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고용·임금인상 어떻게 둘 다 잡나".. 속 타들어가는 기업들
2015.04.08 17:39
수정 : 2015.04.08 21:28기사원문
비정규직 처우개선 위해 정규직 임금 동결은 필수
임금 이중구조 해결 없인 청년고용 더 어려워질 것
노동시장 유연한 美·英 등 금융위기에도 잘 버텨내
올해는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이룰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노동시장 경직성 등을 풀어 기업이 움직이도록 해줘야 한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작년 기업들의 실적을 보면 매출은 정체되고 수익은 감소했다. 올해도 통상임금 범위 확대와 60세 정년 확대로 기업 부담이 커졌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노동시장의 구조를 바꾸겠다는 노사정 협상이 시한을 넘겨 지지부진하면서 기업들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재계가 통상임금·근로시간·정년연장 등 3대 현안에 대해 양보안까지 내놓으며 이번 협상에 매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재계는 이번 노사정 대타협의 핵심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로 보고 있다. 이번 노사정 협상에 재계를 대표하고 있는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를 줄이지 않고선 개혁이든 개선이든 이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고용 경직성 완화와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들의 임금 안정화 등을 필수조건으로 내세웠다. 대기업·정규직 등 기득권 근로자들의 양보 없이는 여성·청년 등 취약근로자 채용을 늘릴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에서다.
■근로자 기득권 내려놓기 필요
고용과 임금인상은 하나를 달성하려고 하면 다른 목표 달성이 희생되는 '트레이드 오프' 관계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영배 경총 상임부회장이 지난달 26일 경총포럼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해 "일자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아직 일자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의 문제"라고 밝힌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재계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방안으로 연봉 6000만원 이상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을 5년간 동결하고, 그 재원으로 협력업체 근로자 처우개선과 청년고용에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통상 근로자 평균 연봉(4000만원)의 1.5배 이상을 받으면 고소득 근로자로 분류된다.
대·중소기업 간 격차로 인해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연공서열에 따른 보상체계로 인해 기업의 신규 일자리 창출이 제한되는 등 구조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돌파구로 기존 근로자들의 기득권 내려놓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승길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용 증대를 위해서는 임금피크제와 같은 기득권을 포기하는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인식의 전환이 없다면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문제도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재계는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와 격차가 큰 이중구조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부터 정년연장까지 시행될 경우 청년고용이 더욱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벌써 현실화됐다. 30대 그룹은 올 채용 규모를 전년보다 6%가량 줄이기로 했다. 경총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을 법제화해 기업이 정년연장 의무화에 따른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 장기적으로는 연공급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의 보상체계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만 노동시장 유연성 역주행
재계는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저성과자 일반해고요건 명확화' 문구도 노사정 합의문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통해 노동시장의 활력을 제고하는 한편 기업의 인력활용에 숨통을 열어줘 위기대응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실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전의 세계경제를 보면 노동시장이 유연한 미국, 영국, 아일랜드 등은 경제상황이 좋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본과 독일은 경제상황이 좋지 않았다.
때문에 주요 선진국들은 저성과자 해고를 입법화했다. 미국은 '해고자유의 원칙'에 따라 특별한 제한 없이 해고가 가능하게 했다. 독일도 상당수 판례를 통해 업무수행 능력이나 자격을 상실한 경우 사전 경고 없이 해고하더라도 정당성을 인정해주고 있다. 박동운 단국대학교 명예교수는 "노동시장 유연성은 성장의 엔진"이라며 "현대 경제에서 사용자는 자본·경영·토지 등과 같은 생산요소 사용은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지만 노동만은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만 노동시장 유연성이 역주행을 하고 있다. 107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 순위에서 한국은 2013년 70위로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38위보다 32단계 하락했다.
ironman17@fnnews.com 김병용 기자