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
2015.03.12 10:36
수정 : 2015.03.12 10:36기사원문
공격을 받으면 온몸을 부풀리고 가시를 뻗어내는 복어. 아기 얼굴을 하고 마치 외계생물처럼 분홍색 피부를 가진 아홀로틀(멕시코 도롱뇽). 지구의 신기한 생명체들은 늘 관심의 대상이다.
그런데 그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인간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네 발을 가졌지만 두 발로 위태롭게 선 몸의 끄트머리엔 작은 머리가 대롱대롱 달려있다. 몸은 털도, 비늘도 없이 밋밋하고 몸을 지탱할 꼬리마저 없다. 날지도, 물위를 떠다니지도, 빠르게 달리지도 못한다. 그저 긴 팔다리로 흐느적 흐느적 걷는다. 뭐 이런 기괴한 생명체가 있을까.
환경·인권 전문가 캐스파 헨더슨이 쓴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은 그렇게 허를 찌른다. 이 책은 아홀로틀 부터 제브라피시까지 알파벳 순으로 지구상에 존재한다고 상상하기 어려운 기이한 동물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비너스의 허리띠'라는 별칭이 붙은 띠빗 해파리, 설인처럼 털복숭이 집게발을 가진 예티게 등. 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서 대륙의 가장 메마른 곳까지 구석구석 숨은 경이로은 생명체가 우리와 공존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저자가 보여주는 동물들의 진기한 생태를 생경한 시선으로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인간이 있다. 지구상에 가장 우월한 생명체라고 여기고 사는 인간들.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들에게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집단 전체로 볼 때 우리는 '시시껄렁한 파괴자 무리'에 불과했다." 저자가 말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동물들은 인간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가시도마뱀은 온몸에 가시가 돋힌 기이한 모습으로 호주 대륙에 서식하고 있었지만 인간이 대륙에 정착한 후 멸종하고 말았다. 고래는 두꺼운 피부를 지녔지만 촉감이 매우 예민해 새 한마리가 등에 내려앉기만 해도 몸을 움직인다. 고래 사냥꾼들은 고래가 작살에 찔리는 고통이 극심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면서도 고래잡이를 멈추지 않았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단지 지능이 월등하다는 이유만으로 지구 생태계의 다른 구성원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자격이 과연 인간에게 있는걸까 하는 물음에 도달하게 된다. 저자는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다"고 끝을 맺는다. 동물이 이렇게 소중하니 보호해야 한다는 진부한 설득도 없다. 하지만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들을 깨닫게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고민은 책을 덮는 순간 시작된다.
seilee@fnnews.com 이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