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신라 대형 건물터, 신라왕궁 규모 드러나나..내달 발굴시작
2015.03.20 20:53
수정 : 2015.03.20 20:53기사원문
월성 신라 대형 건물터신라시대 정궁으로 추정되는 경주 월성에 대한 본격 정밀 발굴조사가 다음 달 시작된다.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심영섭)는 지난해 12월 시작한 경주 월성의 시굴조사 성과를 18일 현장에서 공개했다.연구소는 "1차로 월성 중앙부인 C구역 5만7000㎡를 시굴 조사한 결과, 기단과 초석(礎石·받침돌), 적심(積心·초석 밑 다짐돌) 등을 갖춘 건물터 6동과 담장 12기 등 총 23기의 유구(遺構·옛 건축물의 자취)가 확인됐고 토기와 막새기와 등 통일신라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전했다.건물터 중 3호는 정면 12칸, 측면 2칸 규모(28×7.1m)의 초대형으로 부속 시설로 배수로와 담장이 함께 확인됐다. 새 모양이 찍힌 인화문(도장무늬)토기 뚜껑, 굽다리접시, 병, 등잔, 벼루, 막새기와, 귀면기와, 치미 등이 쏟아져 나왔다.토기류는 6세기 중엽~통일신라 시대 전반, 기와류는 7세기 전반부터 통일신라 시대 전반에 걸쳐 확인됐다. 일부 토기에는 '井' '口'자 형태의 음각 기호를 새긴 것이 있고, '習部(습부)' '漢(한)'과 같은 왕경을 구성한 6부(部) 명칭이나 '儀鳳四年 皆土[의봉4년(679년) 개토]' 글자를 새긴 평기와도 나왔다. '의봉 4년' 연호가 적힌 기와는 월성 바깥을 두른 인공 연못인 해자와 월지(안압지)에서 이미 나온 적이 있다고 밝혔다.
월성은 신라 건국 초기부터 멸망할 때까지 지속된 '천년 궁성'. 제5대 파사왕 22년(101)에 건설돼 경순왕 9년(935)까지 왕성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월성 발굴은 1914년 일제가 남벽 부근을 파헤친 지 100년 만에 우리 손으로 실시한 최초의 발굴이라는 의미가 크다. 연구소는 20일 문화재위원회 보고를 거쳐 본격 발굴에 돌입할 계획이다./온라인편집부 news@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