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국민의 恨 풀어드립니다”.. 발로 뛰는 ‘암행어사 4인방’
이들의 일은 첫째가 경청, 둘째도 경청, 셋째도 경청이다.
이들이 상대하는 사람들은 대개 수년간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수십에서 1000여통의 민원을 제기하는 이들이다.
대다수가 지자체며 감사원, 검찰, 국회, 청와대 등에 민원을 제기하며, 몸과 마음이 지쳐있다.
어디에서 잘못됐을까, 마음속 억울함이 커지다 보니 고성이 나가고, 폭언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협박과 폭력행사를 하기도 하고, 결국 외면당하게 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그래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쩌면 어딘가에서부터 꼬인 사건의 해결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보호받아야 할 국민의 권익을 찾아주는 이들이 있다. 바로 민원처리의 마지막 종착지, 국민권익위원회 고충민원 특별조사팀이다.
최근 관피아 논란과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에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이들의 일과를 동행취재했다.
지난 8일 오후 3시께, 서울 영등포 신세계백화점 부근 한 찻집에 60대 남자와 영등포구청 공무원 4명, 국민권익위원회 장태동 고충민원 특별조사팀장이 마주앉았다.
60대 남자가 이날 주인공이다. 그는 쇼핑백 하나 가득 서울시, 법원, 감사원, 청와대, 권익위에 보냈던 진정서며 감사청구서, 판결문, 각종 소장들을 모아왔다. 그는 영등포구청 정문에서 1인 시위를 했을 때 사용한 대형 호소문도 펼쳐 보였다. 남자는 인근 백화점이 부설주차장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행정상 하자가 있다며 자신이 보유한 건물과 대지를 백화점 측에서 사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210명 연서로 서울시에 주민감사를 청구했으나 위법사항이 없다고 종결처리됐으며 2012년 제기한 행정소송에선 각하결정을 받았다. 남자는 2013년 초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민원 서류를 전달코자 했으나 경호문제로 저지당하기도 했다. 그해 6월 청와대에 민원을 접수했고 이 사건은 국민권익위원회 고충민원 특별조사팀으로 이관됐다. 수년에 걸친 남자의 민원이 고충민원 특별조사팀으로 오기까지의 여정이다.
■경청 또 경청… 억울한 국민 달래는 '소통'
권익위 장태동 고충민원특별조사팀장(55)은 "오늘은 이 분의 '억울한' 이야기를 다 들어보자"면서 말문을 열었다. 남자는 너무 떨려서 밤잠을 설쳤다고 했다. 남자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때로는 고성을 지르기도 하며 때로는 울분을 토해내기도 하며 자신의 얘기를 풀어놨다. 그는 "내 말만 들으면 오늘 이 얘기는 한번에 다 끝나"라고 자신하면서도 "동석한 구청 공무원을 향해 "저 사람 말 믿지마, 순 거짓말이야"라며 거센 표현으로 불신을 드러냈다. 오후 3시에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그날 밤 10시가 넘어도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28일 현재 진행 중이다.
1주일 뒤인 16일 대구시청 별관. 중년의 한 여성이 경상도 사투리로 속사포처럼 자신의 맺힌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 역시 10여년의 진정과 소송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남편이 사망한 후 시어머니와 시동생은 그의 집을 재개발사업 추진 건설업체에 팔아버렸다. 재판을 통해 그가 실소유주이며, 시어머니에게 명의신탁했다는 걸 입증했지만 시어머니가 받은 매매대금은 온전히 회수하지 못했고, 집은 이미 철거돼 그 자리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여자는 대구시가 건설업체에 재개발승인을 내줄 때 제대로 자신의 재산권을 보호해주지 않았다며 대구시에 책임을 묻는 한편, 건설업체에 보상금을 요구하고 있다. 여자는 어느 국회의원에게도 진정서를 보낼 것이라고 했다. 여자 앞엔 대구시 공무원과 건설업체 임원이 앉아 있었다. 이들 모두 감정의 골이 깊을 대로 깊어진 모습이었다. 고충민원 특별조사팀 이용범 조사관(49)이 여자에게 "일단 다 속시원하게 털어놓으시라"고 말했다. "8시간도 좋고 10시간도 좋고 오늘 밤이 새도록 끝장토론을 해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주문을 덧붙였다. "상대방 입장도 배려해 달라"는 것이었다.
여자의 말 3할은 10여년간 홀로 싸우면서 겪었던 상처들로 채워졌다. "민원 내용이 뭔지, 뭐를 국민이 억울해하는지 해결할 생각은 안하고 마무리 안하고 다른 데로 넘기지 않나, 퍼뜩하면 법적으로 하자 없다는 거지, 국민 무시하는 거 아이가. 전에 어떤 공무원으로부터 여자가 어디 아침부터 전화하느냐는 얘기도 들었다." 마주앉은 대구시 공무원들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여자가 수년간 정부가 개입할 수 없는 부동산매매 사항을 들고와 시장이며, 국장실을 찾아다니며 고성을 지르고 해서 힘겨웠다고 했다. 또 여자가 요구하는 보상액수가 너무 커 건설업체와 중재를 하려고 해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방안의 열기는 치고 올라갔다. 이날 대화는 3시간가량 이어졌다.
이 조사관은 여자와 함께 그가 무료로 법률상담을 받았다고 한 변호사를 만나러 갔다. "보통 법으로 해결하자고 하잖아요. 법대로 한다고 해서 국민들의 보호받을 권리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거든요. 우선 내 문제, 내 가족의 문제라고 생각해야 해요." 이 조사관은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이같이 얘기했다. 앞으로도 그는 몇 번을 더 대구에 내려갈 생각이다.
