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7년 로봇역사, 인간의 새로운 동반자를 낳다

      2014.10.05 16:25   수정 : 2014.10.05 16:25기사원문

"지금 진심으로 웃고 있는 건가요? 두 눈은 웃지 않는 것 같네요."

지난 6월 5일 일본 소프트뱅크사가 선보인 감정인식 로봇 페퍼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대화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처음에는 기계 모습의 로봇 형상을 하고 있지만,

기술발달 과정을 거쳐 외모뿐 아니라 감정까지 사람처럼 닮아가는 SF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의 '바이센티니얼맨'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전문가들은 가까운 미래에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매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10년 후 로봇시장 규모는 최대 4조5000억달러로 확대된다.

이런 잠재력을 파악한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의 투자도 크게 늘고 있다.
구글은 지난해에만 10개의 로봇기업을 인수했으며 인텔은 조립형 로봇 '지미'를 선보이며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 외에도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로봇시장 선점을 위한 육성정책을 집중적으로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정부와 대기업 및 전문업체들까지 가세해 로봇산업을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짧지만 인상 깊은 37년 로봇역사

우리나라에 로봇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대 말이다. 1958년 미국의 컨솔리티드 컨트롤즈사가 디지털로 제어되는 자동설비의 기본형을 발표한 것을 산업용 로봇의 시작으로 본다면 미국보다 10년 정도 늦은 셈이다. 그러나 1980년대를 전후해서 자동차.전자산업이 급성장하면서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해 1986년부터는 국산 산업용 로봇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당시 로봇업체로는 현대로보트산업, 금성산전 등이 있었다.

이후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대우중공업, LG산전, 기아정공 등 대기업이 제조용 로봇 사업에서 철수했다. 제조업용 로봇 분야에 대한 정부지원 및 연구개발도 거의 중단됐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란 말처럼 IT산업의 급신장에 따라 단순한 제조용에서 지능형 로봇으로 패러다임이 변화됐다. 노키아의 몰락을 계기로 노키아키즈가 핀란드 벤처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것처럼 이후 2001년까지 동부로봇, 로보스타를 비롯한 120여개의 로봇기업이 설립됐다.

2001년 당시 산업자원부가 수립한 '퍼스널로봇 기반기술 개발'을 시작으로 정부는 지능형 로봇 시대를 맞아 산업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2005년 12월에는 산자부에 로봇팀이 발족되면서 연구개발(R&D), 수요창출, 기반조성 등 로봇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으며 2007년 11월에는 과기부와 산자부, 정통부, 기획예산처 등이 정부의 로봇특별법 제정에 합의하면서 정부 정책이 한층 강화됐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부는 총 4865억원(R&D 4022억원, 수요창출 95억원, 기반조성 748억원)의 정부출연금을 투자했다.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법 제정과 더불어 2009년에 수립된 제1차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은 법제도와 기관 등 기본적인 인프라를 조성하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미국을 기준으로 2009년 2.5년의 기술격차가 존재했던 국내 로봇기술은 1차 기본계획이 마무리되는 2013년에는 1.8년으로 단축됐다.

특히 청소로봇에 대한 인증이 체계화되면서 로봇업체들에 대한 매출 증대와 수출 증가가 실현됐다. 정부는 2009년 지능형 로봇의 품질인증 요령을 마련함과 동시에 청소로봇에는 별도의 품질인증 기준과 인증기관을 지정하면서 청소로봇의 매출 및 수출 확대를 적극 지원했다. 그 결과 당시 247억원이었던 청소로봇의 생산액은 2012년에 1900억원으로 총 7.7배의 증가를 기록했으며, 같은 기간 수출액 역시 29억원에서 1088억원으로 37.5배 늘어났다.



■기술수준 4위… 선진국과 간극 커

그러나 일부 제조용 로봇과 청소용 로봇을 제외하면 대다수 로봇제품의 글로벌 활약은 미미하다. 기술수준의 경우 로봇 종합기술경쟁력은 미국, 유럽, 일본에 이어 4위 수준이며 선진국 대비 기술격차는 평균 1.8년이다.

정밀조립, 고속이송, 인간과의 공존작업 등에 필요한 제조용 로봇 기술 중 지능 분야에서의 기술격차는 2.1년이다. 단순반복형 로봇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 조사한 2013년 산업기술수준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로봇 기술 수준을 100으로 환산했을 때 한국은 81.1에 머물고 있다. 일본은 96.9, 유럽은 93.2이다.

상위그룹인 미국, 일본, 유럽 국가들 간의 수준차는 크지 않은 반면, 한국과 중국(68.4)은 이들 상위그룹과 격차가 벌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로봇 핵심부품 국산화율은 2012년 기준 제조용 15%, 서비스용 30%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허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특허등록건수는 미국과 큰 차이가 없지만 미국인용지수로 대표되는 질적 경쟁력에서는 떨어진다. 한국지식재산전략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로봇기술 관련 미국 특허 등록건수는 4925건이다. 미국의 5514건과 비교해 양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지만 미국 인용지수로 대표되는 질적경쟁력은 미국이 1.39이고 한국이 0.22에 불과하다.

