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낭독에 빠지다

      2014.02.19 16:54   수정 : 2014.10.29 16:17기사원문

텅 빈 무대 위에 대본을 든 배우들만 덩그러니 있다. 다른 그 무엇보다 대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고요함이 흐른다. 적막을 뚫고 관객까지 달려가는 배우들의 언어는 날쌔다. 텍스트와 무대 사이 빈 공간에서 관객들은 상상의 유희를 펼친다. 듣는 희곡의 즐거움을 새삼 느낀다.

극장들이 요즘 이런 무대의 재미에 푹 빠졌다. 이른바 '낭독(朗讀) 공연'이다. 거추장스러운 세트는 치우고, 배우와 대사만으로 '생각하는 희곡'을 추구하는 공연이다. 낯설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이야기의 본질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런 무대는 신진 작가, 연출가들의 작품이 대체로 강세다. 오는 25일부터 28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리는 '남산희곡페스티벌'은 젊은 작가들의 미발표 신작 위주의 낭독극으로 꾸며진다. 이 가운데 '목란 언니'로 단번에 문제작가가 된 김은성의 신작 '뱅뱅뱅'이 눈길을 끈다. 일정한 사건 없이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한국 현실을 진단하는 광활한 스케일의 서사물이다. '창작집단 독'은 어느 주상복합 건물에서 생긴 8개의 사건을 독립적으로 묶은 옴니버스극 '싸이렌'을 올린다. 대학생 작가 원소영의 '장롱 속에 괴물이 있다'도 기대작. 어릴 적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가출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은 주인공의 내면과 트라우마를 다뤘다. 무료. (02)3290-7065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은 신진 연출가들의 낭독극을 시리즈로 기획했다. "단순한 낭독극이 아닌 본격적인 문학의 연극화"까지 노리고 있다. 20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극단 작은신화의 정승현 연출은 러시아 작가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이 극장에서 올린다. 그를 이어 양손 프로젝트 박지혜 연출은 '김동인 단편선'을 다음달 14일부터 23일까지, 극단 여행자 이대웅 연출은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다음달 26일부터 4월 6일까지 낭독공연으로 선보인다. 1만∼2만원. (02)334-5915

서울 명동예술극장은 현대 일본 희곡 3편을 무대로 가져온다. 오토야 유키코의 '난폭과 대기', 마에다 시로의 '위대한 생활의 원형', 쓰쿠다 노리히코의 '허물'을 21일부터 23일까지 차례로 올린 뒤 낭독 뒤엔 저자와의 만남도 주선한다. 작품은 현대 일본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부조리한 시선이 강하게 담겨 있다.

극장은 이와 관련한 심포지엄을 23일 연다. 무료. 1644-2003

연극계 대모인 배우 박정자의 낭독연극 '영영이별 영이별'은 음악을 살짝 곁들였다.

조선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가 이승을 떠나며 이승에서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해금(강은일)과 기타(이정엽)가 낭독의 결을 맞춘다. 21일 서울 강동아트센터 소극장. 2만∼3만원. (02)440-0500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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