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경찰서 ‘청소년 경찰학교’ 가보니

      2014.05.06 17:34   수정 : 2014.05.06 17:34기사원문

봄비가 내리던 지난달 28일 오전 9시, 기자가 찾은 서울 미아동 강북경찰서 동화치안센터 내 청소년 경찰학교(경찰학교)에는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장난을 치며 시끌벅적한 모습이었다. 동화치안센터는 청소년경찰학교를 시범운영하는 곳으로 이날은 우이초등학교 6학년 1반 학생 27명이 체험을 위해 찾았다.

한창 뛰어놀 나이의 아이들이라 오리엔테이션부터 쉽지가 않았다. 이처럼 집중력이 낮은 청소년들의 특성을 고려해 경찰은 체험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지난해 6월 말 수송초등학교 6학년 2반(21명)이 처음 경찰학교에 들어온 이후 14번째로, 그동안 인근 초·중·고교 학생 224명이 이곳을 거쳐갔다.

■역할극 통해 피해자 심정 이해

오전 9시30분께 본격적인 체험 수업이 시작됐다. 학교전담 경찰관들이 선생님을 맡아 진행하는 경찰학교의 핵심은 역할극과 경찰 수사 체험, 심리상담 등의 프로그램으로 짜였다.

김현하 경위와 이주현 경사가 먼저 학교폭력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나리오 중 하나를 제시하고 학생들은 가해자와 피해자 역할을 번갈아 가면서 해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어떻게 괴롭히는지 모르겠다"며 장난스러운 표정과 함께 소극적으로 역할극을 진행했다.

하지만 경찰관들이 역할극을 함께 하자 이내 진지한 모습으로 바뀌어 물건을 뺏기고, 뺏는 역할에 몰입했다. 김 경위는 "역할극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 다시 말해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의 마음을 스스로 느끼도록 해준다"고 설명했다.

정혜은양(12)은 "같은 반 친구들과 역할극을 하다 보니 장난스럽게 진행됐지만 실제 내가 학교폭력을 당하는 상황이라면 많이 무서울 것 같다"며 "다른 건 몰라도 '절대로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확실히 들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체험은 윤상현 경사가 맡았다. 역할극에서의 사례를 그대로 옮겨와 경찰관과 폭행 피의자로 역할을 나눴다. 장난으로 피의자를 때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실제 경찰들이 하는 그대로 피의자에게 미란다원칙을 고지하고 서투르지만 신문조서도 작성했다.

강북서 박상현 여성청소년과장은 "아이들이 경찰 조사를 체험하면서 학교폭력이 '범죄'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고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며 "학교폭력의 실상을 가르쳐준다는 측면에서 학교폭력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리상담으로 체험효과 높여

아이들이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학교폭력과 관련된 얘기들을 털어놓는' 심리상담은 맨 마지막 단계다. 1인당 5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실제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폭력을 당한 경험을 털어놓는 아이들도 있다. 이 대목에서는 기자도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강북서는 덕성여대 심리학과와 업무협약을 맺고 대학(원)생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박상현 과장은 "체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심리상담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대학생 언니·누나들이라 아이들이 더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날 심리상담을 진행한 덕성여대 심리학과 4학년 임지현씨(23)는 "특히 초등학생의 경우 학교폭력에 대한 경험이 없고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며 "이런 체험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때 가해자였던 아이가 있었는데 상담을 받으면서 '다시는 친구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적이 있다"면서 "아이들에게 조그만 변화를 줬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이들은 이어 자신의 지문을 채취하는 과학수사 체험, 경범죄 단속을 비롯한 지역경찰 체험 등 진로탐색을 위한 '직업'으로서의 경찰 체험에 나섰다. 그중에서도 수갑 및 3단봉, 테이저건(권총형 전기충격기)을 실제로 다뤄보는 시간에는 큰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변용민군(12)은 "3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색다른 경험이었고, 좋은 경험이었다"면서 "앞으로 학교폭력 피해를 직접 당하거나 친구를 도와줘야 하는 상황에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학생들이 학교폭력을 실질적으로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청소년 경찰학교'를 강북서에서 시범 운영한데 이어 올해는 전국 20개 경찰서로 이를 확대할 계획이다.


한편 지난해 박근혜정부 출범과 함께 성폭력.가정폭력.학교폭력.불량식품 등 '4대 사회악 근절'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면서 학교폭력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여전히 근절되지는 않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3월까지 117 학교폭력신고센터에는 하루 평균 157건의 신고가 들어왔다.
이는 2012년(220건)과 지난해(278건)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지만 아직도 학교 폭력이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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