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이병권 원장 "‘제2·제3의 스마트폰’ 연구기관 간 유리벽 허물때 앞당길 수 있어"

      2014.06.08 17:00   수정 : 2014.06.08 17:00기사원문

'박학독지(博學篤志)'

서울 화랑로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내 이병권 원장의 집무실에 들어선 순간 눈길을 사로잡은 벽면의 문구다.

이 원장은 궁금한 표정을 짓는 기자에게 "널리 공부해 덕을 닦으려고 뜻을 굳건히 한다는 뜻(논어 자장편)"이라고 풀어줬다.

50여년간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모체이자 맏형 역할을 해온 KIST의 정신이 네 글자에 그대로 담긴 것이다.

KIST가 1966년 태동한 이후 50여년간 이룬 성과를 금액으로 산정하면 595조원이다. 삼성그룹 1년 매출의 두배가량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원장은 "KIST는 국내 최초의 종합연구소로 1966년 설립 이후 지난 50여년 동안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개발 패러다임을 주도하며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제공해 왔다"며 "그간 KIST는 595조원에 달하는 경제사회적 파급효과를 창출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지난 3월 취임한 이 원장은 새로운 50년 도약을 위한 KIST의 전략으로 '사회 현안 해결을 통한 미래사회 대응'을 제시했다. 그는 "미래사회에 당면할 고령화 사회, 에너지·식량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연구를 선도해 나가겠다"며 "출연연 간 벽을 허무는 개방형 공동연구도 확대하고, 미지의 영역에 대한 연구도 추진해 나가겠다"고 역설했다.

이 원장은 KIST가 해외 유수 기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국제경쟁력 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전 세계 41개국 기관과 공동연구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외국인 과학자가 일하고 싶은 연구환경 조성의 일환으로 지난해 글로벌 게스트하우스를 완공하고 행정시스템도 글로벌화했다"고 들려줬다.

이 원장은 해외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 대해 "KIST가 베트남전 참전 대가로 미국의 원조를 받아 설립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떠올려 보면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발전 모델을 해외에 전해주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며 "베트남에 기술을 전해주는 V-KIST 사업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바이오에탄올플랜트 준공, 한·몽골 과학기술협력센터 사업, 몽골 국립대학교에 연구장비 기증 등 다양한 ODA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중소·중견기업 육성과 관련, "특허 무상 실시 양도, 멘토링, 첨단 분석서비스 지원 등을 통해 유망 중소기업을 글로벌 히든챔피언으로 육성하는 K-클럽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외에 그는 KIST에서 30여년을 몸담아온 과학기술인답게 "원장실 문을 활짝 열어 직원들과 열린 소통을 해 나가겠다"는 열린 리더십도 약속했다.

윗사람이 하는 대로 아랫사람이 본받는다는 '상행지, 하효지(上行之, 下效之)'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는 이 원장을 8일 만나 1시간여에 걸쳐 우리나라 과학기술분야 현안과 미래 비전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취임사에서 새로운 50년에 대한 준비를 강조했다. 향후 기관운영 방안.계획은.

▲오는 2016년에 KIST는 설립 50주년을 맞게 된다. 지난 50년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연구와 경영 전반의 미래 50년에 대한 청사진과 그 초석을 만들어 나가는 게 임기 동안 기관 운영의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연구는 다가오는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영역, 그간 해결하기 어려웠던 사회적 난제에 솔루션을 제시하는 영역에 과감히 도전하고자 한다. 경영 측면에서는 개방·협력과 선진경영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겠다. 이를 통해 국제표준 수준의 선진 경영체계 확립에 주력할 생각이다. 아울러 확실한 실험실 안전 및 보안체계를 확립하는 등 경영 전반에 대한 기본을 다시 세우겠다. 연구자가 몰입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하겠다. 특히 원장이 앞장서 연구자의 연구몰입을 방해하는 사안을 직접 챙기고 하나씩 개선해 나가겠다. 국민이 필요로 하고, 국가가 요구하는 연구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국민의 목소리에도 적극 귀를 기울이겠다.

―과학 출연연의 '맏형' KIST가 걸어온 길과 향후 비전은.

▲KIST는 지난 1966년 설립 이래 경제 발전과 국가 근대화에 그 나름의 역할을 해 왔다고 자부한다. 우선 철강산업, 자동차, 중화학공업, 반도체 등 지금 우리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주력산업의 상당수가 KIST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질소비료, 폴리에스테르 소재 개발 등을 통해 경제발전의 기틀을 닦았다. 최근에는 스핀제어소자와 같은 미래성장동력과 인류 마지막 미지의 영역으로 꼽히는 뇌과학 등 기초연구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지난 50년의 성과를 뒤로하고 앞으로는 과거와 다른 비전과 역할로 국민 앞에 다가가는 데 주력해야 한다. KIST는 국내 유일의 종합연구기관으로서 바이오, 에너지, 환경, 재료 등 다양한 영역에서 융합연구를 선도 중이다. 또한 앞으로 KIST는 세계적 연구기관으로 도약함과 함께 전체 출연(연) 발전의 초석이 되기 위한 플랫폼 역할을 하겠다.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KIST의 역할은.

