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호랑이 잡은 바람의 아들 양용은.. PGA의 ‘동양인 장벽’ 허물다
2014.07.06 16:54
수정 : 2014.07.06 16:54기사원문
2000년 이후 대한민국은 큰 변화를 겪어 왔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미국발 금융위기,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9·11테러, 가계 부실, 집값 하락, 내수경기 침체, 세월호 참사 등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다사다난했다. 이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도 명멸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창간 14주년을 맞이하여 창간 이후 21세기 대한민국을 움직였던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을 14회에 걸쳐 조명해본다.
"그 당시에는 그야말로 얼떨떨하기만 했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파악이 잘 안될 정도였다. 수많은 갤러리가 내 이름을 부르고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것이 너무도 빠르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너무나 느리게 지나갔다. 한마디로 어안이 벙벙했다. 모든 상황이 순식간에 벌어졌지만 그 기억은 5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다. 벅찬 감동으로 울컥 솟은 눈물을 수차례 참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2009년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해가 된 것은 당연하다. 동양인으로서는 최초이자 유일한 메이저대회 우승자인 '바람의 아들' 양용은(42·KB금융그룹)이다. 양용은은 그해 가을에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우뚝 섰다. 그것도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와의 맞대결에서 거둔 승리라 더욱 값졌다. 우승을 확정 지은 뒤 자신의 캐디백을 번쩍 들어 올리며 포효했던 그의 모습에 우리 모두는 환호했다. 세계 골프를 들어 올린 것과 같은 희열을 만끽했기 때문이다. 그런 양용은이 최근 극심한 슬럼프로 부진의 터널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어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현재 분위기대로라면 내년 PGA투어 잔류도 장담할 수 없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하지만 현재 부진을 단순히 나이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아직은 '글쎄'다. 그 스스로도 그것은 용납하지 않는 눈치다. 양용은은 "충분한 연습과 집중력을 높이면 부진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본다. 단순하게 생각해 공이 잘 맞고 퍼터가 잘 들어가면 자신감은 자연히 상승하리라 본다"고 말한다. 그에게 어렵게 e메일 인터뷰를 요청했다. '요즘 왜 그렇게 부진하냐'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돌직구성 질문이 불가피했지만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심경을 전해왔다. 다음은 양용은과의 일문일답.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골프는 언제,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나.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 소개로 골프 연습장에서 이른바 볼보이를 하면서 골프를 처음 접했다. 그러다가 1991년에 보충역으로 제대한 뒤 제주 오라CC 골프 연습장에서 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레슨을 받은 건 아니다. 선수들의 연습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면서 배웠다. 농사를 짓던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네가 무슨 골프냐'고 만류했으나 고집을 꺾지 않았다. 꿈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4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프로가 됐다. 그 이듬해에 한국프로골프(KPGA)코리안투어 신인왕을 수상했고 2002년에 SBS프로골프 최강전에서 프로 데뷔 첫승을 거뒀다. 그러다가 2003년에 일본프로골프(JGTO)투어 퀄리파잉스쿨에 수석합격하면서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PGA투어 진출, 그리고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대회 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다. 한마디로 '꿈'이 나를 그곳으로 이끈 것이다.
―만약 골프 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나는 1972년 제주도에서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야채 농사를 지었다. 아마도 골프를 몰랐더라면 지금쯤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농사꾼이 되지 않았을까. 미국에서도 길을 지나가다 농작물이 심어져 있는 밭을 보면 잎만 봐도 무슨 작물인지 단번에 알아본다. 그러면서 스스로 '천생 농부의 아들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는다.
―양용은에게 있어 골프는 무엇인가.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자 나를 더 크게 만들어준 통로, 그리고 나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2009년 PGA챔피언십 우승 당시로 돌아가보자. 기억을 더듬어 우승을 확정 지었을 때 심정은 어땠는가.
▲그 당시에는 얼떨떨하기만 했다. 무엇을 했는지도 잘 파악이 안 되고 사람들이 제 이름을 부르고 환호하는데 모든 것이 다 너무나도 빠르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느리게 지나갔다. 순식간에 모든 상황이 벌어졌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억은 또렷하다. 벅찬 감동으로 울컥 솟았던 눈물을 수차례 참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상대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였다. 우즈는 마지막 날 선두로 나섰을 때 좀처럼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우즈에게 두 차례나 패배를 안겼다. 그래서 '타이거 킬러'라는 닉네임까지 얻었다. 그 비결은 무엇이고 닉네임은 만족스러운가.
▲물론 별명은 마음에 든다. 현대 골프 최고의 선수를 꺾어 본 것도 기분이 좋은데 그러한 제 성공에서 따온 별명이라 더욱 그렇다. 솔직히 '타이거 킬러'라는 별명이 과연 가당할지 모르겠지만 전 세계 골프팬들 사이에서 그렇게 불려지고 그렇게 기억된다면 먼 훗날 '그래도 내가 그때 골프를 조금은 잘 쳤지'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그 이후 우즈를 사석에서 만난 적이 있는가. 있었다면 그와 관련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나.
▲매년 PGA챔피언십 수요일 저녁에 챔피언 만찬이 있는데 그때 매번 마주치게 된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서는 골프에 대한 얘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간단하게 시즌 스케줄 이야기를 하고 나면 아이들 이야기 등 주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저와 우즈가 사는 세계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대화의 공통분모는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
―PGA챔피언십 우승으로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 챔피언이 되었는데 그 이전과 이후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당연히 달라졌다. 꼭 동양인 메이저 챔피언이라서가 아니라 메이저 챔피언은 그래도 일반 대회 우승자와는 다른 대우를 한다. 특히 PGA투어에서는 아무리 현재 실력이 떨어져도 메이저 우승자에 대한 시각과 대하는 태도는 일반 선수와는 확연히 다르다. 일단 제 이름을 아는 선수들이나 갤러리가 모르는 사람들보다는 많다. 이처럼 어디를 가든 나를 아는 사람이 많다는 게 메이저대회 우승 이전과 비교했을 때 가장 바뀐 부분이 아닌가 싶다.
