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비크조선소
【 수비크(필리핀)=강재웅 기자】 "저기가 바로 한진중공업 수비크조선소입니다. 아주 넓고 아름답지 않습니까."
6일 기자 일행이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버스로 꼬박 3시간반 쉼 없이 달려 지쳐갈 때쯤 한진중공업 관계자가 조용한 분위기를 깨며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직원이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산 끝자락으로 우뚝 선 600t급 골리앗 크레인 4개가 눈에 들어 왔다. 독(dock)은 물론 안벽(quaywall·바다를 접해 수직으로 쌓은 벽. 선박계류시설)에도 건조 마무리 작업 중인 컨테이너선 등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렇게 30분을 더 달려 수비크조선소 앞에 도착하니 삼엄한 경비와 굳게 닫혀 있는 정문이 눈에 들어왔다.
조선소 건설 이후 현지인들이 물건을 훔쳐가는 사건이 잦아 경비가 강화됐지만 이젠 필리핀 정부가 나서 보안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직원이 귀띔했다.조선소 안에 들어서자 대지 297만㎡(90만평) 위에 건설된 수비크조선소가 위용을 뽐냈다. 먼 곳에서 바라볼 때 느낄 수 없었던 90m 높이의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과 50m 높이의 선박들은 우리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수비크조선소에서는 현재 총 22척의 선박이 독과 안벽 등 곳곳에서 건조되고 있었다. 조선소 건설엔 현재까지 총 19억달러가 투입됐다고 한다. 2009년부터는 매출이 본격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수비크조선소 관계자는 "5번독의 길이와 폭은 370m, 100m이며 6번독은 550m, 135m에 달한다"며 "특히 6번독은 독 폭 넓이가 세계 최대 규모"라고 자랑했다.
넓은 조선소 야드엔 선박 건조에 필요한 블록과 강재, 판재 등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하용헌 한진중공업 수비크조선소 부사장겸생산본부장은 "수비크조선소는 국내 비크3 조선사 야드의 특.장점만을 모아 건설된 계획적인 조선소"라며 "무엇보다 조립공장이 한가운데에 있어 독으로 블록을 이동하는 거리가 짧다"고 강조했다.
수비크 조선소엔 5번독과 6번독 등 2개의 독이 있다. 현재 5번독에는 54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2척, 6번독에는 컨테이너선과 해양플랜트 등 4척이 동시에 건조 중이다.
1~4번 독이 왜 없는지 물었더니 하 부사장은 "한진중공업 수비크조선소는 부산 영도조선소와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라며 "영도조선소에 1~4번 독이 있어 수비크조선소 독은 다음 번호인 5번과 6번으로 명명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5번독 위에는 우기에 대비해 독에 파란색 지붕을 씌울 수 있는 셸터가 눈에 띄었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업계 일각에서 수비크조선소는 우기 등으로 조업일수가 짧아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얘기한다"며 "하지만 비가 오거나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어도 셸터작업을 하기 때문에 1년 365일 2교대 근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뒤이어 찾은 6번독에선 6000TEU급 컨테이너선 건조가 한창이었다. 하 부사장은 "6000TEU급은 진수식과 시운전을 남겨 두고 있다"며 "앞으로는 이미 수주해 둔 8000TEU급과 1만1000TEU급을 건조해 커다란 독을 제대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자부심을 나타냈다. 6번독은 한진중공업의 한을 푼 독이기도 하다. 영도조선소의 독은 길이가 300m에 불과하다. 이 독으로는 5000TEU급 이상의 대형선박 건조가 불가능하다. 40년 넘는 업력으로 기술력을 갖췄지만 그동안 독의 한계로 대형 컨테이너선 수주에 나설 수 없었던 것.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대형 컨테이너선은 물론 LNG선 등을 건조하는 것이 한진중공업 임직원들의 꿈이었다"며 "수비크조선소가 있어 이제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고 소개했다.
6번독 옆에는 총 39만6000㎡(12만평)의 유휴부지가 마련돼 있었다. 조선소의 외형 확장을 대비한 부지다.
수비크조선소는 필리핀 정부가 외국투자기업 유치의 성공사례로 꼽고 있다. 현재 수비크조선소에는 1만8000명 넘는 현지인들이 근무 중이다. 수주량이 늘어나면 최대 2만여명으로 고용인구를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 국내 조선기자재 업체들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수비크조선소는 조선자재 등 85%를 국내에서 조달하고 있기 때문이다.하 부사장은 "부산에서 수비크까지 배로 이동하는 거리가 5일에 불과하다"며 "한 달에 두세 번 운반선 2척이 쉴 새 없이 부산과 수비크를 오가며 조선 기자재를 한국에서 나르고 있다"고 말했다.
안진규 한진중공업 수비크조선소 사장은 "수비크조선소는 필리핀 전 지역에서 단일 공장으로 최대 규모일 뿐 아니라 고용인구도 최대"라며 "필리핀 정부에서 이를 감안해 297만㎡(90만평)에 달하는 조선소 임대료를 월 1000만원 정도로 줄여줬고 세금도 5년간 면제받고 있다"고 말했다.
kjw@fnnews.com 강재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