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신조어·줄임말의 세계, 언어파괴일까?
2014.11.20 15:57
수정 : 2014.11.20 16:14기사원문
최근 인터넷과 모바일 사용률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새로운 신조어와 줄임말이 하루가 멀다 하고 탄생한다. 사실 신조어와 줄임말 사용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경향은 수위를 넘어선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우스갯소리지만 "신조어·줄임말 해설서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의사 소통은 물론 언어 파괴마저 우려된다.
반면 언어는 결국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만큼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일종의 또래 문화 속의 유행 정도로 봐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이번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제를 '끝없는 신조어·줄임말의 세계'로 정하고 그 실태를 짚어봤다.
■외계어에 가까운 줄임말
초등 5학년과 중학교 2학년 아들 둘을 둔 직장인 도모씨는 요즘 아이들의 말을 따라가기가 힘겹다. "XX(친구 이름)와 맥날(맥도날드)에 가서 감튀(감자튀김) 좀 먹고 올께요"등의 말은 애교스러울 정도다. "요즘 '격친'(격하게 친한 친구)은 누구고, 걔는 '갈비'(갈수록 비호감), 누구는 '꼬댕이'(공부도 못하고 놀지도 못하는)야" 라는 말은 차라리 '외계어'에 가깝다고 하소연한다.
'버카충'(버스 카드 충전), '버정'(버스정류장), '생선'(생일선물), '시공'(시험공부), '애빼시'(애교빼면 시체), '고터'(고속터미널) '버터페이스'(but her face·학벌이나 집안, 직업 등 모든 것이 완벽한데 외모만 아쉽다), '웃프다'(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등 신조어와 줄임말은 그야말로 끝이 없다.
신조어와 줄임말은 비단 10~20대뿐만 아니라 인터넷과 모바일을 사용하는 전 연령대가 고루 쓰고 있다. 엄마들이 자주 모이는 인터넷 카페 등에서는 윰차, 얼집 등을 비롯해 '셤니'(시어머니), '어뭉'(엄마), '결정사'(결혼정보회사), '결기'(결혼기념일) '영전강'(영어전문강사), '대겹'(대기업), '심쿵'(심장이 쿵)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직장인 김모씨(47)는 "예전 줄임말은 '비냉'(비빔냉면) '물냉'(물냉명) 등은 들으면 쉽게 알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요즘 줄임말이나 신조어는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일종의 재미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한글이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지금은 조사까지 줄여쓰는 것이 유행이다. 예를 들어 '너에게'를 '너게(테)'로 쓰는 식이다. 또 인터넷 상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무난하다'(O)를 '문안하다'(X), '굳이'(O)를 '구지'(X), '어이없다'(O)를 '어의없다'(X), '주근깨'(O)를 '죽은깨'(X)로 쓰는 등 기본적인 맞춤법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부 성모씨(33)도 "얼마전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막으로 '쓰뱉달삼'(쓰면 뱉고 달면 삼킨다) 등의 줄임말이 줄줄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랬다"며 "안그래도 애들이 모여서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설명서라도 있었으면 하는데 방송까지 부추길 필요가 뭐가 있나"고 지적했다.
■"언어는 시대의 흐름 반영"
언어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인만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학생 조모씨(22)는 "주위에서 많이 쓰다보니 어느새 나도 따라가게 됐다"며 "예전에도 선생님을 '샘'으로 불렀듯이 지금도 그런 것 아닌가. 한글 파괴로 볼 문제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회사원 이모씨(25) 역시 "친구들과 재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신조어의 경우 가장 최근의 트랜드나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최근에 나온 신조어 중 '인구론'(인문계 졸업생 90%는 논다) '돌취생'(입사 후 다시 취업준비생으로 돌아온 사람) '열정페이'(무급 또는 적은 월급을 주면서 취업준비생을 착취하는 행태를 비꼬는 말) '청년실신'(등록금 대출을 받은 뒤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상태) 등이 그것이다.
이씨는 "시대라는 거창한 말을 붙이지 않더라도 그때 그때 재미로, 유행처럼 사용하다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만약 신조어나 줄임말이 계속해서 지속된다면 그것은 새로운 어휘의 탄생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