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박정희 공원’ 논란
2013.06.16 16:49
수정 : 2013.06.16 16:49기사원문
서울 신당6동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가옥 앞을 가끔 지나다닌다. 내 집에서 불과 300m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인데 볼 때마다 '참 볼품없다'는 생각이 든다. 성냥갑 같은 일본식 '문화주택(사쿠라가오카)'이라 별다른 특징이 없고 샛길에 늘어선 주택들에 파묻혀 있어 잘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2008년 서울시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는데도 이렇다.
그러나 이 볼품없는 가옥이 지닌 역사적 의미는 간단치가 않다. 박 전 대통령은 육군 1군 참모장이던 1958년 5월부터 5·16 군사정변 이후 국가재건회의의장 공관으로 옮긴 1961년 8월까지 이곳에 살았다. 박 전 대통령 시해 이후 1982년까지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유족들이 지내기도 했다.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5·16을 계획하고 지휘한 '역사적 현장'인 것이다.
최근 신당동 가옥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서울 중구청이 신당동 가옥 주변을 개발해 '박정희 기념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중구청은 예산 286억원의 50%는 국비로, 20%는 서울시가 부담해달라며 서울시에 투자심사를 요청했다. 야권은 일제히 반발했다. "지자체들이 국민 세금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우상화 경쟁을 하고 있다(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는 반응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여러 지자체가 박정희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지나친 충성 경쟁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박 대통령도 지난 10일 "국가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세금을 들여 기념공원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가 심사요청을 반송했지만 중구청은 다시 요청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실 지자체 기념사업은 역사적인 유적 같은 것이 없어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하지만 '박정희 공원'은 다르다고 본다. 신당동 가옥은 한국 현대사 최대 사건의 현장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다. 5·16과 박정희 시대가 '나쁜 역사'라 해서 유적을 보존할 가치가 없다는 주장은 초점이 빗나간 것이다. '좋은 역사'냐 '나쁜 역사'냐 판단에 관계없이 역사는 보존하는 것이 옳다. 서울시도 역대 정부 수반의 가옥을 복원.보존하는 사업을 해오고 있다.
중구청의 사업규모가 너무 크다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규모를 현실성 있게 줄여서라도 사업을 추진했으면 좋겠다. 이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은 신당동 가옥을 한번 구경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이게 과연 문화재 대접을 받고 있는지 평가해보라.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