■고질민원 도맡아 해결하는 '드림팀 4인방'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011년 7월 권익위 내 전문조사관 3명을 모아 이 같은 고질민원을 처리하는 고충민원 특별조사팀을 만들었다. 이곳은 사실상 민원의 마지막 종착지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 오는 민원원들은 수년간 지자체를 비롯해 검찰이며 감사원, 청와대 등에 총 수십건에서 수천건에 이르는 진정서와 탄원서, 감사청구서 등을 보내고 소송까지 치른 경우가 태반이다. 법논리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오랜 세월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지친 이들은 공무원들을 향해 고성과 폭언, 욕설 심지어 폭력까지 일삼는 경우가 있다.
이렇듯 악성민원으로 전개되면 일선 공무원들도 설레설레 고개를 젓기 시작한다. 소위 '폭탄 돌리기' 하듯 외면하는 단계로 들어간다. 그렇게 수년이 흘러가면 민원인들의 마음속 상처는 깊어지고, 그들 마음속 억울함도 더해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이야기들을 더 이상 들어주지 않는다는 데서 절망감을 느낀다고 한다.
특별조사팀 발족부터 함께한 장태동 팀장은 이를 '한(恨)'이라고 표현했다. 민원인의 한을 풀어주는 게 그들의 임무라고 했다.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래서 문제해결책을 찾아내 대안까지 제시해야 합니다. 그래도 정말 하자가 없는 경우엔 민원인이 이해하고, 납득하고 받아들여 고통을 털어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들 일입니다."
발족한 지 약 2년10개월. 이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최근까지 77건의 민원을 맡아 61건을 해결했고 현재 나머지 16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팀은 단출하다. 3명이었던 팀은 최근 4명이 됐다. 원년 멤버인 장태동 팀장과 정덕양 조사관(47), 지난해 합류한 송익범 조사관(46), 이용범 조사관이 그들이다. 장태동 팀장은 "민원처리분야에서 베테랑들만 모아놨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장태동 팀장은 일단 민원인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는 걸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푸근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이지만 현장에 나가서는 조정자로서 강한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직접 면담과 전화통화를 통해 수십 차례 접촉을 하고, 사안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 "문을 잠그고 끝장토론을 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누구도 이 방을 나갈 수 없습니다"라고 주문한다.
이렇게 해서 수년간 이끌어온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길 40여건, 민원인을 이해 설득시킨 게 20여건이다. 이 중엔 군산판 밀양송전탑 사건으로 불리는 새만금송전선로 갈등도 포함돼 있다. 이성보 권익위원회 위원장이 직권으로 조정해 극적으로 타결에 이른 이 건의 권익위내 전담업무도 이 팀이 맡았었다.
지난해 합류한 송익범 조사관은 국세청에서 권익위로 이동한 케이스다. 전입할 당시 같은 세무공무원인 부인 몰래 이동 결정을 내렸다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는 국세청에서의 경험을 살려 세무분야 민원처리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그는 한 민원인(40대·남)으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았다. 부친이 그의 명의를 도용해 사업을 했다가 실패, 결국 각종 채무와 세금체납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경우였다. 그는 차상위계층으로 떨어져 일정한 직업도 없이 고시원에서 지낼 정도로 생계가 어려웠다. 근로복지공단은 고용보험 체납금으로 조부의 묘소가 있는 임야를 압류했다. 근 10년 변호사와 노무사를 찾아다녔고, 공단이며 청와대까지 민원을 제기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스스로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었다고 말한 그는 권익위에 진정했고 올 초 서울 신림동 고시원으로 그를 찾아온 송 조사관을 만났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송 조사관은 서류를 훑어본 지 1분 만에 눈빛이 빛나면서 단박에 문제점을 찾아냈다고 했다. 송 조사관은 묘소는 압류 불가하다는 규정을 제시했다. 결국 근로복지공단의 압류를 푼 것이다.
남자는 "송 조사관이 고시원까지 찾아와 밥도 사주면서 이야길 들어주고, 직접 묘소가 있는 통영까지 찾아가 문제를 해결해 준 데 대해 감사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위원장 앞으로 보냈다. 송 조사관은 "누구나 거친 민원은 피하고 싶다는 게 인지상정이겠지만 어쨌든 민원인에게 '내 편이다' 하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장 팀장과 함께 특별조사팀 터줏대감인 정덕양 조사관은 타부처에서 권익위로 이동했다. 민원처리가 주업무인 권익위로 이동한 까닭을 묻자 '민원처리가 적성'이라고 말한다. 그는 특별조사팀에서도 지자체 간 갈등, 주민과 지자체, 공공기관 간 분쟁 등 공공갈등 조정을 주로 도맡아 처리한다. 그 역시 수많은 민원인들에겐 '은인'으로 통한다. 수년 전 해결한 민원에 감동, 지금껏 캐나다에서 감사편지를 보내는 전직(?) 민원인도 있다.
이용범 조사관은 민원인들에게 살갑기로 유명하다. 소복차림으로 서울 서대문 권익위로 찾아와 종종 1인 시위를 하는 장모 할머니(78)에게 그는 '작은엄마'라고 한다.
장 할머니는 친척이 족보를 조작해 재산을 가로챘다며 1800년대 말 증조부의 제적등본을 찾아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겨울 맨바닥에 앉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작은엄마, 이 연세에 여기서 이러면 큰일난다"면서 집으로 돌려보내길 수차례. "내 가족의 일, 하다못해 먼 친척의 일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그래야 답이 보이거든요."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