fncast 채진근 박동신
■약력 △55세 △대구 △대구대 직업재활학과 교수 △한국직업재활협회 이사 △한국정서행동장애아교육학회 이사 △Rehabilitation International-Korea 전문위원 △대구대 K-페이스(PACE)센터 초대 소장 겸 대구사이버대 총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