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종해 한국고등과학원장 “ICM, 수학인만이 아닌 5000만 국민의 축제 되길”
2014.07.20 17:28
수정 : 2014.10.25 01:14기사원문
"이번 세계수학자대회(ICM) 개최는 우리 한국 수학이 눈물겨운 노력으로 이룬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이자 세계 일류 기초과학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세계 최초로 유한대칭군 분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나라 수학 발전에 큰 획을 그은 금종해 한국고등과학원장의 일성이다. 최근 금 원장은 오는 8월 13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ICM 개최 준비와 기관운영으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지만 후배들 걱정이 더 크다.
지난 2007년 과학기술훈장을 수상하며 국가석학으로 지정된 금 원장의 좌우명은 '진인사 대천명.' 노력을 다한 후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지난해 10월 취임한 이후 매순간 기관운영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ICM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많은 수학자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금 원장은 "젊고 유능한 후배들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는 것 같다"고 미안함을 전했다. 특히 그는 "우리나라 경제가 압축 성장함에 따라 수학 역시 학문적 압축 성장기를 거쳤다"며 "국가적·국민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현 상태의 유지도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 5000명 수학인의 축제가 오는 8월 서울에서 열리지만 500명의 수학영재들이 실력을 겨뤘던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보다 국민적 관심을 끌어내지 못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2000년 IMO를 첫 개최했을 때에 비하면 기업들의 기부활동도 많이 위축됐다. 지속적인 불황 탓에 굴지의 기업들도 사정이 여의치 않은 탓이다.
그는 최근 대기업의 이공계 학생 채용을 늘리고 입시생들이 수학과에 입학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일단 긍정했다. "내로라하는 대표 대학들에서 수학과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며 "졸업생들이 수학을 응용해 산업계에 직접적으로 진출하는 기회를 갖게 되면서 이상적인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전국적인 현상은 아니다"라며 "지방에 있는 작은 대학의 수학과들은 취업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폐지 위기에 있다"고 염려했다.
"이과 학생들에게는 인문학적 소양을, 문과 학생들에게 과학적 소양을 키우는 교육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금 원장을 18일 서울 청량리 한국고등과학원 집무실에서 만나 기초과학의 현안과 발전방안에 대한 혜안을 들어보았다.
―고등과학원의 라이벌이 있다면.
▲고등과학원이 세계 최고연구기관이 되고자 하는 목표는 설립 당시부터 일관된다. 고등과학원은 미국 프린스턴고등연구원(IAS)을 벤치마킹한 기관이다. 프랑스 고등연구소 등 미국·캐나다에 위치한 고등학문연구소 등도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대등한 관계는 아니지만 현재 고등과학원은 이들을 80% 정도 따라잡았다고 생각한다. 해외 기관들은 막대한 기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필요한 예산을 적재적소에 사용한다. 반면 우리는 정부출연금으로 운영되고 있어 운영에 제한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좀 더 예산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세계기관으로 도약할 준비가 됐다면 정부도 과감하게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IAS는 연구에 필요하다면 필요한 대로 예산집행이 자유롭다.
―원장 취임 10개월을 되돌아본다면.
▲지난 5년간 부원장을 지내면서 행정과 연구를 병행했다. 원장에 취임해보니 부원장과 또 다른 책임이 생겼다. 취임사 때 밝혔지만 우리 기관은 기초과학을 선도하는 연구기관이다. 그래서 학자로서의 끈을 놓지 않고 연구를 지속할 계획이다. '연구원 원장이기 때문에 원장도 당연히 연구를 한다'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 기관이 운용되기 위해서는 연구공간·연구진·예산이 필요하다. 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년까지 연구공간을 보다 많이 확보할 예정이며 필즈상·노벨상 수상자와 같은 세계적인 석학 한두 분을 석좌교수로 유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자산인 연구원들을 위해 처우를 개선하고 더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원장으로서 최대한 지원하고 싶다. 현재 연구원들은 약 30%가 외국인이고 20%가 여성이다. 유능한 여성연구원 확보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과학기술계에서 창조적 인재를 육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창조적 인재는 한마디로 학문적인 체제에 수용하지 않는 사람이다. 어떤 새로운 문제가 닥쳤을 때 해결에 성공할 확률이 1~2%에 불과하더라도 성공에 초점을 맞추고 계속 해결방법을 찾고 모색하는 사람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나' '좀 더 다른 것은 없나' 이런 것을 꾸준히 추구하는 사람일 것이다. 대부분 그런 생각은 무지와 착각에서 나온다. 아마도 실패를 거듭하며 깨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면 실력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르쳐주고 큰 그림을 그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젊은 세대에 대해 걱정스러운 것이 이 점이다. 취업을 위해 스펙에 열중하고 논문 내기에 급급해지면 결국 할 수 있는 것만 하게 된다. 연구는 신체적으로 힘이 왕성할 때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마흔이 되기 전이 그런 시기라고 생각하는데, 이때는 연구자들이 야심을 갖고 학문의 시야를 넓게 가져야 한다. 이공계 학생은 과학적 소양을 먼저 갖추고 인문학적 지식도 갖춰야 한다. 배워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업의 이공계 출신 등용으로 수학과의 인기가 높아진 것 같은데.
