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LG, 현지화로 쓴 ‘삼바경제 신화’
2014.06.23 16:56
수정 : 2014.06.23 16:56기사원문
인천에서 비행기로만 꼬박 26시간30분 걸리는 브라질.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해 브라질 상파울루 구아룰류스 국제공항까지 비행기 안에서만 네 끼를 해결했으니 멀고도 먼 여정이었다.
하늘길만 먼 게 아니다. 일반인들의 인식에서도 먼 곳 중 하나다.
【 상파울루(브라질)=윤정남 기자】 구아룰류스 국제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마친 뒤 기자를 제일 먼저 맞아준 것은 방탄차였다. 운전자는 "언제 강도가 총을 내밀지 모르니 절대 창문을 열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런 터라 방탄차를 처음 타 본 흥분은 점차 긴장감으로 바뀌었다. 특히 빨간신호등 때문에 교차로에 차가 멈춰 설 땐 누군가 다가설까 봐 주변을 두리번거리곤 했다. '진짜 여기가 남미 최대 경제 도시가 맞나' '이곳에 진출한 우리 기업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하는 생각이 계속 뇌리를 파고들었다.
브라질은 무장 강도 위험 때문에 국내 기업 주재원들은 대부분 방탄차를 이용한다고 한다. 브라질에서 사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도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은 대한민국 경제 신대륙을 넓히기 위해 뛰고 또 뛰고 있었다.
■'신의 땅 브라질' vs. '민망한 경제'
"신은 브라질 사람이다." 브라질을 묘사할 때 빠지지 않는 표현이다. 그만큼 많은 축복을 받은 나라란 의미다. 브라질은 한국의 80배에 달하는 영토를 가지고 있고, 인구 또한 2억명에 달한다. 커피, 설탕, 사탕수수, 오렌지, 콩 등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단연 1위다(생산량 기준). 최근 발견된 암염하층 원유(바다 밑 2000~3000m 암염.사암층에 있는 원유) 추정량은 최소 150억배럴에서 최대 2000억배럴에 이른다. 한국 경제 입장에서 보면 브라질 경제는 부러울 만큼 큰 내수시장과 노동력,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의 경제를 보면 이 나라의 미래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지난해 브라질의 경제성장률은 2.3%에 그쳤다.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올해 경제성장률은 1.7%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브라질과 같은 신흥국의 평균 성장률(2011년∼2014년)이 5.2%로 예상되는 것을 감안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치다.
인프라는 취약하기 그지없고 부실한 교육시스템 탓에 인건비는 턱없이 높다. 특히 방탄차로 대표되는 브라질 치안 문제는 곧 브라질 경제가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 같은 문제점은 사회 전반적인 비효율성을 높이는 '브라질 코스트'를 형성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박수창 차장은 "7000만원이 넘는 연봉을 내걸어도 제대로 된 중간관리자를 찾기가 어렵다. 설령 찾는다 해도 수틀리면 곧바로 퇴사한다"고 토로했다.
■'브라질=한국경제의 신대륙'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은 인구 2억명에 달하는 거대 시장이다. 내수시장 개방을 확대하고 있어 우리 기업들에 기회가 많은 곳이다. 브릭스 선두주자이기도 하다.
이미 현대차와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기업들은 브라질에서 리딩기업으로 자리매김해 '삼바경제'의 새로운 신화를 쓰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삼바경제'의 신화를 만든 핵심 키워드는 '현지화'였다.
현대차가 대표적이다. 현대차가 브라질 현지에서 생산하는 'HB20'은 브라질에서 생산되는 어떤 경쟁차도 따라올 수 없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HB20'은 현대차가 현지 전략형 모델로 개발한 차량으로, 경쟁차종에 비해 품질과 성능이 월등하다. 또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올해의 차' 등 지난해 브라질에서 자동차 관련 상을 휩쓸었다.
현대차의 브랜드 이미지는 브라질에서 만큼은 '현대차= BMW·아우디'라는 등식으로 통한다.
특히 현대차의 브라질 인기차종인 ix35 신형 투싼은 성공한 사람의 상징으로 통하고 있다. ix35는 세금 때문에 한국에서 팔리는 BMW 5시리즈와 맞먹는 8만~11만5000헤알(약 5600만~8000만원)에 달하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이용우 현대차 브라질 법인장(전무)은 "브라질 자동차 내수시장은 피아트와 폭스바겐, GM, 포드 등 4개 업체가 시장점유율 70%를 차지할 만큼 특정 브랜드에 편중돼 있지만 현대차의 등장으로 시장이 재편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현대차는 이미 르노를 제치고 시장점유율 5위에 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다양한 모델이 현지공장에서 생산되면 '톱3' 자리를 꿰차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덧붙였다.
국내 전자·정보기술(IT)업체들의 활약상도 눈부시다. 삼성전자의 휴대폰과 LG전자의 가전제품은 브라질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실제 브라질 주요 일간지 '폴라 지 상파울루'가 지난해 조사한 브랜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오모(세제 브랜드)와 코카콜라에 이어 소비자 인지도 3위에 올랐다.
특히 첨단기술 업체 부문에서 브라질 응답자의 20%가 삼성을 지목했으며 LG가 6%로 2위를 차지했다. 스마트폰 분야에서도 삼성이 25%, LG가 7%로 각각 1, 3위를 기록했으며 노트북, TV분야에서도 이들 기업이 각각 선두를 차지했다.
삼성과 LG는 브라질 디지털 사이니지 시장도 이끌고 있다.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는 커뮤니케이션 툴로 공항이나 호텔, 병원 등 공공장소에서 방송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대기번호나 진료실, 특정 정보를 함께 제공하는 디지털 영상장치다.
브라질 디지털 사이니지 시장은 월드컵, 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연이어 치르면서 전년 대비 50% 이상 성장하고 있다. 현재 LG는 브라질 디지털 사이니지 시장의 선두 기업으로 5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현대로템은 브라질 시장이 국내 철도산업계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국가라는 점에서 사업확장에 남다른 공을 들이고 있다.
현대로템은 브라질 살바도르 1호선 전동차 사업을 필두로 브라질에 진출한 이래 10년간 브라질 내 3대 주요도시, 4개 운영사로부터 총 630량을 수주했다. 금액도 브라질 철도시장 수주 1조원을 돌파했다.
특히 지난 11일 개통식을 가진 살바도르 1호선 전동차 프로젝트는 윌드컵 관람객을 수송하는 만큼 이 프로젝트 시작부터 완료되는 순간까지 국가적인 관심사였다.
yoon@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