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는 아직 12보루의 담배가.."
2015.01.05 16:43
수정 : 2015.01.05 16:43기사원문
을미년 새해를 고통으로 시작한 이들이 있다. 바로 흡연자들이다. 새해 들면서 담뱃값은 2000원이나 올랐고 모든 음식점에서 금연이 시행됐다. 이제 담배 살 돈도, 피울 장소도 없다. 그 때문에 과거 산아제한 슬로건을 패러디한 '덮어놓고 피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란 표어와 함께 금연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신에게는 아직 12보루의 담배가 있사옵니다'라며 지난해 말 사재기한 담배를 암거래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루 담배 한 갑 피우는 애연가들은 한 달 14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한 달에 6만2000원의 추가 부담이다. 서민들에게는 만만찮은 금액이다. 그래서 어려웠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개비 담배'가 구멍가게에 다시 등장했다. 한 개비에 300원. 엄연한 불법이지만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단다. 반대로 편의점이나 담배가게에서 담배 판매는 올 들어 30~50% 줄었다. 지난 1일 대부분 편의점 담배판매대는 텅 비었고, 대신 '영수증을 지참해야 담배 환불을 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미친 담뱃값'에 군인들이 불쌍해졌다. 장병 월급은 12만9400원(이병)~17만1400원(병장). 이병·일병은 월급 받아봐야 담뱃값도 충당하지 못하게 됐다. 이참에 담배 끊으라고? 예비역들은 모두가 안다. 병영생활의 애로를 달래는 데는 담배만 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과거 장병들에게 보급됐던 면세담배는 2009년 중단됐다. 장병 월급을 왕창 올리든지 군용 면세담배를 부활하든지 뭔가 조치를 해야 하지 않겠나.
정부는 또 서민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봉초 담배'를 부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한다. 잘게 썬 담뱃잎을 종이에 말거나 곰방대에 넣어 피우는 봉초 담배는 건강에 더 해롭고 독하지만 궐련보다 싸다. 농촌 노인들이 즐기던 것으로 1970년대 생산이 중단됐다. 그러나 '금연을 권장하기 위해 담뱃값을 올려놓고 더 해로운 담배를 내놓는 것은 모순'이라는 비판에 부닥쳐 정부도 우물쭈물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초 담뱃값이 500원 인상됐을 때는 5개월 후 담배 판매가 원상복구됐다. 이번엔 그때와 다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보건소 금연 클리닉에는 평소의 3~4배 인원이 몰리고 온라인쇼핑몰에서는 금연 보조용품 판매가 지난해 같은 때의 50배에 달하고 있다. 값보다도 세수를 채우기 위해 서민의 기호품부터 왕창 인상하는 정부의 안이한 발상에 불쾌감을 느끼는 흡연자가 많다. 이런 정부에 반격하는 방법은 금연밖에 없다. 하루 한 갑 반을 피웠던 나도 이를 갈며 일주일째 금연하고 있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