청소로봇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비스로봇은 내수용으로 개발돼 해외 현지화 전략도 미흡한 편이다. 정부가 해외시장을 겨냥했던 덴마크 노인요양소 치매 예방 로봇, 뉴질랜드 실버타운 의료서비스 로봇 등 4개 과제에는 52억원이 투입됐으나 수출효과는 8억7000만원에 그쳤다. 또한 로봇제품 원가의 절반인 46%를 차지하는 로봇부품 상당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제품 가격 등 기업 경쟁력 확보에도 곤란을 겪고 있다.

■세계 각국 로봇 육성정책 치열

월드로보틱스에 따르면 세계 로봇시장은 연평균 14%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일찌감치 로봇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미국은 인간의 능력을 증대시키는 기술, 일본은 기존 제조업 외에 서비스로봇, 유럽은 실버.복지로봇에 초점을 맞춰 개발 중이다. 제조용 로봇 중심으로 이미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일본은 네트워크로봇, 생활지원로봇 중심으로 서비스로봇 플랫폼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아울러 세계 각국은 자국의 제조업 부흥을 위한 제조로봇 활용정책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미국은 제조업 부흥책의 일환으로 '첨단제조파트너십'을 발표하고, 지난해 로봇.혁신적 제조공정 등 첨단제조기술 연구개발(R&D)에 22억달러를 투자키로 했다. 독일은 중소제조업 활성화를 위한 '인간-로봇 공동작업체계'를 개발했고 일본은 '일본 재흥전략'에 따라 2020년까지 제조 분야는 현재의 2배(6000억엔에서 1조2000억엔), 서비스 등 비제조 분야는 현재의 20배(600억엔에서 1조2000억엔)까지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글로벌 기업 로봇 투자 잰걸음

로봇의 잠재적 사업성을 인지한 글로벌 IT기업들도 로봇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구글은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비롯해 지난 1년간 10여개의 로봇업체를 인수했고 아마존은 로봇을 활용한 무인택배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매주 200만대의 아이폰을 생산하는 중국의 팍스콘 공장에는 100만대의 로봇팔을 도입, 세계 최대의 로봇 생산기지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인텔은 지난달 열린 인텔 개발자 포럼에서 3차원(3D) 프린터를 이용해 일반 고객이 직접 조립할 수 있는 로봇 지미를 선보였다. 일본의 소프트뱅크 페퍼는 내년 여름 미국 진출을 앞두고 있다.

글로벌 IT기업이 이처럼 경쟁적으로 로봇산업에 뛰어드는 데는 플랫폼 선점이라는 측면이 크다.

인텔의 지미 로봇키트를 구성하는 핵심부품인 인텔에디슨프로세서, 모터 등은 인텔 제품이다. 오픈소스와 쉬운 설계로 개인용 로봇 지미가 보급된다면 PC시장과 마찬가지로 로봇시장을 쉽게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가 적자를 감수하고서도 페퍼의 가격을 200만원으로 설정한 것도 이 같은 전략에 따른 것이다. 페퍼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감정을 학습한다. 소프트뱅크는 하드웨어로 적자를 보더라도 보급이 확산돼 클라우드 기능을 이용하는 소비자를 확보하는 것이 통신시장을 선점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KT경제경영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는 "스마트폰 시대를 통해 엿볼 수 있듯 기기에서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전방위적인 글로벌 역량을 갖추지 않으면 시장 선점이 어려울 것"이라며 "구글은 자신의 플랫폼과 연동되는 로봇 운영체제(OS)를 내세워 구글플레이 앱 판매 수수료와 광고수익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LG·현대, 로봇사업 확대

우리나라도 범부처 차원에서 로봇 보급사업을 펼치는 등 미래성장산업인 로봇산업 육성에 서서히 나서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지능형 로봇 산업과 산업부의 국민안전.건강로봇 사업이 추진 중이며 2015년도 정부 예산안 가운데 로봇부문(산업부 기계로봇과 기준) 예산이 지난해보다 5.4%(80억2300만원) 증가한 1557억8500만원이 배정됐다. 산업부는 올해 7월 수립된 2차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에 따라 재난대응로봇과 로봇헬스타운 등 앞으로 높은 성장이 전망되는 전문서비스용 로봇 분야를 육성하고 로봇과 다른 산업 간 융복합을 위한 로드맵을 세웠다.

이에 대형 테마과제 R&D와 우수 R&D 성과 보급으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칠 뿐 아니라 맞춤형 수출지원 강화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방침이다. 2018년까지 국내 로봇시장을 7조원으로 키우고 로봇기업 수를 402개에서 60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국내 대기업들도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구글과 '10년 특허동맹'을 맺고 구글의 로봇 관련 특허 사용 기반을 마련했다. LG전자는 구글과 차세대 자동차 분야 협력에 따라 구글은 무인운행 소프트웨어, LG전자는 자동차 전장 부품 등의 하드웨어 기술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연 3000억원이라는 국내 최대 로봇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향후 의료로봇 분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bbrex@fnnews.com 김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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