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서울시 38세금징수과, 얌체 체납자 쫓는 ‘정의의 추격자’
지난 20일 오전 8시. 인천시 서구의 한 빌라 앞에 서울시 38세금징수과 배기선 징수 4팀장을 비롯해 조사관 5명이 모였다. 이 빌라에 살고 있는 A씨가 사용 중인 고급 외제자동차(BMW)를 압류·견인하기 위해서다. A씨가 사용 운행하는 이 차량은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주소를 둔 Y사 소유의 법인 차량이다. 그런데 이 회사의 부도로 서울시에 납부해야 할 4억5000만원의 지방세를 수년째 체납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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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납차량 압류 아쉬운 헛걸음
조사관들은 체납된 지방세를 징수하기 위해 이 회사와 관련된 부동산 등을 추적한 끝에 이 차량이 인천시에 거주하는 A씨가 사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소유자가 불분명하고 교통 법규 위반 등 압류 건만 90여건에 달하는 말 그대로 '대포차'다.수차례에 걸쳐 인도명령서를 발송했는데도 A씨가 이 차량을 인도하지 않자 결국 조사관들이 이날 차량을 압류, 공매를 통해 세금을 충당키로 했다.
차량이 견인되면 일단 서울시 인터넷 공매 협력업체인 오토마트 홈페이지(www.automart.co.kr)를 통해 매각되고 판매대금은 지방세로 환수된다.
빌라 앞에 도착한 징수팀은 일단 견인 대상 차량이 있는지 주차장을 확인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차량은 없었고 누구나 할 것 없이 빌라를 중심으로 골목길 일대를 수색했다. 이 일대를 수색했지만 차량이 없는 것을 확인한 조사관들은 A씨를 직접 만나기로 하고 집으로 올라가 수차례 초인종을 눌렀다. 하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결국 A씨와 어렵게 전화 연결이 됐지만 그에게서 돌아온 말은 '차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조사관들과 A씨의 승강이는 10여분간 이어졌다. A씨는 '차를 누가 가지고 가버렸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에 조사관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차를 가져 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검찰에 고발할 테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으름장을 놓고는 세금 체납 충당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30여분 승강이 끝에 견인 성공
징수팀은 다시 오전 9시30분께 지방세 1670만원을 체납한 B씨 소유의 고급 외제 자동차 렉서스 차량을 견인하기 위해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모 아파트에 도착했다. 체납자 B씨 역시 여러 차례에 걸친 지방세 납부 독촉을 했는데도 납부를 회피해왔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한 이들은 다시 주차장 일대를 살피며 차량 수색에 나섰다. 이른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많은 차량들이 빼곡히 주차돼 있는 탓에 수색이 쉽지 않았다.
한참 수색 끝에 주차장 통로에서 해당 차량을 발견했다. 조사관은 차량 번호를 확인하고는 바로 차량 견인을 위해 견인차 회사에 연락했다. 체납자에게도 연락해 차량 압류·견인 사실을 통보하고 짐을 뺄 것을 주문했다. 10여분이 흘렀을까. 체납자 B씨의 부인이 먼저 나왔다. 또 다시 승강이가 시작됐다. B씨의 부인은 처음에는 "체납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고, 차량 압류 사실도 몰랐다"고 발뺌했다. 조사관들이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에야 그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체납할 수밖에 없었다"며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다. 이윽고 나타난 체납자 B씨는 체납 사실을 인정하고는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 체납했고, 차량은 몸이 성치 않아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역시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조사관들은 수차례에 걸친 체납 지방세를 독촉했음에도 납부하지 않아 행정 절차상 어쩔 수 없다고 말한 뒤 경제력이 되지 않으면 분납도 가능하다며 납부 방법과 차량을 찾을 수 있는 방법 등을 설명해줬다. 30여분간 승강이를 한 끝에 체념한 듯한 B씨는 차안에 있는 실려 있던 짐을 내렸고 견인 차량이 도착해 이 차량을 견인해 갔다.
