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 간 협력·정부 지원 뒷받침돼야 글로벌 제약사 탄생”

      2014.06.23 17:10   수정 : 2014.06.23 17:10기사원문


글로벌 신약 연구개발 트렌드가 급변하고 있다. 최근 몇년간 산·학·연 협력모델인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 신약연구개발(R&D) 핵심 전략으로 자리매김했다면 요즘에는 여기에 정부 역할론이 핵심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산·학·연 협력 모델의 한계점에 다다르면서 제약 R&D 선순환을 위한 정부의 제도적, 재정적 지원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EU 집행위원회와 유럽제약산업연맹(EFPIA)에 의해 출범해 EU 내 산·학·연 네트워크와 오픈 이노베이션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IMI(혁신의약기구)는 새로운 신약 R&D 모델로서 주목받고 있다. 이에 파이낸셜뉴스는 최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개최한 제6회 서울국제신약포럼에 참석한 미셸 골드만 IMI 총재와 이동호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이하 KDDF) 단장과 글로벌, 특히 유럽 지역의 R&D 협력 모델에 대한 소개와 함께 한국형 신약 R&D 협력 모델 가능성과 대한민국 제약산업의 발전 방향을 논하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사회=권성철 파이낸셜뉴스 사장
―유럽 신약 R&D 협력 모델인 IMI 설립배경은.

▲미셸 골드만 총재(이하 골드만 총재)=EU(유럽연합)가 유럽 내 제약산업의 위기감을 감지했을 때, 유럽 제약사들도 큰 난관에 직면했다. 이에 정부와 제약사들이 유럽 내 제약산업에 활기를 불어넣고 취약한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함께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협력을 통해 힘을 합치기로 결정했다. IMI가 제약사 간 협력을 비롯해 제약사와 학계의 협력, 그리고 환자의 조직과 규제 기관이 함께 협력할 수 있도록 관계를 도모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약산업 시스템의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면에서 IMI는 공공분야와 민간분야의 파트너십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IMI 목표는 이 같은 협력관계를 통해 안전하고 효능있는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향후 10년간 30억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다. IMI는 지난 2009년부터 혁신과 보건 증진을 위한 공동연구프로젝트 투자와 유럽 내 산학 전문가들의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약 20억유로를 투자했고 향후 예산을 30억유로로 늘릴 예정이다.

―IMI와 제약사와의 협력방식은.

▲골드만 총재=먼저 학계와 규제기관이 내놓은 결과에 따라 제약사들이 사업적인 측면에서 어떤 신약이 혁신적일지 의논한다. 모든 제약사들이 각각의 논제에 참여할 필요는 없다. IMI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신약 개발에 대한 '저항'이다. 알다시피 항생제에 대한 저항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제약사 수는 다양하다. 현재 50가지 다른 프로젝트가 있는데 각 제약사들이 관심에 맞는 프로젝트를 찾으면 된다.

―제약사 혹은 컨소시엄에 자금을 지원하나.

▲골드만 총재=중요한 질문이다. 사노피, 로슈와 같은 글로벌 제약사들은 자금을 받지 않는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프로젝트에 대한 실물 투자를 한다. 예를 들어 사노피의 경우 해당 프로젝트를 자체 연구인력과 연구시설을 통해 연구하고 이를 통해 얻은 성과를 컨소시엄에 제공한다. 반면 중소규모의 제약사는 자금을 지원 받으면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IMI가 자금을 지원하는 이유는 이들이 글로벌 제약사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참여·협력하기 위해선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일 등에서 IMI모델을 벤치마킹하는데.

▲이동호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 단장(이하 이 단장)=일본은 정부가 제약산업을 많이 지배하는 구조다.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일본 학계 교수들의 힘이 매우 강력하다. 제약업계보다 학계의 사회적 위치가 높기 때문에 협력관계가 이뤄지기는 힘들다. 현재 한국의 상황은 유럽과 일본의 중간이다.

▲골드만 총재=미국의 경우와 비교하면 꽤 비슷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미국에서는 NIH(국립보건원)가 연구 주제를 정하고, 프로젝트에 관여하는 등 지배적인 위치다. 유럽에서는 제약산업 자체가 곧 '추진력'(Driving Force)이다. 유럽에서는 제약업계가 프로젝트 제안을 만들고 어떤 방향으로 연구가 이뤄질지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제약업계가 추진력을 가져야 하는 것은 업계 스스로 그들이 내린 결정을 실행에 옮겨야 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어떤 방식이 더 낫다고 말을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미국 제약업계와도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제약업체 스스로가 추진력을 갖는 것이 이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믿는다. 아마 이 같은 부분이 유럽이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과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경우는 어떻게 운용되는지 확실하지 않다.

―KDDF는 IMI와 비슷한 것 같다.

▲이 단장=KDDF는 지난 2011년 매칭을 포함해 10억달러 예산으로 시작된 기관이다. KDDF는 선정된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이를 연구하는 학계나 업계의 연구원들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점이 IMI와 다른 점이다. 선정된 프로젝트들은 상의하달 방식의 프로젝트는 아니다. NIH가 연구원들에게 보조금을 주듯이, KDDF에 연구원들이 자금 보조를 의뢰하면 KDDF는 선정 절차를 거쳐서 프로젝트를 선정해 자금을 지원하게 된다. 그래서 현재까지 200가지 이상의 프로젝트 리뷰와 50가지 이상의 선정 후보에 오른 프로젝트들을 보유하고 있다.

