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 하나쯤이야 생각하는 순간, 당신도 세월호 선장입니다

      2014.05.26 17:13   수정 : 2014.10.27 03:27기사원문

"요즘 아이들 사이에선 어른 말 듣지 말자는 이야기가 유행처럼 퍼지고 있어요. 교육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부터 진실된 교육이 시급합니다." 연동교회 이성희 담임목사(66)는 세월호 참사의 치유를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선하고 바른 모습을 어른들이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멀쩡히 법과 규범이 있는 데도 "나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으로 뭉개 버리는 안일한 태도도 이번 기회에 뿌리를 뽑아보자고 제안했다.

세월호 참사는 못살았던 과거에 비해 엄청난 속도로 일군 경제성장과 달리, 이를 못 쫓아가는 정신세계의 빈약함 때문이라며 정신과 마음의 교육 토대가 굳건히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를 통해 거듭나는 한국이 되기를 소망하는 이들이 많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무엇이고, 이제 어디로 향해 가야 하는지 고민이 커지는 시점이다.

▲우리나라는 정말 그동안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1960년대 초반만 해도 필리핀보다 못살지 않았나. 세계적으로도 20세기 후반 들어서 민주화,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룬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면서 한쪽은 놓친 게 있다. 정신세계다. 경제성장과 동시에 추구했어야 하는데, 양쪽 균형을 잘 맞추지 못했다. 스펙을 우선으로 하고 졸업한 뒤 좋은 취직자리 구하면 전부인 시대를 살았다. 그런 개인은 돈은 벌었을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 공허함을 느꼈을 것이다. 윤리관, 가정, 신앙 등이 점진적으로 파괴되면서 복합적으로 나타난 것이 세월호 참사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정신세계를 튼튼히 하기 위해선 무엇부터 해야 한다고 보나.

▲종교가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사회가 오히려 교회를 염려하는 걸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종교계가 각성할 필요가 있다. 종교계는 우리 사회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생명을 살려야 하고 사회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지성인들의 각성도 필요하다. 개발에만 급급할게 아니라 보존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초가 부실하면 넘어지게 마련이다. 대학이 철학개론, 역사학, 기초학문을 필수과목으로 두는 이유도 그런 거 아닌가. 공학이나 경제학을 할 때도 인문학이 바탕에 잘 깔려야 한다. 사회 기본이 되는 학문의 중요성이 확실히 높아져야 한다.

―총리가 새로 내정되고 정부의 중요 자리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새 내각이 가장 신경 썼으면 하는 건 무엇인가.

▲문제는 구조보다 사람에 있다.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 중 이런 게 있다. 사슴이 이끄는 사자부대보다 사자가 이끄는 사슴부대가 더 잘 싸운다. 그만큼 리더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법은 거창한데 지키지 않는 게 문제다. 법치가 제대로 안 된다. 엄격히 적용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석구석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닌가. 국가가 흔들리지 않게 하는 기초공사는 공무원이 한다. 공직사회가 살신성인하는 마음가짐과 모습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참사 후 정치적, 사회적 갈등 양상도 보인다.

▲사건이 터지면 당사자들을 비판하는 게 가장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는 저급한 사고다. 이런 때일수록 서로를 비난할 게 아니라 자기자신을 성찰해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물론 이것은 참사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일과는 별개의 문제다. 우리나라는 공동체로 묶자면 참 작은 나라다. 세계에서 우리가 굉장한 줄 알지만, 우리가 작다는 겸손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슬퍼하는 사람한테 나쁜 글을 올리는 건 상식적으로도 용납이 안 된다. 모두가 이런 일을 통해 더 성숙한 시민의 모습을 고민하면서 사회가 차차 더 나아질 것이라고도 믿는다.

―이런 때일수록 기독교가 해야 할 일도 많을 것 같다. 종교인의 사명은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에 공헌을 많이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교회가 잘하면서도 잘못하는 게 많이 드러나면서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대북지원이나 사회복지에 교회가 굉장한 노력을 한다. 애도 기간이 끝나면 전 국민이 슬픔을 빨리 이겨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앞장서 할 일이지만, 그 뒤에 교회의 일도 많다. 치유하고 회복시켜주는 프로그램을 교회가 수행할 것이다.

―치유의 프로그램은 어떤 게 있나.