―반평생을 골프와 함께 살아온 인생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는가.
▲없다. 이렇게 좋은 직업과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준 매개체를 시작한 것을 후회한다면 내가 너무 욕심이 많거나 골프가 지겨워진 것 중 하나일 것이다.
―골프 선수 생활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을 때와 가장 아쉬웠던 때는.
▲요즘이 가장 힘들다. 극심한 슬럼프를 거의 2시즌째 겪고 있는데 좀처럼 개선되질 않아 연습량이 거의 4배가 됐다. 어제는 공을 1000개 정도 친 것 같다. 아쉬운 날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컷 미스 한 날, 공이 잘 안 맞는 날, 우승 조에서 시작했는데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날 등등. 그중 가장 아쉬웠던 때는 2011년 US오픈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자신에 대해 아쉬움보다는 내가 도저히 우승할 수 없었을 정도로 볼을 잘 친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에게 한계를 느꼈을 때, 그리고 같은 해 혼다 클래식 때 로리 사바티니(남아공)를 따라잡지 못하고 준우승에 그쳤을 때, 2010년 웨이스트 매니지먼트 피닉스 오픈에서 17번홀까지 선두를 달리다 드라이버 샷이 물에 빠져 우승을 놓쳤을 때 등이 아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PGA챔피언십 마지막 날 18번홀에서 하이브리드 클럽으로 친 두 번째샷이 미국의 골프다이제스트에 의해 1980년 이후 PGA투어에서 가장 멋진 하이브리드샷에 선정됐다. 하이브리드 클럽을 잘 다룰 수 있는 비결은.
▲많이 연습했기 때문에 잘 다루게 된다. 골프는 정직한 운동이라 연습량이 그대로 필드에서 나타난다. 나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골프를 늦게 시작해서 아이언 다루는 기술이 조금은 뒤처진다. 그러한 부분들을 하이브리드 클럽으로 충분히 보완하고 있다. 하이브리드가 원래 롱 아이언에서 나올 수 있는 실수들을 많이 보완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한 장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충분한 연습량이 필요하다. 그러면 누구나 '하이브리드 달인'이라는 칭호를 얻게 될 것이다. 단 '첫째 공은 약간 왼발 쪽에 두고, 둘째 자신감을 갖고 샷에 대한 믿음을 가진 뒤 가장 최상의 상황만 생각하라. 그리고 그립은 80%의 힘으로 부드럽게 잡고 펀치샷 하듯 샷을 한다'는 수칙을 염두에 두고 연습하는 게 중요하다.
―최근 몇 년간 극심한 부진이다. 많은 팬들이 이러다가는 내년 시즌 시드 유지도 힘든 것이 아니냐고 걱정한다. 부진 원인과 탈출 방법은 무엇인가.
▲지금으로서는 충분한 연습과 집중력을 높이는 방법뿐이라고 생각한다. 공이 잘 맞고 퍼터가 잘 들어가면 자신감은 자연히 상승하리라 생각한다.
―당연히 시드를 유지하겠지만 최악의 상황을 맞았을 때 대비책은 마련하고 있는가.
▲아직 유럽투어 시드는 많이 남아 있고 2부투어인 웹닷컴 플레이오프도 있기 때문에 나름 부담감은 적다. 물론 한 번에 PGA투어 카드를 유지하고 싶지만 설령 그것이 불가능하다 해도 방법은 아직 많다고 생각한다.
―국내 남자투어가 여자에 비해 크게 위축돼 있다. 그 원인과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
▲대회 수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좋은 선수들이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밀 수 있는 방법은 대회 출전밖에 없다. 현재 코리안투어의 대회 수는 투어라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적다. 물론 스폰서들의 관심도 중요하지만 스폰서들이 기쁘고도 부담 없이 대회를 후원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골프에 대한 저변 확대에 KPGA와 KGA가 앞장서고, 수익금을 대회와 선수 후원으로 환원하고, 스타 선수 출전 및 육성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한국의 높은 아마추어 골프 수준이 바로 프로 골프의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프로 골프의 질 향상과 접근성 개선이 아마추어 골프를 더욱 키우고 발전시키며 상생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스타 선수의 부재도 큰 원인일 수 있지만 스타 선수 양성을 위한 환경이 거의 불모지에 가까우니 유능한 선수들이 모두 일본,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에 반해 한국 여자 프로 선수들의 경우 일본이나 미국 투어 선수들 못지않은 인기와 환경 속에 세계적인 수준의 플레이를 펼치고 남부럽지 않은 투어를 꾸려가고 있다.
―많은 후배들이 양 프로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 그런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항상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았으면 한다. 실력은 연습량에 비례하는 공식이 골프에서는 정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투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항상 꿈과 희망을 잃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꿈이 있어야 골프가 재미있고 희망이 있어야 내일 아침에도 드라이빙 레인지에 갔을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전폭적 성원과 애정 어린 관심을 보내준 팬들에게도 한마디 한다면.
▲오랫동안 응원해주시고 제 성공을 기원하시고 제 승리를 함께 기뻐해 주신 팬들에게 감사드린다. 아울러 최근 부진한 모습으로 실망을 드려 죄송스러운 마음 금할 길 없다. 염치없지만 그런 저에게 어느 때보다 지금 팬들의 성원과 지지가 필요하다. 현재의 이 위기를 극복하고 더 멋진 모습으로 찾아 뵐 수 있도록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