▲이공계 기피 현상은 여전히 문제다. 물리·화학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수학이 상대적으로 올라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수학을 전공해 금융계로 진출하는 데 성공한 학생들이 나타나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미국 주립대학인 미시간이나 버클리에는 수학과 교수가 100명이나 있다. 일본 도쿄대도 70명의 교수가 10여명의 대학원생을 가르친다. 그만큼 수업부담이 적고 연구 시간이 많다. 기초학문에서는 교수 비중이 높아야 연구역량이 생기고 새로운 이론 아이디어가 나타난다. 기초과학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인적 인프라가 약하다. 카이스트나 포스텍, 서울대학교의 수학과 교수는 30~40명 수준에 불과하다. 교수진이 연구보다 강의만 겨우 하는 정도의 시간만 주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박사 학위 취득 후 5년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전무한 것도 문제다. 학부 때 장학금을 받고 졸업은 했는데 박사 후 연구원이 되면 신분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학생이 아닌 취업인구로 분류돼 장학금이 끊기면 경제적으로 가장 위축된 시기를 맞게 된다. 세계적인 과학자를 키우고 싶다면 최소 3년을 최고 수준의 연봉과 연구비를 제공해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자유롭게 연구와 강의를 병행하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고등과학원에 그런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
―수학에 특화된 고등과학원의 연구발전 전략은.
▲연구과목을 늘리기보다는 연구 분야의 확충과 향상에 초점을 두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화학·생물도 고등과학원 연구 분야에 포함하려고 했으나 이론분야 설정이 쉽지 않았다. 계산과학부를 둬 화학·생물을 아우르고 있다. 계산과학부는 컴퓨터를 많이 쓰는 이론과학인데 급성장했으면 좋겠지만 우수한 인력 채용이 어렵다. 대부분 우수 연구자들은 대학에 있고 싶어 한다. 고등과학원은 최근 두 분의 석학을 모셨고 계산과학부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수학부의 경우 석좌교수 유치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학자들을 한두 분 정도 유치할 예정이며 전 세계에서 우수한 연구원들을 모집하고 있다.
―융합연구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고등과학원 연구방향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
▲현재까지는 내부에 여러 구성원들이 자기가 이룬 것에 대한 입지를 확보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지금까지 축정된 역량으로 봐서는 융합연구가 가능해지는 시점이다. 그런 차원에서 수학난제연구센터, 양자우주연구센터, 거대수치계산연구센터 등에서는 고등과학원의 연구진과 다른 분야를 전공한 교수들이 협력연구를 하고 있다. 각 분야의 학문에 내공이 쌓여 임계점이 넘으면 상호교류가 이뤄지고 그때마다 플랫폼이 돼줄 센터들이 설립되고 있다. 다른 분야 전문가의 관점을 빌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산업계가 물리·수학자를 찾아와 종종 연구성과를 낸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우리는 문제를 모르고 그들은 답을 모른다'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에 수학자 수도 적었지만 그때 교류가 없었던 것이 지금도 이어지는 것 같다. 학문적 역량이 커졌으니 융합의 적기이다. 수학자들 입장에서는 초기에는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것대로 자극이 될 것이다. 하찮은 질문을 통해서 미처 생각 못했던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한국고등과학원은
한국고등과학원은 순수과학을 추구하는 연구소이자 수학·과학분야 영재교육 기관을 표방하며 1996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부설로 설립됐다.
미국 프린스턴에 있는 프린스턴고등연구소(IAS)를 모델로 연구원들이 잡무에 시달리지 않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연구환경 조성이 설립 목표였다.
현재 물리학부, 수학부, 계산과학부의 세 학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학부의 예핌 젤마노프와 물리학부의 레너드 서스킨드가 석학교수로 재직하며 공동·개별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박사 후 과정 연계기관으로 자체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박사 후 과정의 연구원들을 최대 4년간 고등과학원에 머물게 하면서 세계 수학계를 선도할 수 있는 독립된 학자로 도약할 수 있는 트레이닝을 해준다.
지난해 11월에는 국내 최초로 수학난제연구센터(CMC)를 설립했다.
미국 클레이수학연구소가 선정한 세계 7대 수학난제 가운데 지난 2006년 해결된 '푸앵카레 추측'을 제외한 나머지 6개 난제를 비롯, 수학의 미해결 고유 난제와 전략 난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수학난제연구센터는 장기간의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한 수학 난제들을 연구할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울러 현존하는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히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물리학자 사상 최초로 수학계 상인 필즈 메달 수상자 등 세계적인 석학들을 초대해 대중강연도 개최하고 있다.
Open KIAS를 운영하며 대중의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 증대와 기초과학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bbrex@fnnews.com 김혜민 기자
■금종해 원장 약력 △57세 △서울대 △서울대 대학원 석사 △미국 미시간대 박사 △미국 유타대 수학과 조교수 △건국대 사범대 수학과 학과장 △영국 워릭대 영국학술원 펠로 △고등과학원 교수(현) △미국 프린스턴대 초빙교수 △대한수학회 부회장 △고등과학원 부원장 △포스텍 이사 △제6대 고등과학원장(현)
■수상 △2007년 과학기술부 과학기술훈장 진보장 △2008년 한국과학재단 한국과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