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이 팔리고 있다..꽉찬 객석 높아진 만족감
지난달 28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백스테이지. 창극 '변강쇠 점찍고 옹녀' 공연을 끝낸 뒤 배우, 스태프들은 흰색 돈봉투 100여통을 나눠가졌다. 객석이 매진에 성공한 날 출연진·제작진이 소액을 담은 봉투를 나눠 갖는 '만원 사례'에 따른 것이었다. 국립창극단팀은 마지막 공연이 치러지는 오는 6일 오후에도 돈봉투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며 즐거워하고 있다.
고전소설 '변강쇠전'을 토대로 한 판소리를 연출가 고선웅이 다시 비틀어 창극으로 만든 '변강쇠 점찍고 옹녀'는 사상 첫 '18금 창극'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공연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작품. 지난달 11일 시작해 장장 26일간 23회 예정된 무대의 전체 객석점유율은 대략 90%선일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창극 공연이 길어야 3∼4일이었던 이제까지 관행과 비교하면 이번 일정과 객석 판매량은 사상 초유다. 하지만 이 긴 대장정이 개막 첫날부터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웃음이 떠나질 않았던 연습실 풍경과 달리 실전 무대는 여기저기 삐걱대며 불안전했다. 고선웅 연출의 얼굴빛도 사색에 가까웠다. 하지만 둘째날부터 대대적인 손질을 거쳐 분량은 25분이나 줄었고 배우들은 순발력 있는 호흡조절로 무대 완성도를 갈수록 높였다. 관객은 공연 회차가 거듭될수록 불어나 또 한편의 인기 창극으로 작품은 이름을 올리며 대미를 장식하게 됐다. 국립창극단 이주연 책임PD는 "이런 시즌이 앞으로 두세 번만 더 계속되면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과 같은 위상으로 국립창극단이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몇 년 전만 해도 고리타분하게 여겨진 전통공연이 이제 극장 곳곳에서 예전과 다른 대접을 받는 것이 자주 목격된다. 국립극장이 전통에 새로운 해석으로 파격의 재미를 선사했다면, 국립국악원은 전통을 그야말로 전통답게 예우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국악원이 올해 처음 시도한 기획공연 7편의 평균 객석점유율은 90.5%인 것으로 자체 집계됐다. 이 중 안숙선 명창의 '토끼타령'은 3회 전석 매진됐고, 국수호·성창순·지순자 등 명인들 무대 역시 3회 전석 매진 기염을 토했다. 지난 3월 공연된 정악단의 '종묘제례악' 점유율이 96.6%였던 것도 놀랍다. 국악원 국악진흥과 이승재씨는 "공연에 대한 만족도 설문조사 결과 7점 만점에 6점 후반대로 나왔다. 국악에 대한 신뢰도가 쌓여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통의 대중화,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며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전통을 마케팅해온 정동극장 상설공연장은 이달 중순이면 누적관객 100만명을 돌파한다. 정동극장은 1997년 처음 문을 열어 무용, 기악, 풍물 등을 선보이다 지난 2009년부터 무용극 '춘향연가'를 올린 데 이어 올해 들어서는 '배비장전'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100만명 숫자는 280석 소극장에서 이뤄낸 기록이라는 점에서 남다르다. 17년간 5801회 공연을 올렸으니 회당 170여명 관객을 모은 셈이다. 점유율로 따지면 60%선. 정현욱 정동극장 극장장은 "한국적 전통을 충실히 볼 수 있는 무대 구성이 성공 요인이었다. 해외 관광시장에 대한 공격적인 마케팅도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정동극장은 이제 국내 관객 수요에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3년간 상설공연장 관객 비율은 내국인 15%, 외국인 85%였다. 이 극장에서 앞으로 특히 주목해볼 만한 건 어린이 대상 공연이다.
전래동화, 설화 등을 재창작해 전통 어린이 공연을 집중 공략한다. 극단 사다리 대표 출신인 정 극장장은 대학로에서 어린이 공연 기획통으로 유명했다. 정동극장은 내년 여름방학 시즌 개막을 위해 올 하반기부터 작품 개발을 시작한다.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