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1초 급한 골든타임 ‘불통’이 참사 키워
사상 최악의 해상 사고인 '세월호 침몰 사고'는 총체적 부실을 드러낸 정부의 위기관리시스템이 피해를 키웠다. 특히 사고 발생 초기 정부 유관기관 간의 '따로국밥'식 통신체계가 이번 참사를 키운 것으로 지목되면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국가재난안전무선통신망(국가재난망) 도입이 박근혜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03년 340명의 사상자를 낸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추진된 재난망 사업은 기술 종속 논란과 경제성 문제 등으로 논란만 양산한 채 지지부진하며 12년째 표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과 같은 비극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으려면 차제에 어떤 형태로든 국가재난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국가재난망의 문제와 대책을 2회에 걸쳐 짚어본다.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참사'는 국가 재난통신망의 부재가 얼마나 큰 결과를 낳는지를 뼈저리게 알게 해준 계기가 되고 있다. 사고 초기 해경, 군, 소방, 중앙안전대책본부(중대본), 지방자치단체 등 유관기관, 현장과 지휘부 간에 원활하고 신속한 통합 무선통신시스템이 구축됐다면 무고한 국민들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지적들이 나오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참사에도 정부 당국은 표류 중인 국가재난망 구축 사업의 타당성 결과발표 조차 차일피일 미루면서 국민적 여론과 사회적 분위기에 역행한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22일 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초기 대응에 나선 정부 유관기관들의 허둥대는 모습과 사망자 집계 등 정보 혼선은 후진국형 국가재난망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사고 당시 유관기관들은 서로 다른 무선통신망을 사용해 소통 단절로 초기대응 시간이 늦어진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해경과 해군은 아날로그 초단파 무선통신(VHF) 방식을 사용하는데, 해경끼리는 지역 간 무선 교신을 KT파워텔의 상용망(아이덴)을 적용하고 있다. 또 해군은 내부적으로 낡고 전파 간섭이 심한 VHF를 채택하고 있다.
결국 재난사고 발생 시 해경과 해군이 연락체계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중대본도 제각각 보고로 사고 상황 집계가 번복되기 일쑤였다.
또 세월호가 사고 초기 인근 관할기관인 진도 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아닌 제주 VTS로 구조 요청을 한 것도 시간을 허비한 결정적인 실수로 작용했다. 초동 조치가 어려운 제주 VTS가 상황 파악에 시간을 낭비하고 다시 관할 VTS에 연락하는 과정에서 많은 생존자를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해양수산부 산하 VTS와 해경 등 사고지역 일대 기관 간의 무선통신 호환 체계가 마련됐다면 초기대응 시간을 훨씬 앞당길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양대 박승권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중앙부처, 소방, 경찰, 군, 지자체 등 재난 관련 기관들이 제각각 다른 주파수와 통신 방식을 사용하다 보니 초기대응 혼선으로 화를 키운 것"이라며 "'게이트웨이(전달체계 시스템)'인 재난망 구축은 대형사고 때마다 되풀이되는 해묵은 이슈지만 부처 간 이기주의로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고 답답해했다.
박 교수는 "예전에 남대문 방화 때도 관할 소방서가 문화재청 허가를 이유로 즉각 대응을 안해 국보가 전소되는 후진국형 대응 시스템을 보지 않았느냐"며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참사가 부처 간 이해관계를 초월해 재난망 구축을 앞당길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게 희생자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는 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도 12년째 표류 중인 재난망 구축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 발표 시기조차 안갯속을 걷고 있다.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