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국민의 비상벨, 울리면 반드시 출동합니다

      2014.10.29 13:54   수정 : 2014.10.29 22:27기사원문


'112' 어린아이부터 팔순이 넘은 어르신들까지 우리 국민 모두가 외우고 있는 국번 없는 세자리 전화번호다. 언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험난한 세상에서 머릿속 한 쪽에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진다. 그래서 112는 '국민의 비상벨'로 불린다.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대기 모드다. 112신고가 상대적으로 많은 금요일인 지난 24일 경기 부천원미경찰서 112종합상황실을 찾았다. 부천원미서는 전국에서 112신고가 가장 많이 들어오는 경찰서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한 해 동안 무려 9만5666건(하루 평균 354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올해는 9월 말 현재 10만1708건으로 하루 평균 367건을 기록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금요일(1만5180건)과 토요일(1만7427건)에 30% 이상 집중되고 있다. 올해 여름에는 하루 600건까지 신고가 늘어났지만 요즘은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상당폭 줄어 340건 안팎으로 내려왔단다. 장대균 112상황실장은 "범죄와 관련 없는 단순 불편 해소를 위한 '코드3' 신고가 많다"면서도 "부천원미서는 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 등 5대 범죄 발생률이 전국 최상위권에 속하기 때문에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룻밤 신고 접수 300건 넘어

상황실 문을 여는 순간 적잖이 당황했다. TV에서 보던 112상황실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형 화면에 현재 상황을 알리는 관내 지도가 표출되는 '근사한' 상황실은 온데 간데 없다. 책상 몇 개와 그 위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 무전기가 전부였다. 장 실장은 "112신고시스템이 워낙 잘 돼 있어 컴퓨터와 무전기만 있으면 충분하다"며 "다른 경찰서에 비해 사무실 자체는 볼품 없어 보일지 몰라도 '일은 어느 경찰서 못지 않게 잘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부천원미서 112상황실은 3교대로 돌아간다. 오후 6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8시30분까지가 야근조의 근무시간이다. 이날 야간근무는 최동열 팀장(45)과 조정희 경위(44), 김동호 경사(43), 안기준 경사(42), 이건식 경사(40)가 함께 일하는 상황3팀이 맡았다.

근무를 시작한 지 20여분이 지난 오후 6시52분 '한 남자가 여자를 강제로 차에 태우는 걸 봤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최 팀장은 즉시 역대파출소 순찰차 2대와 강력7팀에 출동지시를 내렸다. 안 경사가 차적을 조회하는 사이 최 팀장은 인근 오정서에 공조를 요청했다. 6분이 지난 오후 6시58분 이 경사는 폐쇄회로TV(CCTV) 관제센터에 차량번호를 통보하고 당직형사들에게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사건내용을 알렸다.

오후 7시가 되자 강력2·3팀이 추가로 현장에 투입됐다. 10분 뒤 오정서로부터 "차적조회로 나온 주소지에 가보니 아무도 없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오후 7시15분 안 경사가 차량소유자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이동통신사에 통신수사를 의뢰했다. 20분이 지난 후 통신사에서는 "차량소유주와 동거인 3명이 일본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전해왔다. 최 팀장은 곧바로 일본에 있는 차량소유주에 전화를 걸었고 "해당 차량은 공장에서 쓴다"는 답변을 받았다.

오후 7시50분 공장 관계자로부터 차량을 누가 운행했는지 확인했다. 즉시 운전자는 "애인과 다투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최 팀장은 "해당 여성이 안전한지를 확인해야 한다"며 순찰차에 다시 지시를 했고 오후 8시30분 이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면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이 경사는 "별 일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흔히 말하는 '만의 하나'가 중요하다"며 "어느 사건도 '만의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 속으로는 '별거 아니겠지' 하면서도 마치 살인사건을 다루는 것처럼 철저히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곁에 있던 최 팀장은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짧은 시간 내에 조치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신고를 받는 순간 머릿속에 길을 하나하나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들은 부천의 골목골목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고 있다. 관할 지구대·파출소 근무를 수년씩 경험한 베테랑들이다. 최 팀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근에 거주하고 있었다. 최 팀장은 부천원미서에서만 15년을 근무하며 여러 지구대를 거쳤다. 막내 이 경사도 지난 2007년 부천원미서로 옮겨와 6년가량 계남파출소와 중동·중앙지구대 등에서 일했다.

