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버리고 줍고, 묻어온 것들의 역사

      2014.02.27 17:04   수정 : 2014.10.29 10:08기사원문

중세 도시 아낙네들은 "물조심!" "머리 조심!"이라고 외친 뒤 대문과 창문을 통해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운없는 행인들은 그 오물을 무방비 상태로 뒤집어썼다. 절대권력의 왕도 예외는 아니었다. 프랑스 루이 11세는 밤 산책길에 어느 대학생이 던진 요강물을 머리에 맞고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왕은 이 오물 투척자 대학생에게 불호령을 내리진 않았다. 밤 늦게까지 공부하던 학생에게 오히려 금일봉을 내린 일화도 있다.

쓰레기는 시대와 나라에 따라 다소 활용방식에서 차이는 있지만 그 자체로 '돈'이 됐던 건 확실하다. 쓰레기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직업 넝마주이의 전성기는 19세기. 당시 넝마주이는 엄격한 위계와 관할구역을 가진 동업조합으로 번성했다.

이들의 취급품 중 가장 각광받던 쓰레기는 헌 옷감이었는데, 당시 옷감은 종이를 만드는 중요 재료였기 때문이다. 뼈, 금속, 가죽, 빵부스러기까지 수집한 넝마주의는 거리의 청소부였을뿐 아니라 재활용과 물물교환의 기수로 여겨졌다.

예술가들에겐 이 쓰레기가 영감의 원천이 됐다. 잡다한 쓰레기를 모아 콜라주 기법으로 추상작품을 만든 독일 화가 쿠르트 슈비터스가 좋은 예다. 피카소는 쓰레기통을 뒤져 주운 천조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마르셀 뒤샹, 프란시스 피카비아, 막스 에른스트 등도 비슷한 작업을 했다. 유럽 고급 부티크에서 고가에 팔린 품목 중 하나는 인도 비정부기구가 빈민들의 수거품 폴리에틸렌 봉투를 재가공해 만든 가방이었다.

프랑스 쓰레기 전문가인 저자는 누가 어떻게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활용하고, 싸워왔는지 그 과정을 책에 담았다. '인간이 버리고 줍고, 묻어온 것들의 역사'다.

저자는 이 쓰레기의 미래로 무엇이 좋은지도 제안하고 있다.

최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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