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기업인 죄인 취급 풍토.. 이대로 안된다

      2015.01.04 17:23   수정 : 2015.01.04 21:29기사원문
반기업 정서 사회 만연.. 일자리·투자 가로막아 결국 국가경쟁력 저하로


#. 서울 마포의 한 음식점 주인에게 존경하는 기업인이 누구냐고 물었다. 이 주인은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단 한 명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답했다. "우리나라 기업인 중 정직하게 돈을 버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게 그 이유였다.

#. 대학 4학년 여대생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그 역시 같은 대답을 했다. 이 학생은 "졸업 후 일류 대기업 취직을 목표로 공부 중이지만 희망하는 회사 역시 도덕적으로 좋은 회사라는 생각은 안 든다"고 말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강덕수 전 STX 회장 등 샐러리맨에서 기업을 일군 우리 사회의 신화적 기업인들이 일제히 죄인으로 몰리고 있다. 한때 기업을 일궈 재벌 소리를 들었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적용되는 법률적 잣대는 일반인보다 훨씬 엄격하다.

기업이 최종적으로 실패하면 기업의 탄생과 성장, 소멸 과정을 총괄 지휘한 이들의 성과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해당 기업이 성장하면서 빚어낸 국부의 창출이나 고용 확대, 신산업 육성 같은 과정의 결실은 모조리 무시한 채 결론만 본다. 종래에 기업이 실패하면 모든 책임은 기업가에게 묻는다. 성과는 인정하지 않고 무거운 사회적 책임만 지우는 우리 사회의 반기업·반기업가 풍조는 새로 기업을 일으키려는 젊은 창업가 숫자를 줄이는 대표적 원인이 되고 있다. 결국 젊은 부자가 탄생하지 못하고 과거 재벌이 대물림되기만 하는 우리 사회 부의 세습 문제점은 반기업 정서, 성공한 기업인을 죄인으로 취급하는 국민 정서 때문이라는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




■기업인, 자괴감 확산…젊은 기업가 사라진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창업한 벤처기업가들이 종종 왜 기업을 키워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 당황스럽다"며 "벤처기업을 창업해 키우고, 대기업으로 성장하면 뭔가 불법이 있었을 것이라는 오해와 불신이 만연해 젊은 기업가들은 기업을 키우려는 기업가 정신을 버리는 일도 많이 있다"고 반기업 정서의 위험을 지적했다.

김동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토론 수업을 할 때마다 깜짝 놀란다고 토로한다. 기업이 할 일이 무엇이냐는 주제에 대해 대부분의 학생이 사회환원을 가장 우선으로 꼽더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기업의 역할이 이윤추구라는 데 동의하고 싶어하는 학생이 많지 않다는 것이 놀랍다"며 "이윤추구 자체를 나쁜 것으로 여기는 학생도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기업은 바른 곳이 아니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그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목을 매는 이중성도 보인다"고 꼬집었다.

우리 사회에 퍼진 막연한 반기업 정서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대기업 총수나 주요 기업에 대한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 후 이런 경향은 더 두드러지는 측면이 있다고 기업인들은 걱정하고 있다. 물론 기업에도 문제는 있다. 특히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땅콩 회항' 사건은 반재벌.반기업 감정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꼴이다. 하지만 맹목적 반기업 정서가 대책 없이 확산되고 장기화되면 감당하기 힘든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가뜩이나 기업 하기 힘든 나라에서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 국가경쟁력 저하는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무한경쟁을 치러야 하는 시대, 기업을 적대시하는 풍토가 국가 병폐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확산되는 반기업 정서

각종 조사 결과를 보면 반기업 정서는 국내 고질적 문제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글로벌 네트워크업체인 암웨이가 세계 38개국 14세 이상 4만39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4 암웨이 글로벌 기업가정신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인 답변자 중 '기업가 정신은 긍정적인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63%로 세계 평균보다 12%포인트나 낮았다. '교육을 통해 기업가 정신을 배울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의 긍정 답변율(58%)도 세계 평균보다 5%포인트 낮았다. 이 질문에 중국(83%), 멕시코(82%), 노르웨이(76%), 독일(75%) 등이 최상위 그룹을 형성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1월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2014년 기업 및 경제 현안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를 한 결과도 비슷하다. 국민의 반기업 정서는 전년보다 다소 완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기업에 대한 호감도는 저조한 수준이었다. 기업인 호감도는 2013년 63%, 지난해는 65%였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과 자녀가 참여하기 원하는 직업은 공무원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2013년 공무원 희망자는 34%였고, 지난해는 9%포인트 증가한 43%였다.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23%, 대기업 15%, 자영업.창업 10%, 중소기업 10%순이다.

기업 대표들이 죄인 취급을 당하는 모습이 자주 노출되면서 반기업 정서는 더 확산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한건 올리려는 정치인들은 특히 국정감사 기간 기업인들을 죄인 다루듯 한다"며 "이런 관행이 기업의 신인도를 떨어뜨리고 국제거래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경제 교육 등 근본부터 바꿔야

반기업 정서는 '재벌'이라는 단어가 주는 막연한 반감, 사농공상의 유교적 사고에 기인한 상인 천대의식이 지금까지 계속된 데 따른 영향이라는 주장도 있다. 수백년 전통을 가진 서구 산업자본과 달리 30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산업 고도화를 이루면서 생긴 부작용이라는 시각인 것이다. 여기에다 시장원리를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한 교육 과정도 반기업 정서 형성에 한몫했다는 평가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기업역사는 짧다. 또 기업이 급성장하다 보니 이런 급성장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강한 것"이라며 "누구는 거부가 되고 나는 왜 안 됐을까 하는 자책감이 반기업 정서를 부추긴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경제교육을 확대하고 기업들의 자발적 노력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분배에 치중된 경제교육 영향도 있다"며 "중.고교 수업에서 시장경제의 본질에 대해 명확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동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우리나라 대기업 총수들도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대중과 접촉할 기회를 늘려야 한다"며 "대중과 친근해져야 오해도 줄이고, 자기 기업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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