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회장 '열려라 참깨' 주문 통했다

      2014.09.22 17:38   수정 : 2014.09.22 17:38기사원문

'거물(巨物)은 거물을 한눈에 알아본 것인가.'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뉴욕 증시에 상장한 알리바바에 투자해 올린 수익률은 3700배(19일 기준)이다. 2000년 마윈 알리바바 회장을 만난 손 회장이 6분 만에 2000만달러를 베팅한 결과다. 한 해 전인 1999년 마 회장이 창업자금에 쓴 종잣돈(8만달러)의 25배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21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 등 주요 외신들은 손 회장이 경영하는 소프트뱅크가 알리바바의 미국 증시 상장으로 5000억엔(약 4조8000억원)의 수익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수익은 알리바바 상장주식 가치 상승 및 신주 발행, 보통주 전환 등을 반영한 액수다.


소프트뱅크의 알리바바 지분율은 32.4%. 현재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알리바바 주식 가치는 747억달러(약 78조원)다. 알리바바의 최대주주인 손 회장은 최근 경제전문방송 CNBC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보유 중인 알리바바 주식을 매각할 계획은 없다. 소프트뱅크는 알리바바를 핵심 보유자산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했다.

손 회장만큼은 안되지만 마 회장도 알리바바 상장 첫날인 지난 19일 현금 8억6700만달러(약 9025억원)를 손에 쥐었다. 자신이 보유한 지분 0.9%를 매각한 것. 이날 알리바바는 공모가(68달러)보다 38.1% 급등한 93.89달러에 마감했다. 시가총액 2314억4000만달러로 구글(4031억8000만달러)에 이어 두 번째다.

'알리바바의 마법'에서 진짜 승자는 누구일까. 단연 주인공은 가난한 영어교사에서 알리바바를 키워낸 최고경영자(CEO)인 마윈이다. 그러나 미래를 내다보고 마윈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손정의가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가와사키 도모아키 이와이코스모홀딩스의 애널리스트는 "손 회장은 씨를 심고 자랄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알리바바가 가장 좋은 예"라고 했다.

1999년 알리바바를 창업했지만 마 회장은 돈이 없었다. 설립등기를 마친 직후인 이듬해 마윈은 제리 양 야후 설립자의 소개로 손 회장을 찾아갔다. 마윈은 손 회장의 투자를 끌어내는 게 절실했다. 마윈은 손 회장에게 "인터넷이 분명 세상을 바꿀 것"이라며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강조했다. 당시는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정보기술(IT) 버블이 꺼지면서 IT시장의 불확실성이 컸던 때였다. 당시 손 회장도 손을 댄 여러 사업에서 실패를 맛봤다. 소프트뱅크 주가가 급락해 자금사정도 넉넉지 않았다. 하지만 손 회장의 투자본능은 살아있었다. 손 회장은 마윈을 만난 지 6분 만에 2000만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투자결정"이라고 했다. 손 회장은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마윈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물 밖의 물고기 같았다"고 했다.

손 회장의 '신의 한수'는 한 가난한 청년 사업가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마윈에게 천군만마가 됐다. '손정의의 후광' 덕에 마윈은 더 많은 자금을 유치하고 사업을 키워나갔다. 손 회장은 7세 아래인 마윈에게 "힘들더라도 잘 버티고 있으라"며 마 회장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줬다. 알리바바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비판하는 미국 언론들의 지적에도 "중국의 법규 제약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마 회장을 옹호했다.

하지만 알리바바의 상장 이후 두 '거물'의 사이가 과거와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손 회장은 "마 회장의 경영능력을 믿고 회사가 성장하는 것이 좋다"며 회사 운영에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 회장은 '주주보다 경영진, 종업원의 권한이 우선한다'는 경영철학을 강조한다.
회사 경영진이 이사회를 통제하면서 이사진 임명 등 주주들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구조다. 또 알리바바는 마 회장이 소유한 알리바바그룹홀딩이 실제로 지배하고 있다.
이 회사가 알리바바의 이익도 가져간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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