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배상책임 보험의 선진국, 독일을 가다..강제성 없어도 모두가 가입
2013.05.14 15:39
수정 : 2013.05.14 15:39기사원문
베를린(독일)=안승현 기자】아직도 온 국민들의 가슴속에 상처로 자리 잡고 있는 '태안 기름유출 사고'. 이 사건은 법정에서 선주사측에 고작 수천만 원대의 벌금형을 내리는 정도로 끝났으며, 정작 태안을 살리는 일은 정부와 주민, 자원봉사자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이 사고가 만일 유럽에서 발생했더라면 사고를 일으킨 회사들은 최악의 경우 파산에 이르는 막대한 보상 책임을 져야 했을 것이다. 유럽연합(EU)에는 환경배상책임지침(ELD)에 따라 오염을 유발한 주체가 해당 지역의 인적 물적 피해는 물론 향후 정상적인 상태로 복구하기 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엄격한 환경오염배상책임
5월 초순의 유럽은 흐릿한 구름과 쨍쨍한 햇볕이 오락가락하는 변덕스러운 모습이었다. 지난 5월8일 독일의 베를린에 위치한 독일보험자협회(GDV)를 찾아 최근 국내에서도 도입 필요성이 확대되고 있는 '환경배생책임보험'에 대해 들어봤다.
독일은 80년대에 이미 엄격한 환경배상책임법을 도입해 많은 기업체들이 자발적으로 환경사고에 대비한 책임보험에 가입하는 문화가 정착된 곳이다.
GDV에서 환경오염정책을 담당하는 앙케 클라인 변호사는 "일단 환경배상책임지침은 축약해서 ELD(Environmental Liability Directive)라고 하는데, 환경오염 예방과 피해 발생시 이를 복구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현재 EU에서는 개인이나 기업이 환경오염을 유발시켰을 피해자가 나서지 않더라도 정부가 이에 대한 배상책임을 강제할 수 있게 돼 있다.
ELD에서 규정하고 있는 책임 범위도 대단히 광범위 하다. 클라인 변호사는 "7개 EU 국가의 땅과 강, 바다를 포함해 거기에 서식하는 모든 생물들이 대상"이라며 "여기에 수질오염과 인간에 건강의 위험을 미치는 토질 등 생태계 전체에 대한 복구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클라인 변호사는 "ELD 도입 이전에도 아주 광범위한 수준의 환경배상책임법이 존재했었다"며 "ELD 도입 이후에는 이것이 크게 강화된 것이고, 지금 연방법 형태로 존재하고 있고 상당히 복잡하고 수준이 높은 법이다"고 설명했다.
■강제성 없어도 자발적인 책임보험 가입
이처럼 독일을 포함한 EU에 속한 기업들은 만에 하나 환경오염을 유발시킬 경우 막대한 배상책임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환경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강제로 가입해야 하는 의무보험은 아니다. 정부에서 강제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가입한다는 것이다.
GDV의 닐스 헬버그 배상책임보험국장은 "모두들 의무보험이 아닌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마울 정도로 잘 돌아가고 있다"며 "기업 입장에서도 이런 리스크에 미리 대비하고 싶어 하는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GDV에서는 환경배상책임보험의 형태가 어떻게 가야 바람직한지 가이드라인을 잡아주면, 민간 보험사들이 그걸 차용해서 상품으로 만든다.
헬버그 국장은 "공장 같은 경우 부지의 원래 토질에 심각한 오염이 앞으로 예상된다든지, 아니면 과거에도 토질이 별로 좋지는 않았는데 앞으로도 더 환경오염이 진행될 거 같다는 리스크가 예상되면 그것까지 추가해 배상책임보험을 구성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최근의 불산 가스유출 같이 심각한 환경훼손을 동반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배상책임 규정이나 책임보험 상품이 없는 상태다. 또 기업체들의 인식도 낮은 수준이다. 독일에서는 과연 사회전반에 걸쳐 이런 인식을 어떻게 자리잡게 했는지 물었다.
헬버그 국장은 "독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모두 고민하는 부분이 그것이다"며 "환경오염배상책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협회 차원에서 기업체들을 대상으로 수많은 프리젠테이션과 사례들을 브리핑해 왔다"고 말했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