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쟁이들, 마녀는 말했지 "노력은 필요없어, 돈이면 다 돼"
2015.03.04 16:40
수정 : 2015.03.04 17:30기사원문
"기다렸던 첫날 밤, 그이는 정말 꿈틀거리기만 했어. 공들인 탑도 무너지더라."(백설공주) "왕자님 만나서 이제 내 팔자 폈다 생각했지만… 염병. 담배 있니?"(신데렐라)
동화 속 아름다운 공주님들이 이런 대사를 읊는다. 지난 주말 개막한 창작뮤지컬 '난쟁이들'이다. 애초에 '어른이' 뮤지컬을 표방했고 실제로 15세 미만 관람 불가다. 다 큰 어른들이 동화 속 꿈과 환상에 몰입하기란 쉽지 않다. 대신 '난쟁이들'은 파격적인 캐릭터 비틀기와 사회 풍자적인 대사로 가려운 데를 긁어 준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부터가 '난쟁이'다. 난쟁이 나라에서 가장 잘생기고 똑똑한 찰리는 다른 난쟁이들처럼 광산에서 보석을 캐며 "존재감 없이 가늘고 길게" 살기는 싫다.
백설공주나 신데렐라가 왕자님을 만나 행복해졌듯이 공주를 만나 인생역전을 하겠다는 야망을 품는다. 어느날 찰리는 동화나라 무도회에 공주님들이 총출동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공주님과 사랑에 빠져 키스를 하면 새로운 동화의 주인공도 될 수 있단다. 비밀스런 책을 통해 자신을 왕자로 만들어 줄 마녀가 사는 곳도 알아냈겠다, 결국 찰리는 노잣돈으로 보석을 하나 챙겨 동화나라로 떠난다. 백설공주를 그리워하는, 이젠 할아버지가 돼 버린 일곱번째 난쟁이 빅도 함께다.
찰리와 빅의 여정은 시작부터 삐그덕거린다. 마녀를 찾아가 신데렐라를 공주로 만들어준 것처럼 자신들도 멋진 왕자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지만 마녀는 "그런 호시절은 끝났어. 왕자들도 영악해져서 아무리 예뻐도 평민이면 안 만나"라며 거절한다. 하지만 이내 "세상에 노력만으로 되는 건 하나도 없어. 돈을 쓰면 마법이 일어난다"며 속내를 드러낸다.
9등신의 미남이 돼서 만난 공주들은 더이상 '요조숙녀'들이 아니다. 담배를 뻑뻑 펴대며 영어로 욕을 하는 백설공주는 겉모습만 멋진 왕자보다 '남자 구실 잘하는 남자가 최고'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돌싱'이 된 신데렐라는 다시 한번 신분상승을 위해 새로운 왕자를 찾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왕자에게 배신당한 인어공주도 '실속을 챙기기'로 마음 먹는다. 우리가 알던 백마 탄 왕자님들은 '백마 탄 척 웨이브를 타는' 왕자님들으로 탈바꿈했다. "사람들은 끼리끼리 만나"라며 웃기지만 뼈있는 후크송으로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기존의 동화를 파괴했지만 냉소적이지는 않다. 결국 진정한 사랑은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준다. 이지현 작사, 황미나 작곡의 넘버들은 귀에 쏙쏙 들어온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듣던 멜로디를 차용한 것도 재미 요소다. 조형균·최호중의 연기 호흡이 일품이고 공주 역할에 익숙한 최유하·백은혜는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이웃나라 왕자들을 맡은 우찬·전역산·송광일까지 모든 배우들의 능청스런 연기와 탄탄한 노래 실력이 돋보인다.
동화 속 공주들을 그대로 데려온 듯한 의상, 동화책 모양의 대형스크린을 통해 비치는 아기자기한 영상과 그림자 모션은 눈을 즐겁게 한다. 소극장 무대에서 예상치 못한 리프트가 등장한 건 귀여운 스텍터클. 공연은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5만5000원. 1666-8662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