▲개인적으로 창조경제 개념은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일자리와 산업을 창출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기초 원천연구를 통해 미래산업 및 시장창출을 선도하는 역할을 계속해 나가는 일이다. 이를 통해 우리 기업들이 미래 한국을 먹여 살릴 차세대 부품소재 및 헬스케어산업 등의 분야에서 제2의 반도체, 제2의 스마트폰 신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 적극 기여해 나가겠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국민이 불안해하는 사회문제에 대한 불편과 불만을 과학기술로 해결해 달라는 국민적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런 사회문제는 한 가지의 기술역량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다양한 기술역량이 결집돼야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다. 개방형 연구사업을 통해 KIST를 넘어 타 출연(연), 글로벌 연구기관의 역량까지 결집해 복잡한 사회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나가고자 한다. 아울러 출연(연) 간 시범·협력사업을 통해 화학물질사고 대응 등을 공동으로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KIST의 중소기업 육성 지원전략은.

▲KIST는 기초 원천연구를 수행하는 연구기관이지만 국가·사회적 과제인 중소기업 지원도 매우 중요하다. KIST는 고유한 방식으로 중소기업 지원에 주력해 나갈 생각이다. 특히 특허 무상 실시·양도, 멘토링, 첨단 분석서비스 지원 등을 통해 유망 중소·중견기업을 글로벌 히든챔피언 기업으로 육성하는 'K-클럽' 운영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KIST 본원과 강릉.전북분원, KIST-유럽연구소 등 해외거점까지 연계하는 방식으로 중소기업 지원 협력체계를 강화할 예정이다. 일례로 강릉분원에서 발굴한 우수 중소기업을 본원의 K-클럽 회원사로 영입해 특허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기술지원을 실시하고, 해외진출을 원할 경우 KIST 유럽(연)이 기술시장 조사 및 현지 마케팅 등을 지원할 것이다.

―KIST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은.

▲KIST는 국내 최고 수준의 성과를 창출해내고 있지만 세계 유수 연구기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세계 주요 지역에 협력거점을 설치하고 전 세계 41개국과 국제 공동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올 초 스위스 연방재료연구소(EMPA)와 공동연구협정을 체결했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도 힘을 쏟고 있다. 외국인 과학자가 일하고 싶은 연구환경 조성의 일환으로 글로벌 게스트하우스를 완공했다. 연구동 내 글로벌 라운지를 조성해 하드웨어도 한 단계 향상시켰다. 또한 글로벌캠퍼스 교육 강화를 비롯한 행정시스템의 글로벌화도 진행했다.

―KIST가 추구하는 기술사업화 모델이나 촉진전략을 소개하자면.

▲연구성과 활용 강화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이를 위해 성과 확산 전담조직의 전문성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 몇 년간 전담 변리사 인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가고 있다. 이를 통해 과제 기획 단계부터 기술 상용화의 가능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을 추진 중이다. 그간 축적된 연구성과의 보완연구와 우리가 보유한 기술을 융합·패키지화해 창업을 지원하는 실용 성과형 연구를 강화할 계획이다. 'KIST 브릿지 프로그램'을 통해 상용화에 부족한 기술을 연구해 상용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중소기업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실제 이를 통해 10여개 기업에 성공적으로 기술을 이전해 상당한 성과를 얻고 있다.

―해외 ODA사업에 적극적인 이유는.

▲ODA사업은 과학기술을 통한 국격 제고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성을 갖고 있다. 특히 KIST가 베트남전에 참전한 대가로 미국의 원조를 받아 설립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떠올려 보면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발전 모델을 베트남에 수출하는 V-KIST 설립사업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KIST는 지난 2012년 인도네시아 바이오에탄올플랜트 준공, 한·몽골 과학기술협력센터 사업을 통한 천연물분야 연구협력과 인력 양성 등을 수행해 왔다. KIST는 과학기술분야 ODA사업 발굴·추진을 위해 ODA분야 포럼(Seoul S&T Forum)도 매년 개최하고 있다.

■KIST의 역할은

'595조원.'

얼마 전 기술경영경제학회에서 내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현재 경제 가치다. KIST는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기술 연구소로 출범해 지난 47년간 우리나라 과학연구를 견인하며 국가 발전에 주요한 중심축 역할을 수행해 왔다.

주요 연구성과로는 공업용 인조다이아몬드, 광섬유, 고성능 리튬폴리머전지, 신약물 전달체제, 휴먼 로봇시스템 개발 등을 들 수 있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시 참가 선수들의 도핑 테스트 실시와 올림픽경기 종합전산시스템 구축으로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지원한 바 있다. 2000년대부터는 융.복합 미래원천기술 연구를 주 기능으로 삼아 프론티어형 연구와 글로벌 어젠다형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뇌과학연구소, 의공학연구소, 기술정책연구소, 강릉분원, 전북분원, KIST유럽연구소 등을 통해 스핀제어 정보소자 기술 , 체내에서 녹는 뼈 고정용 나사 개발, 수소연료자동차 등의 활발한 성과를 내고 있다.

KIST는 정부산하 기관으로서 국가.사회적 과제인 중소기업 지원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유망중소기업과 해외 거점인 KIST-유럽연구소를 연계해 협력을 강화하는 등 글로벌 히든챔피언 기업으로 육성하는 'K-클럽' 운영을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아울러 과학기술을 통한 글로벌 리더십 확보에도 앞장서고 있다.
스위스 연방재료연구소, 하버드대학 등 선진국과의 국제협력기반을 강화할 뿐 아니라 베트남과학기술연구원(V-KIST) 모델을 타 개도국에 전파하는 등 그간 50년 운영 경험을 중심으로 KIST형 공적개발원조(ODA) 모델을 정립해 나가고 있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김혜민 기자

■약력 △57세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화학공학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화학공학 박사 △미국 애크런대학교 화학공학 박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선임·책임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환경공정연구부장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에너지환경연구본부장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연구기획조정본부장 △한국수소 및 신에너지학회 학술부회장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부원장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출연(연) 발전위원장 △제23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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