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③) 낙하산 올때마다 늘어나는 인증.. 사회 좀 먹는 공무원發 규제

      2014.06.09 17:43   수정 : 2014.06.09 17:43기사원문


#1. 지난 2월 세월호 객실 증축 검사는 한국선급 목포지부가 담당했다. 세월호 참사의 주요 원인이 무리한 증축으로 인한 '복원성 상실'이었지만, 한국선급은 '복원성 데이터 등에 이상이 없다' 며 합격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이처럼 검사가 부실하게 실시된 것은 한국선급의 구조적 문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국선급은 해양수산부 장관의 위탁을 받아 선박의 안전상태를 확인하고 검사하는 일을 하는 민간회사다. 선박 구조 변경 안전검사, 선박 도면 심의, 선박 기자재의 재승인 및 검사 등이 주요 업무다.

사단법인인 한국선급의 회원 83명 가운데 과반수인 48명이 해운.조선업 대표나 임원, 기술인이다. 규제의 대상이 규제의 주체가 된 셈이다. 더욱이 한국선급은 지난 1980년 3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회장을 역임한 인사 8명이 모두 해양수산부 등 정부 부처 출신'낙하산 인사'였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는 지적과 더불어 관피아와 공무원 간 유착관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 무전기를 생산하고 있는 중소기업 A사. 무전기는 전기용품 안전법에 의거, 형식승인을 받지 않으면 국내 제조.판매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과거 정부기관인 전파연구원에서 인증하던 당시에는 30만~50만원이면 인증받을 수 있었지만, 전파연구원이 인증업무를 이관하면서 인증비용은 40배가 늘어나고 인증항목도 많아졌다. 이는 안전인증을 받고 매입한 구성품에 대한 중복인증 등 불필요한 인증항목 추가 및 업무위탁기관들의 인증비용 담합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A사를 비롯한 관련업계에서는 이들 인증기관에 포진한 관피아들이 가격담합을 이끈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각종 협회나 조합 등으로 자리를 옮긴 퇴직공무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당국의 감시.감독을 무마하는 방패 역할을 하거나 협회로 이관된 자율감시.감독기능을 느슨하게 수행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각종 인허가나 인증과정에 관여하면서 무분별한 규제.인증 등을 양산해 기업활동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익단체가 규제 병행… 감독기능 약화

9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발표한 '해양수산 관련 출신 공무원의 민간협회 취업 현황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5년간 전국해양산업총연합회,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 한국항만물류협회 등 9개 협회 및 조합에 총 47명에 달하는 퇴직관료가 이사장.감사.회장 등 임원으로 재직했거나 재직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사에는 세월호 참사와 연관된 한국선급과 해운조합도 포함돼 있다. 한국선급은 정부로부터 선박검사 권한을 부여받았으며 한국해운조합은 해양수산부의 선박안전 감독권한을 위탁받아 수행해왔다. 한국선급의 경우 12명의 역대 회장 중 8명이, 한국해운조합은 그간 이사장을 거친 12명 중 10명이 해양수산부 고위관료 출신이다. 이사장이나 주요 임원 자리를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가 거의 독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은 해수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 부처 중 실물경제와 가장 밀접한 산업통상자원부의 경우 산하 60개에 가까운 협회.재단.진흥회.연구원 등에 퇴직공무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주택.건설 등 분야에서는 대한건설협회, 건설공제조합, 한국주택협회 등의 주요 보직에 국토교통부 퇴직공무원들이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퇴직 관료들이 취업한 협회들이 정부를 대신해 관련 민간기업들의 안전관리 업무 등을 맡으면서 동시에 규제 대상인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낙하산으로 내려간 퇴직 관료들과 이들을 관리감독하는 현직 관료들이 커넥션을 형성하면서 관리감독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현행 공직자윤리법이 공무원 퇴직 후 직무 관련성이 있는 분야에는 2년간 취업을 제한하지만 정부의 업무를 위탁받은 협회는 예외라 이들은 재취업 과정에서 심사도 받지 않는다.

■중복인증 양산으로 기업활동 제약

이와 함께 이들 협회에서 위탁받아 진행하고 있는 인증 등도 기업활동에 방해가 되는 등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법정인증제도는 136개로 이 중 산업부가 28개, 국토부가 20개, 농림축산식품부가 15개, 환경부가 10개, 미래창조과학부가 8개를 갖고 있는 등 부처별로 흩어져 있다. 각 부처들은 이들 법정인증제도를 산하 협회나 조합 등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 기관에는 해당 부처 출신들이 주요 보직을 꿰차는 등 인증 규제 부처와 인증기관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산하 협회에 내려간 관피아는 해당 기관의 먹거리를 책임지기 위해 중복되는 시험검사 인증을 양산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발생한 다양한 인증제도는 소비자의 혼란을 초래하고 제품별로 여러 개의 인증을 취득해야 하는 기업에 부담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기업은 제품 인지도 향상과 조달 인센티브 확보를 위해 인증을 취득.유지할 수밖에 없다.

특히 동일제품에 다수.중복인증으로 인해 비용, 기간, 중복시험 등 기업부담이 과하고, 과다한 인센티브로 인증 획득의 과열양상과 시장진입 장벽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또 인증제도의 사전적 중복 제거장치가 없어 인증 신설 시 타당성 검토라든가 제도 간 중복조정, 실적관리 등을 총괄할 부처가 부재한 실정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2010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 제조기업은 평균 14.9개의 인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인증취득과 유지비용으로 연평균 3230만원을 쓰고 있다. 더욱이 이들 인증제도의 단순.효율화를 시도하려 해도 이들 퇴직공무원의 반발에 개정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취업제한 확대.중복인증 없애야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영리기업뿐 아니라 각종 협회와 조합 등 업계 관련단체에 퇴직공무원의 취업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규제를 받아야 할 협회 산하단체가 협회의 주주 격인 비정상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취업제한 외에도 협회 등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에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안전, 기본 품질에 대한 규제를 제외하고는 중복되는 인증은 과감히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창이라면 창을 무디게 하는 방패역할을 맡기 위해 퇴직 후 그런 기관에서 일하는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관련 협회나 재단 등에 대한 총체적 점검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문겸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신제품,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시험검사 인증이 나오고, 이를 산하기관이 관피아를 통해 담당하면서 인증이 중복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규제를 꾸준히 없애려는 노력과 더불어 소비자의 안전과 제품품질과 관련된 인증을 제외하고 과감히 인증을 줄여야만 관피아와 중복인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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