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자본주의 경제
2014.02.10 16:24
수정 : 2014.10.29 20:55기사원문
복잡다기한 인간의 경제문제를 간단한 공식 몇 개로 풀 수 있을까? 앨프리드 마셜이 깔끔하게 정리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대해 과감히 반기를 든 사람이 있었다. 명품은 가격이 비싸야 잘 팔리고 가격이 떨어지면 오히려 수요가 준다. 그런데도 경제학의 수요 법칙은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준다고 가르친다.
소스타인 베블런은 노르웨이계 이주 농민의 아들로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태어나 미네소타주 농촌에서 성장했다. 그는 명문 예일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당시 북구계 이민에 대한 종교적 편견으로 7년간이나 무직자로 고향에 틀어박혀 많은 책을 독파하며 지냈다. 그 후 코넬 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다시 공부하면서 경제학 교수로 임용됐다. 그러나 그는 강의시간에 혼자 웅얼거리고 학생들에게 면박을 주는 등 괴팍한 교수로 찍혀 여러 대학을 떠돌아야 했다. 그런 그를 스타로 만들어 준 것은 1899년에 출간된 '유한계급론'이었다. 영국에서 마셜의 '경제학원리'로 경제학이 새로운 학문으로 떠올랐고 신흥국 미국에서는 록펠러, 카네기 등 신흥재벌의 등장으로 미국 경제는 절정에 달한 듯 보였을 때, 베블런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해 재를 뿌리는 책을 펴낸 것이다.
각 개인은 마셜이 생각하는 것처럼 매번 자신의 효용을 재빨리 계산해 상품을 선택할 정도로 합리적이지 못하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예로부터 '모방의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인간에게는 '과시의 본능'이 있다. 인간은 자신이 특정계급에 속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를 즐긴다. 패션이 사회 전체에 유행하는 것을 볼 때, 이것은 비단 상류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보편적인 현상이다. 과시적인 소비가 있는 경우, '가격이 내리면 소비가 늘고 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준다'는 수요.공급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여기서 '유한계급(leisure class)'이 등장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 부를 갖고 있어 인생을 놀고 즐기는 계층을 가리킨다. 명예로운 일을 하도록 노동이 면제된 상류특권층은 오래전부터 인류 역사에 존재해 왔다. 이런 유한계급이 물질중심의 왜곡된 자본주의와 결합하면 과시적인 여가와 소비 문화를 낳는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가 이런 유한계급을 동경해 이들의 생활습관을 모방하려고 한다는 데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힘 안 들이고 성취하는 자가 진정한 실력자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해 부를 이룬다는 것은 진부하기 때문에 존경의 대상에서 배제된다.
그러나 유한계급은 사회의 진보를 방해할 것이다. 놀고 먹는 계급이 많을수록 자원은 낭비되고 일하는 분위기는 깨진다. 베블런은 다수의 경영인이 유한계급에 속한다고 보고 창조의 주역으로 엔지니어 계층을 지목했다. 기업인들은 겉만 그럴싸하게 포장해 상품가격을 올리는 데 주력하지만 엔지니어들은 성능 향상과 제품개발을 위해 진지하게 연구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저절로 풍요로운 미래가 도래할 것 같았던 자본주의 경제, 그러나 실상은 우리가 사회문화와 제도를 어떻게 끌고 가느냐에 따라 미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될 수 있다.
바로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은 자본주의 경제가 어떻게 망가질 수도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제도학파'가 생겨났다.
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파생상품시장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