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피아로 가는 레드카펫’ 더이상 환영받지 못한다
2014.06.22 17:34
수정 : 2014.06.22 17:34기사원문
#. 옛 정보통신부 고위관료 출신인 A씨는 지난 2010년 퇴직 이후 통신업계를 대변하는 한 이익단체에 몸담고 있다. 그는 최근 외부인과 만날 때면 관료 출신임을 일부러 숨긴다. A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논란이 불거지면서 공직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히기가 껄끄러운 게 사실"이라며 "전문성이라는 관료 출신의 장점과 긍지도 있지만 솔직히 기업의 방패막이로서 공직세계의 인맥을 활용해야 하는 '불편한 현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고 고백했다.
사상 최악의 해상사고로 기록된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치권과 우리 사회는 이른바 '관피아' 척결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적폐'로 떠오른 관피아 척결은 국민과 공직사회 위에 군림하는 '슈퍼갑' 국회와 방만경영의 표상이 돼버린 공기업 개혁이 반드시 병행돼야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충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관피아, 입피아(국회), 공피아(공기업) 등 이른바 삼피아에 대한 총체적인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삼피아'
세월호 침몰 참사는 관피아의 폐단이 얼마나 큰 재앙으로 이어지는지를 뼈저리게 일깨워준 사건이다.
검경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로 구속기소된 전 인천해양항만청 간부들은 청해진해운 측으로부터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고 세월호를 오하마나호에 이어 인천~제주 항로에 증선하는 인가를 내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세월호 운항관리규정 심사'에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뇌물을 챙긴 해양경찰청 간부와 인천해경 경사도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와 함께 수사당국은 인천항만공사, 인천항물류협회, 인천항만청 등 퇴직 관료들이 포진한 유관기관들이 이번 사고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정황을 파악하고 광범위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도 관피아 척결 법안 처리가 최우선 과제로 추진되고 있다. 이들 법안은 부정청탁 금지 및 공무원의 이해충돌방지 법안인 '김영란법'과 범죄은닉 재산의 환수를 강화한 '유병언법', 전관예우 금지 및 공직자 취업제한을 강화하는 '안대희법' 등이다.
그러나 관피아 척결에 앞장서는 국회도 국민과 공직사회 위에 군림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회는 입법권과 정부예산심의권, 국정조사.감사권 같은 막강한 권한을 등에 업고 특권과 권위의식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다.
국회의원들은 줄세우기식 기업국감, 민원청탁, 선심성 '문지방 예산' 끼워넣기, 잦은 국회호출 등 기업과 공직사회에 무소불위의 권력 휘두르기를 서슴지 않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한 관계자는 "10월 국정감사 자료를 벌써부터 가장 먼저 챙겨달라고 요구하는 의원실이 있다"며 "국회의원들부터 공직사회에 대한 배려 없이 특권을 누리려 하는데 관피아 척결이 제대로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국회 담당의 한 통신기업 관계자는 "국회의원 보좌관이나 사무처 직원들도 우리한테는 '갑'의 존재라 이들과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가 주된 업무"라며 "이들한테 밉보였다가는 입법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할 거라는 불안감이 늘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부채 규모가 400조원을 넘어선 공기업은 '무능'과 '부패의 온상'이라는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감사원이 올 초 공개한 2008~2013년까지 공기업 감사 결과 및 범죄.징계사실 통보 내역을 보면 한국전력공사, 한국동서발전,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공항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가스공사 등이 감사 적발건수 144~577건으로 상위를 차지했다. 이들 중 사법처리된 경우도 수두룩했다.
■'삼피아 척결' 집권자 의지가 가장 중요
전문가들은 관피아 척결과 국회 개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집권자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준환 인천대 정치학과 교수는 "공기업, 정부부처, 국회 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힘이 가장 센 집권 초기에 단행해야 효과가 크다"며 "집권 초기에는 국민들의 관심도 높기 때문에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내비친다면 관피아 척결을 위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박근혜정부의 '2기 내각'이 관피아 척결과 국회 개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젊은 수장들이 관료조직을 움직여 관피아를 끊어낼 리더십을 발휘할지는 지켜볼 일"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어 "관료사회는 보수적인 집단이기 때문에 조금의 변화에도 반발이 심해 개혁이 유야무야 된 적이 많다"며 "공직사회를 잘 알고 공직자에 대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게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덧붙였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직자 취업대상 기관 강화 등은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개혁을 이끌기가 쉽지 않지만 단호한 집권자의 의지가 있다면 가능한 일"이라며 "공직사회의 반발이 큰 '김영란법'부터 대통령이 강한 의지로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cgapc@fnnews.com 최갑천 박지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