▲희생자들이 가진 트라우마를 치유하는데 기독교 상담사들을 적극 활용해도 좋다. 이 과정은 대략 3∼4년은 걸린다. 기독교나 교육계 학자들이 심각히 고민해야 할 문제도 많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선 어른 말 듣지 말자, 어른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돈다. 교육적으로 진실한 말을 잘 들을 수 있도록 가르침이 이뤄져야 하는데 청소년들의 자기 주장만 커지는 상황이 됐다. 가정에서부터 진실된 교육이 필요하다. 사소한 거짓말은 예사로 하는 풍토를 가정에서부터 고쳐나가야 한다. 회사에서도 사장 비서실에 가면 뻔한 거짓말을 아무렇게나 한다. 사장이 있는 데도 없다고 한다거나 하는 말들을 안하는 게 좋다.

―참사를 보면서 우리 국민이 길러야 할 덕목도 생각하셨을 것 같다.

▲두 가지다. 우리는 스스로 내가 과연 세월호 선장이 아니었나 자성해야 한다. 내가 맡은 그 일에 대해 정체성을 잘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다. 하나님께선 내게 주신 그 일은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나밖에 없다는 책임감과 의식으로 충성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 우리가 도덕적이고 법을 잘 지키고 살아가는 건지,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법 어기지 말자고 줄곧 주장해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데 관계는 일종의 약속이다. 그런 걸 쉽게 어기면서 세월호 선장만 욕할 수 없을 것이다. 작은 약속, 작은 법, 눈에 보이지 않는 법, 그 모든 작은 규범들을 지키는 각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

―참사 현장엔 자신을 희생한 아름다운 젊은이들도 있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생각도 하게 한다.

▲세상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좋은 사람이 굉장히 많다. 하지만 그 좋은 미담을 너무 빨리 잊는 경향도 있다. 선한 사람은 선한 눈으로 선한 걸 찾는다. 악한 사람은 악한 눈으로 악한 걸 찾는다. 우리는 선한 사람을 잘 밝혀내서 얘기해야 한다. 영화 '타이타닉'에선 선장이 끝까지 배를 지키며 최후를 맞고, 오케스트라는 찬송가를 연주하며 배와 함께 가라앉는다. 오랫동안 남는 감동이었다. 세월호의 좋은 이야기가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최근 영화 '시선'을 만든 이장호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이성희 목사는..

서울시 종로구 연지동에 위치한 붉은 빛 벽돌 건물의 연동교회는 1894년 설립된 유서깊은 곳이다. 근대 한국기독교 교육 분야에서 선구적 역할을 했다. 1990년부터 올해로 24년째 이 교회를 이끌고 있는 이성희 담임목사는 목회와 신학, 지성과 영성이 충만한 한국 내 몇 안 되는 목회자로 손꼽힌다. 지난 2008년 장신대 총장에 선출된 적도 있지만 교회 측 만류로 이 목사는 대학 대신 교회를 선택한 일화가 있다.

미국판 교회성장학에 많은 이들이 몰두하던 1970년대에 그는 당시 생소했던 교회행정학을 전공했고 오랫동안 대학에서 교회행정학을 가르쳤다. 학문적 깊이뿐만 아니라 행정 능력까지 인정받고 있는 건 이런 배경과 관련이 있다. 8년간 미국에서 유학한 뒤 서울 영락교회를 거쳐 연동교회에서 목회하며 통일·사회복지 분야 교회 역할을 강조했다. 이 목사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교회는 존재가치가 없다"는 소신을 피력해왔다.

가정의 화목과 부모의 역할을 몸소 실천해온 그는 교회 내 '잉꼬 부부'로도 유명하다. 목사 부부는 어딜 가든 서로 손을 꼭 잡고 다닌다.
평생 신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해온 교육자이자 대구제일교회에서 34년간 봉직한 한국 교계 거목 고 이상근(1920∼1999) 박사가 부친이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약력 △66세 △연세대 철학과 △장신대 교육학 석사 △미국 풀러 신학대 목회학 박사 △미국 샌프란시스코 신학대 신학박사 △미국 남가주 장로회 신학대 교수 △미국 남가주 동신교회 담임목사 △영락교회 행정목사 △현 장신대 겸임교수 △현 미국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 객원교수 △현 재단법인 한민족복지재단 명예이사장 △현 사단법인 월드컨선 공동회장 △현 복지법인 연동복지원 이사장 △대표저서 '영으로 걸으라' '말씀에게 길을 묻다' '세상을 바꾸는 미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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