권수 조사관은 "경제적 여건이 되면서도 의도적으로 납세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힘들게 한다"며 "하지만 이번 경우는 경제 여력이 좋지 않은 것 같긴 하지만 조세 정의 실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절차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인 회사 체납세액 징수 '골치'
차량이 견인돼 가는 것까지 확인한 징수팀은 낮 12시께 한강에서 요트업과 컨벤션, 외식업을 하는 ㈜서울마리나를 방문해 체납세액 납부를 독촉했다. 서울마리나는 한강에 인공 섬을 만들어 건물을 지어 영업해 부과되는 하천사용료, 면허세 등 3억3000만원의 지방세를 체납한 상태다.
징수팀이 들어서자 이 회사 이사직을 맡고 있는 K씨가 면담을 청했다. 그는 "경영난이 장기화되면서 불가피하게 세금을 체납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미 서울시에 납부이행 계획서를 제출한 상태로 계획대로 세금을 납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징수팀은 그러나 서울마리나 측의 경영 상황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 관련 서류 제출을 요구했다. 서류를 살펴본 조사팀은 일단 납부 이행 계획서대로 납부할 것을 통보한 뒤 이 회사 소유의 요트 등에 대해 압류 조치할 계획이라고 설명하고 발길을 돌렸다.
징수팀은 이날 마지막 일정으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회사 사무실을 방문했다. 이 회사 관계자가 운행하고 있는 에쿠스 차량을 압류·견인하기 위해서다. 부도가 난 M회사 소유의 차량으로 이 회사는 4억2000만원의 지방세를 체납했다. M회사 소유이지만 현재 운행은 다른 회사가 하고 있었다. 미리 이 회사 측에 연락해 둔 탓에 차량을 쉽게 인도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당초 예상은 빚나갔다. 회사 관계자가 사사로운 트집을 제기한 것이다. 결국 차량은 인도하기로 했지만 차량을 주차한 곳까지 동행해 주지 않아 징수팀은 차를 찾는 데 생각지도 못한 진땀을 빼기도 했다. 지하주차장에 있던 차량을 찾아 견인차가 차를 견인해 가는 뒷모습까지 확인한 뒤 징수팀은 이날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일정을 마무리하고 서울시청사로 돌아왔다. 시청사로 돌아온 이들은 이날 징수활동 상황을 정리하고, 세액을 충당하기 위해 또다른 체납자의 은닉 재산 추적 작업을 벌였다.
■‘38세금징수과’ 발자취
"끝까지 추적해 반드시 징수한다.' 지방세 상습 고액'체납자에 대한 '현미경 세금 징수'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서울시 38세금징수과의 모토다.
이 조직은 지난 2001년 8월 출범했다. 당시 증가하는 체납자에 대한 대응 부족과 체납자 금융 재산 조사가 한계에 부딪히자 성실 납세 풍토 조성을 위해 고건 전 서울시장의 하명에 따라 조직됐다. '38'은 납세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38조에서 따온 것이다. 현재 서울시 고액 체납자는 2만8000명으로 징수 공무원 1인당 평균 1400명을 관리하고 있다.
출범 당시 팀 단위로 조직됐다가 2008년 조직 개편에 따라 독립 부서로 승격된 뒤 기동대로 운영되다 지난 2012년 조직 개편 이후 현재의 모습(1과 5팀)을 갖췄다. 한때 모 지상파 방송의 교양 프로그램에 연속으로 출연한 것이 계기가 돼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이 조직은 2001년 279억원을 시작으로 2010년 433억원, 2011년 424억원, 2012년 413억원, 지난해 457억원 등 10여년간 5629억원의 체납 세금 징수실적을 거뒀다.
38세금징수과는 체납 세액의 효율적인 징수를 위해 조사관에게 직접 체납자를 배정하는 맨투맨제로 변경하고 사회지도층 및 종교단체 체납자 특별 관리 개념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의사, 변호사, 경제인 등 사회지도층 39명과 31개 종교단체로부터 32억원의 체납세액을 받아냈다.
특히 은닉 재산을 추적해 공매하고 명단을 공개하는 한편 출국금지 등 강력한 징수 수단도 동원됐다.아울러 체납자 명의 은행 대여금고 압류, 체납자 소유 차량 압류·공매, 해외 도피성 체납자 추적 등을 통해 체납자들로부터 체납세액을 징수하고 있다. 서울시 임출빈 38세금징수과장은 "얌체 체납자들의 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성실한 납세 풍토 조성과 조세 정의가 실현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ssuccu@fnnews.com 김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