―KDDF의 자금 지원방식은 어떤가.

▲이 단장=KDDF의 경우 보조금 형식으로 자금을 지원하지만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아주 작은 규모로 자금을 회수한다. 이는 한국 정부의 R&D 정책에 따른 것이다.

▲골드만 총재=IMI는 보조금 형식이다.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지 않는다. 다만 IMI는 핵심성과를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파트너십의 가치를 따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투자한 것에 대한 대가를 가치로 따질 것인가? 투자를 하고 연구가 종료됐을 때 결과적으로 무언가 돌아와야 하는 것은 맞지만, 보건의료분야에서는 그렇게 따지기가 쉽지 않다. 질병을 고치는 일에 대해 숫자로 가치를 따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KDDF는 정부가 추진력을 갖고 있나.

▲이 단장=그렇다. EU의 슬로건은 '유럽연합, 다시 한번(EU, Once Again)'이다. 과거 유럽의 제약업계는 부유했으나, 세계2차대전 이후 이 같은 현상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이후 유럽연합은 제약업계와 보건분야를 비롯해 전 분야에 있어 '유럽연합, 다시 한번'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골드만 총재=방금 이 단장께서 언급한 것이 맞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자면, 그러나 우리의 임무는 글로벌을 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제약산업이 글로벌 위상을 높이려면.

▲골드만 총재=먼저 대학 간의 긴밀한 네트워크 형성이다. 둘째는 기업 유치다. 한국 내 가격 설정이나 시장에 대해 내가 아는 바는 없지만 이들을 조정하는 것이 기업이 어디에 투자할지를 결정하는 데 아주 주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건전한 R&D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튼튼한 중소업체와 바이오의 개발, 환자 참여, 규제당국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규제당국이 결국 신약을 인증·허가하는 곳이니) 등이 모두 진행돼야 한다. 얘기를 들어보니 한국엔 이러한 일을 성사시킬 글로벌 규모의 제약사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시간은 좀 걸리지만 가능성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내 제안이다. 그리고 한국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상태라고 느껴진다.

―벤처캐피털(VC) 등 제약업계 투자가 활발하지 않나.

▲이 단장=아시다시피 한국의 VC는 미국이나 유럽의 VC와는 많은 차이가 난다. 한국의 모든 VC 재원은 정부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투자할 때도 많은 제약이 따른다. 골드만 총재는 유럽 제약사들이 국제적인 레벨에서 활동한다고 강조했는데 한국정부의 경우는 오직 국내 시장만 고려하는 모습이다. 처음 KDDF가 출범할 때는 해외 투자자금을 유치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현재는 그런 기회가 없어진 상황이다. 한 몇 년이 지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현 R&D 생태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 단장= 시장, 규제, 가격 모두 정부 정책에 따라 결정된다. 이것도 바뀌려면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골드만 총재 =언론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 파이낸셜뉴스처럼 신약개발에 있어서 현재 무엇이 장벽이 되고 만약 개발이 성공한다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대중에게 설명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질병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또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한 것도 여기에 있다. 대중은 기업들이 왜 우리의 세금으로 R&D를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한다. 임상을 진행하면 대중은 임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이를 통해 신약이 출시되고 제약사들이 이윤을 창출한다는 사실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건강과 성장, 절대 설명하기 쉽지 않은 주제이다. 기업들은 설명을 잘하지 못한다. 학계를 관찰함에 있어서도 일반인들이 직접 논문을 접하고 시험과정을 지켜본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유럽의 경우 일반인들은 더 이상 업계나 학계를 믿지 않는다. 더욱더 설명의 필요성이 생겨나는 이유다. 처음에 파이낸셜뉴스로부터 신약포럼에 초청받아 굉장히 기뻤다. 앞으로도 이런 일에 있어서는 파이낸셜뉴스와 더욱 협력할 준비가 됐다.


■ 미셸 골드만 IMI총재는

유럽의 신약 연구개발(R&D)을 주도하는 혁신의약기구(IMI)의 수장인 미셸 골드만 총재는 유럽(EU) 지역 신약 R&D 네트워크를 총괄하고 있다. 2004년 EU 집행위원회와 유럽제약산업연맹(EFPIA)에 의해 출범한 IMI는 EU 내 산.학.연 네트워크와 오픈 이노베이션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또한 골드만 총재는 벨기에 브뤼셀 자유대학 의대 교수로서 면역과 관련된 질환 및 치료방법에 대해 400개 이상의 저널 발표 업적을 보유하고 있다. 2004년 벨기에의 바이오.의학 분야 첫 번째 공공.민간 협력 연구소를 창립했고 벨기에 왈로니아 지역의 산업계와 학교 연구소 간 네트워크 활성화를 위해 설립된 '바이오윈 헬스 클러스터' 초대 부사장을 역임한 바 있다.



■ 이동호 KDDF 단장은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이하 KDDF)의 수장인 이동호 단장은 정부 주도 글로벌 신약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KDDF는 산.학.연이 보유하고 있는 신약개발 역량을 유기적으로 연계·활용하기 위해 부처 간·사업 간 장벽을 제거한 연구개발(R&D)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2011년 탄생된 첫 정책모델이다.
또한 이 단장은 글락소 스미스클라인(GSK)과 삼양사 등 제약업체와 국가임상시험단 부단장을 역임하면서 제약산업 R&D에 큰 역할을 담당해왔다.

정리= hsk@fnnews.com 홍석근 김문희 기자 박나원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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