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상한 그녀’ 심은경 “가족의 소중함 느껴보세요”

      2014.01.20 17:04   수정 : 2014.10.30 13:38기사원문

카페 안에는 참한 인상의 스무살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질퍽한 음담패설과 욕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영화 속 할머니 오두리의 흔적을 이 배우의 외양에서 찾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제가 낯을 좀 가립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겐 먼저 말을 못 걸 정도예요."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20대 몸으로 돌아간 70대 할머니로 '성인식'을 치른 심은경(20)은 정적인 이미지의 조신한 배우였다.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려 열한살 때 연기학원에 다니면서 얼떨결에 드라마(2004년 '단팥빵')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돼 올해로 경력 10년차가 된 배우. 연기를 하면서 예전보다 성격은 밝아졌고 말수도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기 후에도 "사람을 만나는 건 두렵고 친해지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는 것"은 여전했다. 그런데도 "연기는 재밌다. 연기란 게 참 알 수 없는 세계인데, 그래서 끌리는 것 같다.

그래도 보통 힘든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걸 보면, 그는 영락없이 배우다.

연기와 성장을 함께한 이 배우의 인생행로는 아역배우 출신들의 일반 경로에서 벗어나 있다. 대중의 관심을 적당히 즐기다 비슷비슷한 대학에 진학하고 작품을 고르는 것이 예상 진로일 것인데, 심은경은 그렇지 않았다. "관심권에서 벗어나 혼자 있고 싶었어요. 학생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2011년 영화 '써니' 촬영을 끝내고 미국 유학을 떠났던 건 이런 배경에서였다.

미국 동부 피츠버그의 사립학교에서 6개월을 보낸 뒤 다시 첼리스트 요요마가 다녔던 뉴욕 프로페셔널 칠드런 스쿨로 옮겨 지난 6월 고교 과정을 그곳서 마쳤다. 이 기간 의사소통의 어려움, 친밀한 교우 관계를 갖지 못해 생기는 고독감 등으로 뒤늦은 사춘기를 보냈지만, 그는 그 시기 그전까진 맛보지 못한 자유를 맘껏 누리며 뉴욕이라는 공간이 선사한 예술적 향취에 흠뻑 빠져 지냈다.

맨해튼 브로드웨이 42번가에 살았던 심은경의 아지트는 브라이언 파크였다. "오후 1∼2시 수업이 끝나고 거의 매일 갔어요. 벤치에서 책 보고 숙제하고, 산책하고요. 근처 일본 서점 들르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저녁 시간 가장 자주 갔던 곳은 링컨센터다. "그곳서 처음 봤던 연주자가 피아니스트 바부제였어요. 지난해 국내서도 공연하길래 반가워 달려갔어요. 2012년 프랑스 작곡가 메시앙의 연주회도 잊을 수 없습니다. 뉴욕 필하모닉 공연은 수시로 즐겼고요." 그는 "드뷔시, 라벨 같은 프랑스 작곡가들 음악은 섬세하고 유리구슬 굴러가듯한다. 그 감성에 정말 놀랐다"면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는 모차르트다. 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듣고 있으면 세상의 행복을 다시 생각한다"고도 했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오프 브로드웨이의 연극, 후미진 재즈바 공연까지 원없이 즐겼다. "체홉의 연극 '바냐 아저씨'는 충격이었어요. 관객과 소통하는 연극은 그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영화와 연극의 연기가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느꼈어요."

이런 낭만적 시간을 소비할 여건이 못 되는 한국에선 무료하지 않을까. 답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다. "집에서 음악 듣고, 책 보고, 영화 보고 그러느라 새벽에 잠든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피아니스트 아르헤리치의 연주 동영상을 유튜브로 최근 다 봤고, 요즘은 일본 고전소설에 푹 빠져 있다. "하루키 소설은 읽다가 중간에 덮었어요. 지금 제가 읽기엔 버겁더라고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읽고난 뒤 한동안 잠을 못잤어요. 나쓰메 소세키도 정말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아날로그 취향인가봐요."

'수상한 그녀'는 심은경의 이런 정서와 절묘하게 배합이 잘된 작품이다. 극속 젊은 시절 오두리는 눈물로 남편을 독일 광부로 떠나보내지만 곧바로 남편의 사망통지서를 받아든다. 어디에도 기댈 곳 없던 젊은 아낙은 홀로 아들을 키우며 서서히 억척 어멈, 할머니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 20대 몸으로 돌아간 이 젊은 할머니의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 사회 노인, 가족문제를 돌아보며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한편에선 엉킨 연애사건으로 좌충우돌 웃음도 준다.

유학 후반기에 이 시나리오를 봤던 심은경은 극 후반 아들 성동일과 나누는 대화 장면에서 펑펑 울었다.

심은경은 "그 장면을 위해서라도 이 작품을 하고 싶었다"며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어떤 마음으로 키우는지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영화는 오는 23일 개봉한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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