'알 만큼 아는' 이들이지만 그 자리에 멈춰서는 법이 없다. 상황실 근무자 모두가 한 달에 최소한 서너 번은 '길찾기 학습'을 한다. 중요 사건이 발생한 경우 팀 전체가 가서 현장을 답사하고 범죄수법에 따라 범인의 도주로 등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다. 추후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위치추적 따라 여관 200개 뒤져

새벽 1시가 훌쩍 지났지만 112신고는 끊이지 않았다. 전날 오후 6시 이후 접수된 신고건수가 이미 300건에 육박했다. 새벽 1시35분, 이번에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담임선생에게 '자살하겠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5분 후 해당 학생의 휴대폰을 조회, 정확한 위치를 알아낸 후 1시44분에 학생을 발견했다.

이 경사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를 켜놓은 것은 사실 '날 찾아달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위치추적을 했음에도 정확한 위치가 나오지 않으면 찾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한 번은 새벽 1시쯤 여자의 다급한 비명이 들리고 휴대폰은 끊겼어요. 위치추적을 했는데 하필이면 부천역 인근이었습니다. 숙박업소가 무려 200개 가까이 몰려 있거든요. 객실 하나하나를 확인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고 있는데 문 두드리고 수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1시간여 동안 뒤져서 겨우 신고자를 찾아냈더니 남자친구와 말다툼하다가 벌어진 해프닝이랍니다. 요즘은 특히 자살사건이 많아 안타까워요. 자살 직전 가족이나 지인에게 문자를 보내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 바람에 생명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상황3팀은 대다수가 2012년 4월 112상황실이 탄생하는 순간부터 함께 손발을 맞춰온 사이다. 눈빛만 봐도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최 팀장과 팀원들은 "현장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 팀장은 "혼자 판단하는 것보다는 둘, 셋이 머리를 모아서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이 더 잘 알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112상황실은 지난 13∼19일 지역경찰과 교류 현장체험을 실시했다. 매일 밤 8시부터 10시까지 112상황실 경찰들이 112신고에 출동, 사건을 처리하고 지역경찰들은 112상황실에서 신고접수와 지령을 내리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를 통해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허위신고는 현장에 출동하는 지구대·파출소의 경찰관뿐만 아니라 112상황실 근무자의 힘을 '쭉' 빼놓는다. 부천원미서는 올해 들어 16건의 허위신고를 처벌했다. 15건은 경범죄처벌법에 따른 벌금을, 1건은 42만원짜리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장 실장은 "소송 건은 50대 남성이 '아이를 죽였다'고 신고한 내용"이라며 "당시 순찰차 4대와 형사 2개팀이 출동했는데 알고보니 10년 전 가출한 아들을 찾기 위한 '쇼'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최 팀장은 "허위신고라도 최종적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출동해야 하는 것이 경찰"이라며 "특히 112상황실의 경우 한 번의 실수가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 있어 실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항상 긴장한다"고 말했다.

"미귀가자는 며칠이 걸려서 찾을 때도 있어요. 미귀가 사건은 보통 긴급하지 않은 사건인 '코드2'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무심코 넘겼다가는 큰 사건으로 연결될 수 있어서 잘 판단해야 합니다. 가끔 경험으로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지난해 '아이가 실종됐다'는 신고가 접수된 적이 있는데 우리 경찰서 자체 병력을 다 쓰고도 모자라 지방청에 요청해 1개 중대를 추가로 동원한 적도 있습니다.
"

112상황실은 사건·사고가 났을 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만 아무리 잘해도 빛이 나지 않는 곳이다. 순수하게 현장을 뒷받침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최 팀장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고생하니까 공을 더 인정받는 게 당연하다"며 웃었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김종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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