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계파청산 가능할까
2013.05.12 16:47
수정 : 2013.05.12 16:47기사원문
올해 5월 여야 지도부 경선이 한꺼번에 몰린 가운데 계파 위주로 뭉쳐 있는 표를 흡수하기 위해 비주류 측에서 계파 청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게 발단이다.
실제로 지난 4일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당 5·4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김한길 신임 대표는 투표결과발표 후 수락연설에서 "계파도 세력도 없는 제가 선택된 것 자체가 민주당의 큰 변화를 상징한다"면서 계파 청산의 신호탄을 쐈다.
오는 15일 동시에 실시되는 새누리당 원내대표-정책위의장 선거와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계파 청산 논란은 극에 달할 전망이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후보에 출마한 최경환·이주영 후보간 친박 원조 논쟁과 박심 논란은 지금까지 새누리당 내에 잠복해 있던 친박 논쟁을 사실상 처음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사례가 될 전망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3파전 역시 계파별 지원과 지역을 연고로 한 표몰이가 선거 이후 후유증을 낳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국정치 수준 끌어올릴까.
계파정치는 옛 봉건영주가 가신을 보호해주는 데서 비롯된 일본식 파벌정치가 우리나라로 유입돼 군사독재시절 변형된 정치적 산물이다. 독재정권에 맞서기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고, 야권은 김대중과 김영삼으로 나뉘어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결집하며 이후 우리 정치만의 독특한 계파문화를 만들었다.
계파는 주로 이념적 동질감을 형성한 정치인들이 모인 경우나 특출난 리더십을 갖춘 정치인을 중심으로 모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 가지가 결합된 대표적인 계파로는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를 꼽을 수 있다. 친이명박계나 친박근혜계는 이념보다는 인물을 중심으로 뭉친 경우에 해당한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번 계파 청산 논쟁이 불러올 파급력이 최근 10년 새 제기됐던 논란보다 더욱 강할 것이란 점이다.
새누리당이 정권재창출에 성공하는 과정에 친박계 정치인들의 공이 컸지만 인물론 중심의 모임이란 점에서 자연스레 구심력이 약화될 것이며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부터 계파 분화가 시작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이에 이번 원내대표 경선이 향후 박근혜정권 레임덕과 계파 분화의 방향을 진단할 '리트머스지'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에 이번 선거가 박빙으로 가는 가운데 친박 핵심인 최경환 후보가 1위를 기록하더라도 이주영 후보와의 득표 차가 관건이라는 것.
이기주 시사평론가는 "현재 새누리당 내에는 친박과 함께 '칭박(자칭 친박)'이 존재한다"면서 "친박의 힘이 과도하게 커진다고 생각할 경우 이들이 이주영 후보에게 표를 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다음 총선까지 시간이 많고 그때는 정권 말이라 초선 등 소장파가 목소리를 낼 여지가 많아 이주영 후보가 선전한다면 새누리당 내 계파 분화는 빨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민주당의 경우 김한길 대표가 계파 청산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지만 앞날이 첩첩산중이다.
현재 비주류인 김한길 체제는 당내 주류세력에 '점령군'으로 여겨지는 것을 꺼려 당직 인사의 '대탕평' 인사작업에 고심하고 있지만 대탕평이라는 단어 사용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어 자체가 계파를 인정하는 느낌을 준다는 것. 그만큼 계파에 대한 김한길 대표의 거부반응을 방증한다.
문제는 이 같은 민주당 지도부의 강한 계파 청산 의지와 달리 당 내부의 분위기는 대체적으로 회의적이라는 점이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계파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이미 무슨 계파라고 낙인이 찍혔는데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새 지도부가 계파 청산을 내세우니 표면적으로 누그러지는 모습을 보이겠지만 본질적으로 바뀌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오더 금지' 모임을 이끌며 계파 청산에 앞장선 유인태 의원은 "그동안 민주당은 계파가 지도부를 흔들어 몇 달 만에 교체하기 일쑤였다"면서 "당 구성원이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지도부를 신뢰하고 도와주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계파 청산에 대해서도 "신임 지도부가 구성원을 포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계파정치가 이어지면 줄세우고 오더 내리는 상황은 계속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계파 논란' 또다른 기득권 수단
막무가내식 계파 청산이 절대 정답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바람직한 이념과 가치를 중심으로 정치인들이 뭉친 계파의 경우 오히려 생산적인 정책과 입법을 만드는 기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순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
아울러 계파 청산 논쟁의 경우 현재 당을 장악하는 주류 계파에 밀리고 있는 비주류가 당권을 장악하려는 과정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주류가 당권을 장악하면 역시 계파 정치가 지속된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 모 의원은 "계파 중에서도 소신 있는 가치를 중심으로 모여 의미 있는 모임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면서 "계파는 이런 가치 혹은 정치철학과 무관하게 세를 형성해 기득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경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물론 계파 청산 주장은 여야 모두 표면적으로는 대세로 자리잡고 있지만 대안적인 방안도 신중하게 고민해볼 때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에 지난해 총선과 대선 패배로 흔들리고 있는 민주당의 경우 계파 문제 해결을 위해선 모래알 같은 당내 화합을 추스르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계파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는다. 민주당은 특정 계파가 너무 오랫동안 권력을 독점했던 것이 문제"라며 "이제 비주류로 권력의 추가 넘어갔으니 시간을 두고 기다려봐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lionking@fnnews.com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